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명예교수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명예교수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명예교수

대학은 언제나 시대정신(Zeitgeist, Esprit du temps)을 발현하는 현장이었다. 대학은 지식 창출을 뛰어넘어 새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던져줘야 한다. 그간 한국대학신문은 대학언론의 구심적인 매체로서 역할과 기능을 다 해왔다. 한국대학신문이 이제 한국ESG경영원과 함께 이 시대 대학의 사명을 일깨우며, 동시에 대학을 넘어서 인류사회 전반에 걸쳐 구현해야 할 시대적 책무를 안았다.

ESG는 21세기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그 논의의 뿌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다. 구체제(ancien régime)를 종식시킨 근대 시민혁명 이래 ‘인간의 존엄’은 인류사회 최고의 화두였다. 그렇기에 독일기본법 제1조와 한국헌법 제10조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명시한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이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현상에 따라 이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받는다. 바로 그 성찰의 결과물이 ESG다.

그 표현에도 불구하고 사실 ESG는 일찍이 인류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역순으로 제기된 최고의 화두다. G(governance), 즉 국가사회의 운영체제는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언제나 논쟁적인 명제였다. 그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의 갈등은 20세기 말 공산주의 종주국 구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귀결됐다. 하지만 그 자유민주주의도 오늘날 심각한 정치 사회적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S(social responsibility), 즉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갈채가 쏟아졌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지 않았든가. 우리 선조들도 이를 몸소 실천했다. 당대 최고의 거부였던 이회영 일가는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쳤다. 그야말로 안중근 의사가 밝힌 ‘위국헌신’의 표상이다. 10리 내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경주 최 부자의 배려는 ‘적선지가 필유여경’의 실천이다. 이제 산업화 과정에서 거부를 축적한 기업인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더 요구된다.

E(environment), 즉 환경문제는 후기 산업사회의 발전에 따른 후유증과 연계된다. 한국은 1980년 OECD 국가 중에서 최초로 환경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이는 국가의 성격과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새로운 성찰로 이어진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헌법 제1조에 자유, 민주와 더불어 환경 국가를 명시하는 헌법개정안이 상정됐다.

필자는 총장 취임사에서 ‘선한 인재들’이 ‘선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구현’해 줄 것을 강조하면서 1995년에 최초로 ‘천원의 아침식사’를 제공했다. ESG도 궁극적으로는 공공선의 구현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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