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웅 지음 《함세웅 평전 :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한국대학신문 정수정 기자] 역사는 기록으로 남지만 이름으로도 남는다. 윤동주라는 이름에는 젊은 시인이 살았던 일제강점기의 쓰라린 역사가 담겨 있고, 전태일이라는 이름에는 청년 노동자가 스스로를 불살랐던 1970년대의 혹독한 노동 현실이 응축돼 있다. 치열했던 1970~80년대 또한 후인들에게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정의구현사제단의 함세웅 신부다.

2024년은 정의구현사제단 50주년이 되는 해다. 정의구현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적국사제단)은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며 6월 항쟁의 계기를 마련했다.

《함세웅 평전 :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는 사제이자 사회운동가로 평생을 살아온 함세웅 신부의 삶의 기록이다. 삼엄한 독재의 70년대, 찬란한 항쟁의 80년대, 좌절과 반성의 90년대 그리고 새로운 모색의 2000년대까지, 그의 이름에 응축돼 있는 이 땅의 현대사가 수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저자 김삼웅은 김구, 홍범도, 안중근, 김대중, 김근태 등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여러 인물들의 삶을 책으로 엮어낸 바 있다. 하지만 동시대 인물의 평전을 쓰는 것은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부담을 무릅쓰고 굳이 ‘지금’ 이 책을 펴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것은 바야흐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관제 구호가 나부끼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또다시 정의의 탈을 쓴 불의가 횡행하는 지금, 함세웅 신부의 강고한 삶의 궤적을 살펴봄으로써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세인들을 미혹하는 ‘관제 정의’가 뿌리 내리지 못하도록 경계하고자 한다.”

이 책은 5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신학교 근처에서 뛰어놀던 소년이 사제가 되기까지의 과정(1장 ‘사제가 된 소년’)이 잔잔한 성장 드라마라면, 재야의 젊은 대변인으로서 유신독재에 맞서던 시절(2장 ‘예수의 길, 정의의 길’)과 6월항쟁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시절(3장 ‘찬란한 항쟁의 시대’)는 독자들에게 긴장감 넘치는 시대극으로 읽힌다.

정의구현사제단 결성에 얽힌 뒷얘기들도 흥미롭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치열한 투쟁의 과정에서 순간순간 엄습하던 두려움에 관한 고백이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내막을 폭로하던 순간일 것이다. 은폐되고 조작된 사건의 내막은 복잡한 경로를 거쳐 함세웅 신부에게 전해졌고, 다시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 세상에 공개됐다.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정의구현사제단이 발표한 성명서는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이는 그해 6월의 들불 같은 시민항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는 자신의 직분이 사제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으며, 자신이 걷는 길이 성서의 가르침에 따른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두려움이 닥칠 때마다 기도와 묵상으로 마음을 다스렸고, 한 번 길을 나서면 결코 물러설 줄 몰랐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그를 인도했던 이정표에는 하나의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글쓴이가 “함세웅의 주조음(主調音)”이라고 표현한 그 단어는 다름 아닌 ‘정의’다.

“정의는 말 그대로 바르다는 거예요. 바르다는 것은 종합적 관점에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설정, 인간과 올바른 관계 설정, 자연과 올바른 관계 설정을 말해요. (중략) 정의가 실현되면 모든 것이 이뤄지기 때문이죠. 사랑, 평화, 정의 등 하느님은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지만 그중 하느님의 대표적 속성은 정의예요. 정의가 있기에 심판도 가능한 것이죠. 민주화나 인권도 정의라는 개념에 내포되는 거예요.” (‘불의의 시대에 정의를 찾아’ 중에서)

함세웅 신부는 이 책을 통해 항일독립운동,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등 역사의 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정의를 실천해 온 자신의 생애를 소개하고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올곧은 삶의 지표를 제시하고자 했다. (소동/2만 5000원)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