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조재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필자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사자성어 중에 최근까지도 자주 접한 것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네이버 사전에서는 과유불급을 ‘모든 사물(事物)이 정도(程度)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고 정의 내린다. 여러 상황에서 자주 쓰이는 사자성어이며, 일례로 ‘운동은 일반적으로 건강에 이롭지만 지나친 운동은 몸에 해롭다’와 같은 주장에 잘 부합한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상태인 중용(中庸)의 필요성을 얘기할 때 자주 활용된다.

최근 정희모 교수의 《문장의 비결》과 《창의적 생각의 발견, 글쓰기》라는 책을 읽으면서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계속 떠올랐다. 정희모 교수는 글을 잘 쓰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몇 번이나 강조됐던 원칙은 글을 간명하게 쓰라는 것이다. 짧은 문장을 강조했던 헤밍웨이의 주장과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인 《For sales, baby shoes, never worn》을 예로 들면서, 정희모 교수는 필자가 해석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한글은 서술어 중심의 언어이기 때문에 주어와 서술어 사이에 정보가 많은 ‘안긴 문장’일수록 글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지므로, 가급적 글을 짧고 명료하게 쓰라고 조언한다. 《문장의 비결》에서 저자는 법정 스님에 대한 소설을 자주 예로 들면서 짧은 문장이 어떻게 좋은 글이 될 수 있는지 강조한다.

정희모 교수의 책은 ‘짧은 문장으로 쓰기’ 외에도 ‘수동태 피하기’ 등을 포함해 여러 원칙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을 감안하면서 듣기와 말하기를 아우르는 여러 형식의 소통 방식이 있을 것이다. 이에 필자는 ‘좋은 소통’에도 ‘짧음의 원칙’이 적용 가능한지 고민해 봤다. 구어와 문어가 여러 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주어와 서술어 간의 간격이 멀어질수록 해석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미 기록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되돌아가기가 가능한 문어에 비해 휘발성이 강한 구어에서는 ‘짧음의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

이처럼 이해를 돕고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덜어내는 ‘짧음의 원칙’이 중요할진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어디를 봐도 지나침만이 눈에 띈다. 특히 우리는 정보과부하에 거의 항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주변에 정보가 넘쳐난다는 것은 이미 몇십 년 전에 ‘정보 사회(Information Society)’라는 개념이 나왔을 때부터 계속 지적돼왔다. 어디를 가든 온통 정보로 둘러싸여 있어 현대인들은 지나치게 과한 정보에 대한 노출을 피하기 어렵다. 이렇게 과부하된 상태에서는 구어든 문어든 짧음의 원칙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은 정보처리 과정의 과부화는 하나의 메시지를 보다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정보가 지나치게 세세하게 제공될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사하거나 상반되는 정보가 무차별적·반복적·동시적으로 제공될 때 정보처리 과정을 무너뜨릴 정도로 심각한 과부하가 발생한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정보에 짓눌려 “이젠 도저히 모르겠다”고 말하며 의사결정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전형적인 정보 과부하의 폐해다. 이와 같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정보과부하가 발생시키는 문제는 정보 사회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숏츠, 릴스 등 짧은 영상 콘텐츠가 유행을 타면서 스토리의 완성과는 무관하게 순간적 재미를 담아내는 콘텐츠가 셀 수 없이 많이 공유되고 있다. 이용자는 하나의 콘텐츠에서 또 다른 콘텐츠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얼마나 많은 정보에 노출되는지도 모른 채 정보과부하에 무감각해진다. 빠르면 수초 안에 콘텐츠의 전환이 발생하면서 하나의 콘텐츠로부터 획득된 정보는 주변 경로를 통해 빠르게 처리되며 휘발유처럼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과부하라고 인지하지 못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일관적이지 않은 주제에 대한 지극히도 짧은 정보처리가 반복되면서 인지 피로도는 높아진다. 단지 무감각 속에 이러한 피로감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소통하는 과정에서 ‘짧음의 원칙’을 지키기엔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화자이자 필자로서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면 ‘짧음’ 속에서 ‘깊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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