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지음 《해방의 밤》

[한국대학신문 정수정 기자] 르포르타주, 인터뷰,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써온 은유 작가의 신작 《해방의 밤》은 저자가 중심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굳어가지 않기 위해 부단히 해온 수련의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가장 내밀한 곳에 새겨왔던 문장들과 자신을 살린 책들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다.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든다는데 역설적으로 저자는 늘어나고 있다. 모두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하고, 되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 시대에, 은유 작가는 자신을 ‘쓰는 사람’에 앞서 ‘읽는 사람’으로 정체화하며 독서에 대한 오랜 믿음을 고백한다. 잘 쓰려면 잘 읽어야 하고, 잘 살려면 잘 읽어야 한다. 굳어버린 내면을 말랑하게 만들고, 삶을 ‘기계의 속도에서 인간의 보폭으로’ 바로잡아줄 글들을 담았다.

《해방의 밤》은 관계와 사랑, 상처와 죽음, 편견과 불평등, 배움과 아이들 등 다양한 범주의 주제를 종횡무진하지만 이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해방이다. 저자는 책이 해방의 문을 여는 연장이라 말한다. 읽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고정된 생각과 편견을 하나씩 깨뜨리며 자유로워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으로 인해 혼란과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한번 해방된 사람은 무지와 무감각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해방의 독서’는 그로 하여금 우리 삶 곳곳에 억압과 통제가 있음을, 타자의 해방과 자신의 해방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일깨웠고, 모두의 자유로움을 위한 독서와 배움으로 그를 이끌었다.

초보 워킹맘 은유는 고단한 낮의 일과가 저문 밤의 고요를 틈타 식탁을 책상 삼아 독서를 했다. 저자는 육아서나 자기계발서처럼 낮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쓸모없는’ 책들을 읽었고, 그 시간 동안은 ‘누구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고유한 존재이자 익명의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낮의 노동을 내려놓고 책을 집어 드는 밤은, 사유가 시작되는 시간, 존재를 회복하는 시간, 다른 자아가 되는 변모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해방의 밤》은 한 사람이 읽은 책들에 대한 글이지만 독후감 모음은 아니다. 이 책에 언급되는 책들은 필독서 목록과는 거리가 멀다. 서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책,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책, 배를 불려주지도 않고 스펙이 되지도 않는 책, 온종일 쓸모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가득한 사회에서 도통 무용해 보이는 책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책들만이 거칠고 메마른 일상에서 한 사람을 구원하고 살리기도 한다고 말한다. 지식 축적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실천적 읽기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종종 갑갑해지는 이들에게 《해방의 밤》을 권한다.

“한 사람을 살려둔 책들의 목록과 이야기가 담긴 ‘독서의 보물지도’를 여러분 생의 윗목에 두고 갑니다. 나를 살린 책들이라면 남도 살릴 수 있으리라는 간곡한 마음으로요.”(359면) (창비/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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