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박성철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원고는 과학기술원에 기간제로 임용된 교원이다. 피고는 교원소청심사위원회다. 조교수인 원고는 직급 정년 일이 도래하기 전 부교수 승진을 위한 심사신청을 했다. 교원인사위원회에서 무기명 표결이 진행됐다. 반대표가 많았다. 승진이 좌절됐다. 이의신청까지 했으나 기각됐다. 그러자 원고는 교원소청심사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다시 기각됐다. 그럼에도 원고는 포기하지 않았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결정의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도 원고가 SCI급 논문 5편 이상의 제1저자 또는 교신저자라는 정량적 요건이 충족됐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럼에도 정성적 요건에는 미달했다고 봤다. 원고의 연구 윤리 행위나 학생 지도가 미흡했다고 판단해 승진을 거부한 행위는 적법한 재량권 행사라고 판단했다. 직급 정년일까지 승진하지 못한 원고는 별도의 재임용심사 없이 면직됐다.

법원은 어떻게 판단했을까. 교원소청위원회 결정을 취소했다. 원고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몇 가지 다툼이 되는 쟁점이 있었다. 순차적으로 살펴보겠다.

우선 원고가 사립학교 교원과 같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원에 소속된 교원은 교육공무원은 아니다. 과학기술원과 소속 교원은 사법상 계약으로 규율되는 관계다. 아울러 별도 법률에 따라 설립된 과학기술원의 지위, 역할 등을 고려해 보면 소속 교원은 재임용심사를 받을 때 사립학교 교원과 다름없는 심사를 요구할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과학기술원 교원 역시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요구할 재임용심사신청권을 가진다는 취지다.

기간제 교원도 동일한 권리를 가질까. 대법원은 수긍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기간제로 임용돼 기간이 만료된 사립대학 교원은 교원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관해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받아 그 기준에 부합되면 교원으로서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봤다.

기간제 교원에게 재임용심사신청권이 인정된다는 전제를 명확히 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은 직급 정년 규정과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 원고는 직급 정년 규정을 적용받아 면직됐다. 원고에게 적용된 교원인사관리요령에 따르면, 조교수가 동일 직급으로 근무할 수 있는 최대기간을 5년으로 설정했다. 이 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 승진하지 못하면 별도의 재임용심사 없이 당연퇴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재임용심사를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재임용심사신청권을 인정하는 대법원의 논리를 관철하면, 직급 정년 규정의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게 된다. 대법원은 별도의 재임용심사 없이 당연퇴직하게 하는 규정의 효력을 명시적으로 부인했다. 세세한 이유를 들었다.

우리 헌법이 선언하는 교원지위법정주의의 의미를 먼저 짚었다. 사립학교법에서는 재임용 관련 규정이 있다. 대학교원이 임면권자에게 학생 교육, 학문연구, 학생 지도에 관한 사항에 대한 평가 등 객관적으로 학칙이 정하는 사유에 근거해 재임용 여부에 관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을 강행규정이라고 봤다. 대학교원이 신분을 부당하게 박탈당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라고 지적했다. 재임용심사 없이 당연퇴직하게 하는 직급 정년 규정은 강행규정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봤다. 강행법규에 반하는 자치규정은 효력이 없다. 재임용 관련 사립학교법이 강행법규라면, 그에 반하는 대학규정은 효력을 잃게 된다.

조교수 재직기간 중 부교수로 승진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현실적인 주장에도 반박했다. 승진심사가 재임용심사와 실질에서 동일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적 개념부터 다르다. 상위 직급의 교수로 임용하는 행위는 기존의 임용행위에 기초한 단순한 승진발령행위가 아니다. 직명을 달리하는 교원을 임용하는 새로운 신분 관계 설정행위다. 대학은 승진 기준을 마련하거나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더 큰 재량을 갖는다. 승진심사는 재임용심사와 구분된다. 승진심사는 사립학교법에 따른 엄격한 제한을 받는 재임용심사를 대체할 수 없다. 실제 여러 대학들의 규정을 보면, 재임용심사에 비해 승진심사는 기준이 더 강화돼 있다.

다른 직종의 계급정년제와 단순히 비교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직급 정년과 유사한 계급 정년제가 다른 직군에 있다. 군인, 경찰, 소방공무원 등에서 볼 수 있다. 대법원은 타 영역에서 유효하게 시행되고 있는 계급 정년제는 별도 법률에 근거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군인이나 특정 직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의 임무와 조직체계와 같은 특수성을 감안한 법적 근거가 있다. 경찰공무원법 등 개별 법률이 마련돼 있다. 반면 대학교원의 직급 정년에 대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법률상 근거가 없다. 대법원은 법률의 정함이 없이 대학 자치규범으로만 도입된 직급 정년 규정의 효력을 계급 정년제와 같게 볼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대학교원의 직무와 역할, 대학이라는 조직의 특성에 비춰보더라도 대학교원이 군인, 경찰공무원과 유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직급 정년 규정이 애초 추구하는 목적 달성을 위한 적절한 수단으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직급 정년 규정의 목적과 취지까지 부인되지는 않는다. 목적은 정당한 제도다. 조교수 직급에 주어진 근무 기간 동안 상급 대학교원으로의 능력과 자질을 구비하게 해 종국적으로는 정교수의 지위에 오르게 함으로써 정년보장 하에 학생의 교육·지도와 학문연구에 지식과 인격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목적이 정당하다고 해서 그 자체로 수단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대법원은 조교수의 재직기간을 불과 5년으로 하고 기간 만료로 당연퇴직하게 하는 규정이 목적 달성에 부합하는 수단으로는 적정하지 않다고 봤다. 교원의 권리를 제한할 때 지켜야 할 비례의 원칙이라는 선도 넘었다는 취지다.

이처럼 대학의 규정을 무효로 보는 판단이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 대법원은 대학의 자율성만을 이유로 직급 정년 규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했다. 대학교원에 대한 인사를 할 때 대학의 자율성이 발휘돼야 한다는 데에는 의문이 없다. 그럼에도 대학의 자율성 역시 법률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된다. 법률에서 정하는 대학교원의 재임용심사신청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하는 규정은 대학의 자율성을 벗어나게 된다.

대학에서 정하는 직급 정년 규정의 효력이 부인되는 이상 이러한 규정에 터 잡은 면직은 위법하게 된다. 기간제 교원에게도 재임용심사신청권이 보장된다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입장이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