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 슌스케 지음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한국대학신문 정수정 기자] 결혼이 중산층 이상의 문화가 돼가고 있다는 김영하 작가의 지적처럼,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비정규 삶’을 사는 남성들은 결혼하고 가족을 부양하는 ‘정규의 삶’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주류 남성 사회에 섞이지 못하는 남성들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어떻게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구할 수 있을까?

저자 스기타 슌스케는 주류 사회에서 밀려났지만, 차별받는 소수자로서 연대할 수도 없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는 스마트한 리버럴이 될 만한 특별한 계기가 없는, 각자 고립돼 고통받는 ‘약자 남성들’은 내면의 불행, 고뇌 그리고 약함에서 비롯된 마음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안티’나 ‘인셀’의 어둠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한다. ‘안티’와 ‘인셀’이 주는 강렬하고 일시적인 감정은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며, 인터넷 전장에서 ‘적’과 싸우면 고양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티를 넘어 약자 남성론을 다시 발명하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는 ‘남성다움’을 위해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사회에서 비용을 거의 돌려받지 못하는, 현 체제에서 소외된 ‘약자 남성들’이 오히려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피력하고 약자 남성들이 일상에서 소소하게 실천할 수 있는 남성해방운동을 제안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으로 산다는 것》은 누가 더 불행하고 소외 받는지 겨루는 ‘약자 올림픽’에서 단순히 남성의 편을 들고자 하지 않는다. 2장에서는 각종 통계자료를 인용해서 일본의 성별 격차가 얼마나 심한지 제시한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여성보다 남성의 행복도가 낮은 이유를 분석한다. 명백히 존재하는 현상을 가감 없이 마주한 뒤 갈 곳을 잃은 약자 남성에게 두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여성, 성소수자 대 약자 남성’이라는 가짜 대립에 약자 남성을 가두려는 사회에 분노하는 길, 그리고 인내와 성찰로 존엄을 지켜내는 길이다.

“3장에서도 설명했지만, ‘가짜 적’을 오인해 미워하거나 싸워서는 안 된다. 중요한 건 사회 구조에서 ‘진짜 적대성’을 찾아내고 멈추지 않고 싸울 의지다.(인셀 레프트의 길) 하지만 혹시 이마저도 좌절된다면, 완전히 쓸데없고 시시한 이 인생을 죽을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비록 사랑도 없고, 인정도 없고, 자기 돌봄도 없고, 남성 동성 친구들과의 형제애가 없어도 ‘그냥 살기’를 완수할 수 있다. …그저 지루한 이 일을, 이 인생을, 사랑받지도 사랑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죽지도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이뤄내자” “적으로 착각하지 않고 절대 증오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는 것, 이 또한 약자 남성의 작은 존엄을 지켜내는 일이다”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한 이 최후의 카드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다양한 탈출구를 제공한다. 일 말고도 의존할 대상을 늘리는 일, 자기 돌봄을 실현하는 일, 동성 집단과 교류하는 일, 진취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남성이 아닌 다른 롤모델을 찾는 일… 그러나 이 시도들이 다 실패했을 때도, 결코 남과 나를 해치는 증오를 품지 않겠다는 결심은 작가가 표현한 대로 존엄이라 칭할만하다.

한국 사회는 단기간의 급속 성장을 이뤄내면서 많은 잔여물을 남겼다. 급류를 타고 상위 계층으로 올라서는 데 실패한 잔여물들도 인생에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패한다면? 사회적으로 몰락하고 계급에서 탈락한 약자 남성들에게는 조커와 같은 ‘다크 히어로’나 ‘테러리스트’가 되는 길밖에 남지 않은 걸까?

스기타 슌스케의 작품세계를 꾸준히 국내에 소개해 온 조경희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부교수는 이 책의 해제에서 “통계에서도 사회통념에서도 여성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 있는 남자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괴로운가, 라는 물음을 정직하고도 과감하게 던진다. 이 질문에 반발을 느끼는 독자들이 있다면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이 책이 한국 사회에 소개되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한다”고 감상을 밝혔다.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하기 직전, 아베 전 총리를 살해한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가 약자 남성론에 관한 자신의 글을 읽고 트위터에 감상을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글은 ‘약자성을 지닌 남자들도 어둠에 빠지지 말고 비폭력적인 주체가 되자’는 내용이었지만, 결국 야마가미는 폭력을 택했다. 아직은 어둠에 빠지지 않은 남성들이 ‘누구도 죽이지 않고, 여성을 증오하지 않고, 자살하지 않는’ 약자 남성의 존엄을 택하길 희망하는 저자의 바람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또다른우주/1만 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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