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권준원 동아방송예술대 교수.

최근 극장가에서 ‘건국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주목 받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지난 2일 기준 누적 관객 107만 명을 기록했다. 다소 순위가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일별 관람 순위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건국전쟁’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건국 시기의 일들을 다룬다. 지난달 1일 개봉한 이 영화는 지금까지 영화 내용보다 정치적 논쟁으로 화제가 되어 왔다. 보수 진영 정치인들은 ‘건국전쟁’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고 주장하며 영화 관람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보수 성향의 유명인들은 SNS에 관람 후기와 인증사진을 앞다투어 남기고 있다. 반면 진보성향의 인사, 매체들은 ‘건국전쟁’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미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호사가들은 ‘건국전쟁’이 지난 2017년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관람객 수 185만 명을 넘어설 것인가를 놓고 정치진영 간 경쟁을 부추기며 이런저런 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2일 개봉해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파묘’를 놓고도 똑같은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파묘’는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Occult) 영화로 출연한 배우들의 열연으로 호평 받고 있다. 무당 화림이 의뢰인과 그의 아들을 덮친 알 수 없는 질병의 원인이 조상의 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 풍수전문가, 장의사 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다. 그리고 묘 주인인 의뢰인의 증조부가 친일파이며, 일제가 한반도의 정기를 차단하는 지점에 일본 무사의 갑옷과 칼이 담긴 관으로 쇠말뚝을 박고 그 위에 증조부 묫자리를 정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묘에는 두 개의 관이 있고 그 속에는 두 개의 악령이 숨어 있었다. 결국 화림과 일행들은 두 개의 악령을 물리치고 의뢰받은 문제를 해결하게 되지만 영화에서는 일제와 친일파인 증조할아버지의 잔혹함이 그대로 노출된다. 친일 행위라는 원죄의 결과로 후손에게까지 불행이 대물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영화의 내용을 놓고 반일주의를 불러일으켜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오히려 그런 주장을 비판하며 영화 관람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영화작품을 두고 벌어지는 이와 같은 정치적 논쟁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해 연말에 개봉해 1312만 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서울의 봄’을 두고도 정치적 논쟁이 벌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2014년에 개봉해 1426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도 개발 독재 시대를 미화하였다는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에서 정치적, 이념적 코드를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들의 선전 도구로 활용하거나 상대방을 비판하는 소재로 활용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영화에 대한 예술적 관심보다 영화가 어떤 정치적 이념을 담고 있는가에 더 집중한다. 예술 창작자의 의도는 고려되지 않고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단정 짓고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거침없이 공격하기도 한다. 마케팅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영화에 정치를 끌어들이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본질은 어디로 가고 곁가지가 무성하게 산을 뒤덮는 형국이다.

갈등의 ‘갈(葛)’은 칡을, ‘등(藤)’은 등나무를 가리킨다. 칡과 등나무가 같은 나무에 감아 올라가게 되면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올라가면서 서로 뒤엉켜서 도저히 풀 수 없는 상태로 엉망진창이 된다. 갈등은 때로는 긴장을 통해 창의적 결론을 만들기도 하지만 갈등이 일상화되면 사회 전반에 피로가 쌓이게 되고 결국에는 건강한 미래를 담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갈등이 없을 수 없고 정치의 속성이 본래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갈등은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고 갈등이라는 악령이 스멀스멀 예술 분야로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개강 후 첫 수업, 첫 시간의 주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다. 따뜻한 봄날에 그냥 가슴 설레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싶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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