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 입학 확대와 함께 특정 분야 쏠림 가속화 전망
과학기술계 비교해 예산은 1% 불과·과제 수 확연한 차이
장기적 지원·독립성 확보한 해외 인문학 지원 참고해야

지난 1월 18일 고려대에서 열린 ‘제4차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 토론회’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지난 1월 18일 고려대에서 열린 ‘제4차 인문사회 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 토론회’ 모습.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인문학의 위상이 갈수록 약화되면서 이를 걱정하는 학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정 분야로의 인재 쏠림은 결국 사회의 발전을 저해할 것이란 경고가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최근 교육부가 추진 중인 무전공 입학 확대에 대한 반대 입장이지만, 결국 여기에는 이러한 정책이 인문학과 같은 기초학문을 고사시킬 것이란 우려가 전제돼 있다.

지난 27일 전국인문대학장단은 서울대에서 “정부의 무전공 모집 확대는 일부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 해 교육 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들 것이다”면서 “학문생태계는 물론 특히 기초학문의 붕괴를 가속화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창우 서울대 인문대 학장은 “미국의 경우 의대, 치대, 약대, 경영대, 법대 교육을 전문대학원에서 제공하는데 한국은 이런 학과가 학부 단위에 있다”며 “이 상태에서 무전공을 도입하면 두 가지 이질적인 제도가 혼합돼 부작용이 부각된다”고 지적했다.

최근 자유전공학부를 포함해 무전공 학과 정원을 400명으로 늘릴 것이란 계획을 밝힌 서울대의 경우 매년 자유전공학부 전공선택 시 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컴퓨터공학, 경제학, 경영학과 등 취업에 유리한 학과로 몰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의 계열 선호도에서도 인문계과 자연계 간 간극이 크다. 지난해 10월 종로학원이 중3 이하 학부모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문·이과 진로 희망을 묻는 질문에 자연계 학과가 85.8%이라는 압도적 수치를 보였다. 절반 이상이 자연계 중 의학계열을 희망했고, 반도체·첨단학과(17.1%)에 대한 선호도도 높게 나타났다. 인문계열 학과 진학을 희망한다는 응답은 14.2%에 그쳤다.

■ R&D 예산 늘어가는데 인문학 예산은 1% = 인문학 위기는 예산 규모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2021년 한국연구재단의 ‘4차산업혁명 시대 인문사회 분야의 역할 강화와 예산 확대 전략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R&D 예산을 포함한 정부 R&D 예산은 2017년 19조 5000억 원에서 2021년 27조 4000억 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 국가 R&D 예산 중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 비중을 보면 그 편차가 상당하다. 2017년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은 19조 1551억 원, 2018년 19조 3701억 원, 2019년 20조 1988억 원, 2020년 23조 8797억 원, 2021년 27조 779억 원으로 대부분의 R&D 분야 예산을 차지고 하고 있으며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인다.

반면, 인문사회 분야의 R&D 예산은 같은 기간 3064억 원, 2980억 원, 3340억 원, 3203억 원 수준이며, 2021년 기준 인문사회 분야의 예산은 국가 R&D 예산 대비 1.18%인 3229억 원에 그쳤다.

과학기술 분야 투자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정부 부처의 투자 규모도 차이를 보인다. ‘2020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5개 부·처·청·위원회가 집행한 1022개 세부사업 내 7만 3501개 세부과제 수행을 위해 총 23조 8803억 원이 소요됐다.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교육부 중심으로 학술연구 지원이 이뤄진다. 교육부에서 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에 지원한 연구비 규모는 2021년 기준 약 2390억 원으로 총 5888건의 연구과제를 지원했다. 과학기술 분야 비교해 예산 규모나 연구과제 수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한 사립대 인문학과 교수는 “인문학 분야는 연구비 지원 관련 사업에 신청을 해도 될 확률이 낮다”며 “애써 연구비 지원을 하지 않게 되고 그러다보면 연구의 질도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대대적·장기적 투자로 인문학 지원하는 해외 국가 = 최근 10개년 미국 연방정부의 R&D 연구 유형별 투자 예산을 보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R&D 연구 전체 예산에서 사회과학 분야 연구 예산 약 5%를 차지한다. 특이할 만한 점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연구 수행 주체별 미국 R&D 지출은 기업이 전체 지출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의 투자 비율이 높다. 이후 연방정부, 비영리기관, 비연방정부 순이다.

미국은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법 제정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1965년에 제정된 ‘국가 예술 및 인문학 재단 설립법’에 따르면 “국가의 문명화와 사회의 진보, 민주주의 수준 제고를 위해 과학기술 발전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18일 고려대에서 열린 ‘제4차 인문사회분야 메가프로젝트 정책토론회’에서 기조강연을 맡은 유요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메가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미국, 독일, 프랑스 등의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유 교수가 설명한 미·독·프 인문학 연구 기관들의 공통점은 국가는 인프라 구축과 재정 지원에는 도움을 주지만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한다.

일례로 독일의 독일연구협회(DFG)는 100여 개의 연구소 및 대학과 협력하는 비정부 기구다. 정부의 재정 지원은 받지만 정부기관이 아닌 독립 조직으로 기능한다. 연간 35억 유로, 한화로 5조 500억 원의 예산을 사용한다. 대학은 최장 12년, 아카데미는 12~25년의 장기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순천대 교수)은 “미국은 2021년 기준 전미 고등교육기관 연구개발비에서 인문사회 분야 비중이 10.3%, 독일은 공적 R&D에서 인문사회과학비중이 8.4%, 영국은 연구/이노베이션기구 전체 R&D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 예산 비중이 5.1%를 차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한국은 IT나 AI등 미래 신기술 지수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지만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콘텐츠, 즉 원천소스인 인문학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며 “내년 R&D 예산을 확보할 때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불균등한 인문사회 분야 R&D 예산 비중도 대폭 조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