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김기태 세명대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깊어 갈수록 아날로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깊어 간다. 원본에 대한 아우라(aura)가 이른바 ‘짝퉁’의 틈바구니에서 실종된 지 오래다 보니 디지털 세상이 빚어내는, 완벽하지만 무미건조한 화려함보다는 울퉁불퉁할망정 정감 넘치는 할머니 손길이 그리워지곤 한다. 클릭 한 번이면 득달같이 전 세계로 퍼져 가는 인터넷 메일보다 빨간 우체통을 거쳐 우표 위에 소인이 찍힌 다음 우편배달부의 손때까지 묻은 후에야 받아볼 수 있는 편지가 더 매혹적인 송신 수단이라는 생각은 이제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저작권은 그것의 보호만을 강조하다 보면 저작물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저작권법이 보장하고 있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까지 규제하게 된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우리는 책을 복제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그 내용에 접근할 수 있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특정 저작물에 접근해 내용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복제 행위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아울러 과거의 저작권은 주로 영리 목적의 대량복제를 규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저작권은 보호의 한계가 여기저기서 노출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눈부시게 진보하는 반면 우리 의식은 여전히 무단복제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을 줄이려면 우선 저작권 보호의 당위성을 누구든지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저작권 보호를 생활화할 수 있어야 하며, 정당하고도 공정한 인용의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아울러 온라인상에서의 예절에 입각해 저작권을 존중하는 풍토가 누리꾼들 사이에 정착돼야 한다. 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차원에서 지식과 정보를 기록·보존하고 누구든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미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들을 바탕으로 자칫 묻혀버릴 수 있는 유용한 지식을 발굴하고 보존함으로써 이용자들이 쉽게 정보를 검색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CCL로 이용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배려해야
나아가 저작권자들 또한 이용자 편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중 하나의 방법이 바로 ‘라이선스 표시’  등 권리관리정보를 구축해 나가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저작물 이용 허락표시제도로 저작권자가 저작물 사용 조건을 미리 제시해 사용자가 저작권자에게 따로 허락을 구하지 않고도 창작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한 일종의 오픈 라이선스로서의 CCL(Creative Common License)에서와 같이 “영리 목적의 이용이 아니라면 출처를 명시하고 자유롭게 이용해도 좋다”거나 “이용허락을 얻으려면 반드시 연락해 달라”는 등의 표시를 하는 등 저작권자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권리에 대한 구체적 판단을 해 줌으로써 이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저작권 법제에서는 별다른 표시가 없는 한 저작권이 주어지는 저작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용자들에게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다만, 아무런 조건 없이 자기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하게 되면 악의적인 이용 사례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저작물을 다른 사람이 일정한 조건에 따라 이용하는 것을 손쉽게 해 주는 동시에 자신의 뜻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라이선스 표시의 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고의성이 없거나 우발적인 저작권 침해에 대한 관용과 더불어 악의적이고 고의적이면서 영리 목적이 강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강력한 조치가 시행돼야 한다.

인공지능시대, 저작권 보호하고 창작 욕구 높이는 노력 뒤따라야
한편, 요사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환상과 관련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 그 자체는 분명 아날로그요, 사상과 감정 또한 아날로그에 가깝다. 그것을 제어하거나 통제하는 능력에 있어서 정형화된 디지털은 범접할 여지가 없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인간생활의 수단으로 기능해야 하며, 그것이 인간의 우위에 자리 잡는 날 인간성은 말살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 권의 책 속에 담긴 내용이 인간 내면의 사상이요 감정일진대, 그것을 판독하는 장치가 디지털화한다고 해서 무엇이 크게 달라질 것인가. 인공심장을 달았다고 해서 그가 로봇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책이 디지털화한다고 해서 그 내용까지 기술종속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인공지능(AI)을 통해 이뤄지는 창작활동에 대한 합리적인 규율 방안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저작권 환경에 대응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저작권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한 문화의 산물이다. 문화는 곧 우리 스스로 창조하고 면면히 계승하는 것이며, 그것의 주체는 또한 우리 인간이다. 앞으로 복제를 포함한 디지털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해 나갈 것이고, 저작물의 양상 또한 날로 다양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저작권을 보호하고 창작을 위한 욕구를 지속적으로 북돋우려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저작권법이 추구하는 문화의 향상과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다운 세상을 위한 저작권 정책이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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