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박사)
이애란 칼럼니스트(문헌정보학박사)

세계 도처에서 과열되고 있는 금서 논쟁은 올해도 여전하다. 미국의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은 학부모나 종교 단체 그리고 정치인으로부터 특정 도서가 금서로 지정되거나 도전받는 수가 최근 2년 동안 가장 많았다.

미국도서관협회는 공립도서관 소장 도서에 대한 검열 요구가 2022년 기준으로 1269건에 달했고 2021년 729건의 2배 수준이며 협회가 20여 년 전 관련 데이터를 수집하기 시작한 이래 최다 기록이며 검열 목록에 오른 책은 총 2571권으로 2021년 1858권보다 38% 더 늘었다고 발표했다.

심지어 금서 논쟁이 확산하면서 금서 관련 저자 특강 무산, 예산 지원 중단, 도서관 폐쇄, 금서를 배치한 사서 형사 고발까지 내세우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이런 금서 논쟁의 중심에 선 학교나 공공도서관뿐만 아니라 대학도서관은 ‘금서 주간’에 해당 도서를 읽기나 전시회를 통해 도서 검열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얼마 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도서관은 책의 접근을 금지한 ‘금서 전시회’를 마련해 큰 호응을 얻었다. 호기심에서 찾아온 참여자들은 미국의 대부분 학교 도서관에서 퇴출된 도서 ‘젠더 퀴어(Gender Queer)’나 중국의 ‘곰돌이 푸’를 비롯해 전시된 많은 금서와 작가 정보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은 책이 민주주의 사회에서조차 검열되거나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데 큰 우려를 표명했다.

금서 논쟁의 화두는 ‘독자 보호’이냐 ‘책 읽을 권리’이냐로 양분된다. 최근 금서로 도전받거나 금서들은 성소수자나 인종 불평등 그리고 성 관련 영역이 주류이다. 가령 마이아 코바베가 쓴 ‘젠더 퀴어’를 도서관에서 퇴출하는 것을 찬성하는 측은 성별에 관해 노골적으로 묘사한 글이나 그림이 독자의 정서나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므로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일부 보수 정치인이 성소수자 도서를 폄하하며 도서관과 학교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발언이 도화선이 되어 대부분의 주(State)가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게 했다.

심지어 미국의 테네시주는 누군가에게 불편감을 줄 수 있는 인종과 성 관련 내용을 공립학교 교과과정에서 일절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고, 위스콘신대학은 한 보수단체가 인종과 성 관련 강의를 하는 학과에 강의계획서까지 공개하게 했다. 또한 영국의 서섹스대학을 포함한 많은 대학에서도 ‘도전적인’ 내용을 이유로 특정 도서를 강의 목록에서 제외하거나 선택과목으로 지정하는 사태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반면에 금서를 반대하는 측은 성 표현이 노골적이더라도 독서나 대출 여부는 독자 당사자와 미성년 보호자가 판단할 사안이지 모두의 책 읽을 권리를 뺏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젠더 퀴어’는 출간 이후 미국도서관협회가 성소수자 작품상과 성인과 청소년 독자층 모두에게 주목받는 책에 수여하는 상까지 주어 책의 가치를 입증한 바 있다. 특히 도서관의 도서는 전문가가 도서 선정 지침에 따라 검증하고 여과해 수집한다. 또한 유네스코의 공공도서관선언에서 도서관 도서는 다양한 견해와 주장, 이념을 포용하며 정치적, 종교적, 상업적 검열과 압력을 반대할 의무가 있으므로 도서관 밖의 누구도 도서관의 자료 선정과 수집에 압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며 반박했다.

이러한 미국의 금서 논쟁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충청도 일대 학부모단체가 공공도서관에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관련 금서목록을 작성해 열람 제한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되어 경기·경남·대구·울산 지역까지 금서 관련 논란이 번졌다. 또한 특정 도서를 도서관에서 빼라는 일부 학부모나 특정 단체의 민원 그리고 학교와 대학도서관에 특정 도서 보유 현황을 제출하라는 국회의원의 요구는 간접적인 도서 검열 행위이며 압력 수위에 따라 서가에서 제외되거나 금서로 지정됐다. 우리나라가 처한 금서 논쟁은 비록 미국이 처한 사회적 현상과 다르지만 자칫 21세기판 미국의 금서 전쟁처럼 확산할까 우려스럽다.

우리나라 금서의 역사를 돌아보면 과거에 사회적 논리에 의해 금서가 되었던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는 대학생 사라의 자유로운 성생활을 담은 소설로서 예술과 외설 그리고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으나 음란물로 판결 났다. 지금은 음란성 기준이 대폭 완화돼 재출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도서관에서의 금서 결정 기준은 헌법에서 규정한 성별 차별 금지나 양심의 자유 그리고 언론·출판의 자유라는 각 조항에 따라 판결하지만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논리에 따른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조용완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금서를 둘러싼 ‘독자 보호’와 ‘책 읽을 권리’의 가치 충돌을 줄이거나 건설적인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논란 도서의 배제보다는 추가를 통한 다양화를 추구하는 것이 도서를 임의 배제 시에 저저나 출판사로부터 소송을 피하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했다.

또 다른 대안은 금서 금지를 규정한 ‘금서 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2024년 새해에 미국 최초로 일리노이주에서 정당한 기준 없이 공공도서관이 편파적인 이념에 따라 성소수자나 유색인종 관련 서적을 검열하거나 제한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다. 규정에는 당파적 입장이나 이념 그리고 도서 창작에 기여한 사람들의 출신이나 배경에 따라 도서를 금지하는 근거를 삼을 수 있어 금서 논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도서관의 금서 논쟁은 이어질 것이다. 논쟁 측 간의 시대착오적이거나 소모적인 충돌보다 성숙하고 생산적 소통이 돼야 한다. 대학도서관이 세계의 금서나 도전받는 도서를 모아 ‘함께 읽기’나 ‘전시회’를 제공하여 이용자들이 ‘자유로운 접근과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려보길 바란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