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기업·유학생 연결해 제조업 지키는 ‘뿌리대학 사업’
숙련기능인 양성하는 전문대…교육부터 정주까지 책임져

24일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한국 취업에 관심을 가진 유학생들에게 취업·정주 여건을 설명하는 서정대 관계자. (사진=전문대교협)

[한국대학신문 강성진 기자] “한국 유학을 위해 2년간 한국어를 공부했지만, 한국의 전문대학과 기술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번 설명회를 통해 뿌리기술 학과를 졸업하면 한국에 취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심히 준비해 장학금도 받고 싶다.”

‘뿌리산업 외국인 기술인력 양성대학(이하 뿌리대학)’ 사업 설명회에 참석한 키르기스스탄 대학생 자워히르백 씨가 뿌리기술 학과에 진학해 한국 기업에 취업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이같이 말했다.

8일 교육계에 따르면 뿌리대학 사업을 운영하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와 7개 전문대는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을 찾아 뿌리대학 사업 설명회를 열었다. 이들 대학은 뿌리대학 사업에 참여하는 9개 대학 중 7개 대학으로, 유학생을 유치해 인력난·지방 정주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뿌리산업 기술 중 하나인 용접 현장. (사진=Unsplash)
뿌리산업 기술 중 하나인 용접 현장. (사진=Unsplash)

■ 지방·뿌리기업 소멸 해결하는 뿌리대학 사업 = 뿌리대학 사업에 참여하는 9개 전문대는 뿌리기술 학과에 진학한 유학생을 뿌리산업 숙련기술직으로 양성한다. 산업통상자원부·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KPIC, Korea National Ppuri Indsutry Center)는 뿌리산업의 인력난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 대학을 지원한다.

뿌리산업은 주조·금형·용접·열처리 등 제품 생산의 토대를 이루는 국가 기간 산업이다. 대체에너지·지능형 로봇 등 신산업이 발달하며 뿌리산업의 사업 범위도 확장되는 추세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뿌리산업은 최근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작업 위주의 작업 환경과 미흡한 인재 양성 체계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산업 통계를 보면 뿌리기업 업체별 종사자 수는 7년간 2배 이상 줄었다. KPIC가 뿌리산업 실태조사 보고서 발간을 시작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뿌리산업 종사자 수는 50만여 명 내외로 나타났다. 2021년에는 20만여 명 이상이 늘어 71만 9559명을 기록했고, 2022년에는 73만 2369명으로 조사됐다. 같은 시기 업체 수는 2만 6840개에서 6만 1108개까지 늘었다. 늘어난 기업의 수를 감안하면 각 업체의 인력은 약 27명에서 약 12명꼴로 줄어든 셈이다.

구인난과 더불어 매출액 감소는 뿌리기업의 어려움을 더한다. KPIC가 발간한 2016년 뿌리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전체 뿌리기업의 매출액은 약 131조 7563억 원이다. 이후 매출액은 꾸준히 상승세를 그려 2022년에는 약 250조 5532억 원에 도달했다. 다만 전체 매출액의 상승 곡선보다 기업체의 증가세(약 2배 이상)가 더 가파른 탓에 오히려 업체당 평균 매출은 8년간 약 49억 800만 원에서 약 41억 원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뿌리산업 종사자 감소는 비수도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KPIC에 따르면 전국 뿌리기업 1699곳 중 953곳은 비수도권 소재 기업이다. 수도권의 제조업은 대기업·하이테크 업체가 중심이며 생활 여건이 확보돼 종사자 유출이 적다. 이에 반해 지방의 뿌리기업들은 지역 인구 유출 문제가 맞물려 더 큰 규모의 인력난에 시달린다.

정부·학계는 뿌리산업의 인력난·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유학생의 지방 정주에 뜻을 모았다. 윤명숙 교육부 국제화역량 인증위원회 위원(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지난해 11월 ‘글로벌인재포럼 2023’에 참여해 외국인 유학생의 지방 취업·정주를 통해 인력난과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명숙 교수는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때부터 지역 특성을 반영한 취업연계 전형을 구성해 정주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밝혔다.

각 부처는 뿌리기술 학과 유학생을 지역 맞춤형 인재로 길러내기 위해 힘쓴다. 산업부와 KPIC는 유학생의 지방 정주를 돕고자 졸업 후 체류 자격 전환·사업 지원 프로그램 개발을 돕는다. 뿌리대학 사업에 참여하는 9개 대학은 유학생에게 한국 정주를 위해 필요한 언어·문화를 함께 가르친다.

현재 뿌리대학 사업에 참여하는 전문대는 총 9곳으로 △거제대학교 △경기과학기술대학교 △계명문화대학교 △군장대학교 △아주자동차대학교 △영남이공대학교 △전주비전대학교 △서정대학교 △조선이공대학교 등이 있다. 각 대학은 조선·기계·자동차 등 유학생들이 뿌리기술을 배울 수 있는 학과를 지정했다.

뿌리대학 사업을 통해 외국인 유학생이 취업에 이르는 과정. (사진=전문대교협)

유학생에서 숙련기능인력으로 체류 자격 전환 = 뿌리기술 학과 졸업생은 산업부의 기량 검증을 통과해 뿌리기업 취업에 필요한 체류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산업부는 뿌리기술 졸업생의 전문성·숙련도·한국어 능력 등을 확인한다. 검증을 통과한 유학생은 법무부가 숙련기능인력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특정활동 비자(E-7)로 체류 자격을 전환할 수 있다.

특정활동 비자는 외국인의 한국 정주에 도움을 줄 수 있어 국내 취업을 원하는 유학생에게 큰 이점으로 작용한다. 기량 검증을 통과하면 바로 체류 자격을 전환할 수 있어 비자 공백이 발생하지 않으며, 발급 후에는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거주할 수 있다. 유학생들이 일반적으로 소지하는 유학 비자(D-2)는 학기 중 주당 20~25시간 내 아르바이트 외의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점과 대조적이다.

산업부는 2018년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뿌리대학 졸업생 대상 특정활동 비자 할당을 100명분에서 300명분까지 확보했다. 지난해에는 200명 내외의 유학생이 특정활동 비자를 취득해 체류 자격을 전환한 바 있다.

김진호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 주임은 해당 사업의 핵심으로 300명분의 특정활동 비자를 확보한 점을 꼽았다. 그는 “기술력·성실성을 인정받아 체류 자격을 전환했다는 점은 유학생들의 한국 취업에 유리하다”며 “한국 취업을 원하는 예비 유학생의 지역 정주를 유도할 수 있는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체류자격 전환은 유학생들의 진로 설정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김 주임은 “뿌리대학 사업을 통해 한국에 자리 잡으면 체류 자격 연장을 위해 불필요하게 다른 교육 과정에 진학할 필요가 없다”며 “이 같은 맥락에서 해당 제도는 취업을 원하는 유학생들이 방법을 잘 알지 못해 불법 취업·불법 체류로 잘못 빠지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찾아 전문대 유학생 현황 설명에 나선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사진=전문대교협)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를 찾아 전문대 유학생 현황 설명에 나선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사진=전문대교협)

■ 7개 전문대·전문대교협, 뿌리대학 사업 도울 현지 파트너 찾아 나서 = 전문가들은 뿌리대학 사업을 통한 인력난·지방 소멸 문제 해결 여부는 유학생 유치에 달렸다고 진단한다. 전문대교협과 7개 전문대가 지난해 11월 24일과 26일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 유학·취업을 희망하는 유학생들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설명회에는 예비 유학생 300여 명이 참석하며 한국 유학·취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각 대학은 참석자들에게 졸업 후 특정활동 비자를 취득해 한국에서 취업·정주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참석자들은 체류자격을 전환한 뒤 한국의 어떤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지 질문을 쏟아냈다.

김재영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한국교육원장은 해당 설명회를 평하며 현지 학생들에게 한국 정주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키르기스스탄 학생들에게 한국 직업기술유학과 한국 정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 행사의 의미가 크다”며 “비슈케크 한국교육원과 한국 전문대학과의 교류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은 중앙아시아에서 뿌리대학 사업의 거점을 맡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은 해외 43개 한국교육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팽주만 타슈켄트 한국교육원장은 “교육원 내 유학생 유치센터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한국 전문대의 직업·기술교육·취업 연계 유학 홍보에 함께 나설 계획”이라 말했다.

올해부터 전문대는 지자체·산업체와도 거버넌스를 구축해 정주형 산업인력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전문대교협은 지난해 12월에 ‘지자체·대학·산업체 협력 유학생 정주형 산업인력 양성 체계 구축’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방안이 활성화되면 전문대는 뿌리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산업체에 필요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자체도 대학을 거점으로 기업과 함께 지역 현안 정책을 수립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은 앞으로 국내 산업 분야를 책임지게 될 유학생도 해외 우수 인재로 바라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첨단산업을 전공하는 고학력 외국인 유학생뿐 아니라, 뿌리산업의 해외 미래 인력이 될 유학생들도 인재로 바라봐야 한다”며 “전문대의 지역·산업 인재 중심 유학생 유치 전략이 정부의 인구 정책과 연계해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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