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형찬 수필가 겸 교육학자(전 서울예대 교수)

백형찬 수필가 겸 교육학자
백형찬 수필가 겸 교육학자

조선 후기에 매화 그림이 유행했다. 특히 매화가 만발한 깊은 산속에서 은거하는 선비를 담은 그림이 많았다. 그림 주인공은 중국 서호의 고산에 은거해 살며 매화와 학을 지극히 사랑했던 북송의 시인 임포였다.

매화 그림이 조선 시대에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은 추사 김정희의 동생 김상희가 연경(북경)을 방문한 것과 관련돼 있다. 그는 연경에서 형님과 친하게 교유했던 청나라 문인들을 여럿 만났다. 그때, 형님과 각별했던 금석학자 옹방강을 만나려 했는데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그의 제자 오숭량을 만났다. 오숭량은 시인으로 매화를 무척이나 사랑했다. 오숭량은 김상희에게 임포의 고사를 그린 ‘매화서옥도’ 한 점을 선물로 줬다. 이것이 계기가 돼 조선에서 매화를 많이 그렸다.

고람 전기(田琦, 1825~1854)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는 조희룡의 ‘매화서옥도’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조희룡의 그림은 선비가 홀로 서옥에 들어앉아 독서삼매하는 고즈넉한 모습이다. 반면 전기의 그림은 선비가 두 명이나 등장하고 조망이 넓으며 환한 모습이다. 전기의 매화서옥도를 살펴보자. 온 산이 흰 눈으로 뒤덮였다. 산등성이에 삐쭉삐쭉 솟아오른 녹색 나무들이 보인다. 소나무인 듯하다. 산기슭과 계곡 곳곳에는 매화나무가 있어 흰 눈보다 더 희게 매화가 만발했다. 매화나무 사이에 서옥이 있고, 그 안에는 녹색 옷을 입은 선비가 피리를 불고 있다. 서옥 건너편에는 작은 나무다리가 있는데 주홍색 옷을 걸친 또 다른 선비가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건너오고 있다. 선비의 주홍색 옷 색깔이 그림 전체 분위기를 환하게 살려준다. 두 선비의 모습은 마치 논어에 나오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를 그림으로 옮겨 놓은 듯하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역매가 초옥에서 피리를 불고 있다(亦梅仁兄 草屋笛中)’라고 화제가 적혀있다. 역매는 역관 오경석으로 청나라를 여러 차례 드나들며 중국 문물을 수집한 사람이다. 오경석의 아들이 바로 독립운동가이며 ‘근역서화징’을 지은 오세창이다. 따라서 서옥에서 피리를 부는 사람이 오경석이고, 거문고를 메고 찾아오는 사람이 바로 전기이다. 매화서옥도는 두 사람의 따뜻한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설산, 하얀 매화꽃, 녹색 옷, 주홍색 옷, 피리와 거문고. 이런 것들로 채워진 그림은 온통 잔치 분위기다.

전기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였다. 추사가 제주 유배에서 돌아오자 전기는 가르침을 청했다. 전기가 그림을 그리면 추사는 평을 해줬다. 추사는 전기의 그림을 보고 “쓸쓸하고 조용하며 간결하고 담백한 것이 자못 원나라 화가의 품격과 운치가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전기는 추사에게 그림을 제대로 배운 화가였다. 그래서 전기의 작품은 추사의 화풍을 그대로 이어받은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른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전기의 매화서옥도를 보니 문득 서울예대의 매화가 생각난다. 학교 교정을 들어서면 공중에 ‘빨간 다리’가 떠 있다. 그 빨간 다리 밑에 수많은 매화나무가 있다. 그 매화는 보통 매화가 아니다. 수양 매화라고 부르는 특별한 매화다. 수양버들과 매화를 접목시킨 것이다. 모습은 수양버들을 닮아 춤을 추는 듯하다. 향기는 매화 꽃향기로 무척이나 진하다. 바람이 불면 캠퍼스 전체가 수양 매화 향기로 뒤덮인다. 멀리 떨어진 내 연구실까지도 그 향기가 날아든다. 그러면 내 연구실은 전기의 매화서옥도가 되고, 나는 서옥의 주인이 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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