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권용근 충남삼성고 교사.

유명 작가인 마크 맨슨(Mark Manson)은 최근 유튜브에서 대한민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the Most Depressed Country)’로 소개했다. 이 콘텐츠에 대한 공감과 반감은 사람마다 다르다. 다만 대한민국을 우울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로 지나친 ‘경쟁 위주의 교육’이 꼽힌 것은 교육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폐허의 대한민국을 기적처럼 일으키는 데 교육이 큰 기여를 했지만, 한편으로 교육은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정상적인 교육이라면 개인과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개인의 잠재 능력을 이끌어내고, 개인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게 해주고, 기업과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면 교육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마크 맨슨의 지적처럼 대한민국 교육은 개인을 키워내는 든든한 토양이 아니라, 강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살벌한 싸움터가 됐다. 교육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교사와 학부모도 그러한 교육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분석해 보면 짚이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은 처음 들어간 초등학교부터 사회에 나가기 직전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학교는 당연히 지식을 익히고 배우는 곳이므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지식 위주 교육은 상대적으로 지식교육의 실체적 구현인 ‘직업교육’을 소홀하게 만들었다. 예전보다 개선되고 있지만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도 직업교육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적극적 투자는 여전히 아쉽다. 공부 잘하며 인성이 바른 학생을 만들자는 데에는 거의 이견(異見)이 없다. 반면 공교육에서 철저한 직업 능력과 직업 윤리를 가르치자는 의견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다소 미온적이다. 현실적으로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대학에 가지 않는가? 그런데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는 개인이 별도로 해야 하는, 다소 복잡하고 소모적인 분위기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 전반적 분위기는 교육과정을 혁신하고 새롭게 만드는 데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학습 내용과 요소 그리고 방향에 대해서만 교육과정 개정을 시도할 뿐, 직업인을 길러내는 데에는 아직 대한민국 교육과정은 소극적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직업 실무 현장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모든 것을 배워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계속 되풀이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단기 연수만으로도 직업 현장에 빠르게 적응해야 맞을 것인데, 여전히 대학을 포함한 학교 교육과정은 직업 현장의 요구와 기대에 잘 맞지 않는 듯하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최첨단 기술이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꿔가고 있지만 학교 수업과 활동은 아직도 지식 습득 위주로 구성돼 있다. 여전히 직업교육은 지식교육에 밀리고 있다.

교육과정은 교육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에 실제적 역할을 담당한다. 교육이 실제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이 변화해야 한다. 교육이 더 이상 대한민국을 우울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점수 위주로 한 줄을 세워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학교는 진로와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도록 준비하고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학교에서 유용한 지식을 가르치되, 그렇게 배운 지식들이 학생 개인의 직업 준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공교육은 학생 개인의 현실적 문제와 어려움에 더 깊이 다가가야 한다. 즉, 학생 개인들의 삶의 문제인 직업 선택에 실제적 도움을 주는 강력한 조력자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AI의 대중화가 교육과정의 3요소인 ‘교과·학습자·사회’에 끼칠 영향을 예측하면서 동시에 저출산·고령화로 급변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교육과정의 지향점과 관심사는 개혁될 필요가 있다. 본질적인 교육의 가치와 기능은 고수하되, 급변하는 사회에 적합한 교육과정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추상적 인재상을 추구하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 이후 직업 현장에 투입돼도 전혀 손색이 없는 실제적 기능을 가르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직업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적절한 직업교육 시기는 언제인가? 대답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직업교육을 일찍 시작해서 학생들이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늘려, 직업을 선택하는 시행착오를 최대한 일찍 마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공교육 현장에서 직업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사람들은 잘 먹고 살기 위해 좋은 직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학교에 간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직업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학교에서는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을, 적어도 이전보다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초·중·고 교육과정은 직업교육을 더욱 적극적으로 다뤄서 지식교육과 직업교육 간의 균형을 회복해야 할 때다. 지식을 가르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 학교에서도 직업교육을 더 많이, 자주 논의해야 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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