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민 지음 《범죄사회》

[한국대학신문 정수정 기자] 대낮 번화가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 대규모 온라인 살인 예고 등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흉흉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줄 알았던 ‘치안강국’ 대한민국이 어쩌다 ‘범죄공화국’이 된 것일까? 과연 한국은 안전하다고 느끼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는 이유는 최근 범죄들의 ‘무차별성’ 때문이다. 전통적 범죄가 대개 서로 알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것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모르는 사람에게 전방위적으로 범죄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만큼 시민들의 불안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 정재민은 《범죄사회》를 펴내며 한국사회가 무차별한 강력범죄가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사회로 전락하게 된 경위를 분석하고, 강력범죄 문제와 현행 형사제도를 둘러싼 대중의 의문과 오해를 해소하며, 정의롭고 안전한 미래를 위한 제도 변화를 제안한다. 《범죄사회》에는 정재민이 판사로서 형사재판을 담당했던 이력과 우리 사회의 범죄 대책을 마련하는 법무부에서 일한 경험, 그리고 tvN ‘알쓸범잡’ 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중과 소통하면서 깨닫게 된 바 등이 종합적으로 담겨 있다.

법조인으로서의 생생한 경험담과 전문성이 결합된 이 책은 판사, 군검사, 법학박사, 법무심의관 등을 거치며 ‘범죄’에 관련된 모든 현장에 서보았던 저자 정재민만이 저술할 수 있는, 지금 한국사회에 가장 필요한 범죄 해설서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범죄를 둘러싼 여러 제도를 순차적으로 짚어나가면서 각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궁금증을 반영해 분야별로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각 장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굉장히 첨예하고 논쟁적인데, 저자가 각 제도를 하나하나 해부하듯 펼치는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 역시 그 주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다듬어나갈 수 있게 된다. 1장에서는 수사를 다루면서 지문, DNA, 디지털포렌식 등 과학수사가 어떻게 발전해왔고 앞으로 어느 분야가 발전할 필요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2장에서는 재판을 다루면서 판사가 정하는 형량은 왜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낮은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조두순 사건, 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 사건 등 국민들의 법감정에 비추어봤을 때 턱없이 낮게만 보이는 형량을 예로 들며, 양형이 판사 개인의 판단 문제가 아니라 형사재판 전반에 얽혀 있는 제도적 문제임을 분석한다. 더불어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적정한 처벌 수위와 판사의 처벌 수위를 맞춰나가려면 형량 제도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3장에서는 교정을 다루면서 우리나라 교도소 시스템이 출소자의 재범을 예방하는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지 검토한다. 또한 제도로서 존속되고 있지만 사실상 거의 집행되고 있지 않은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날 선 시각을 보여준다. 4장에서는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여러 요인들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5장에서는 전자발찌나 화학적 거세 같은 제도가 실제로 범죄예방에 효과가 있는지를 검토해본다. 6장에서는 범죄를 제대로 막기 위해서는 법 자체를 고쳐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며 법무부 심의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입법의 영역을 다룬다.

이 책은 범죄를 둘러싼 제도와 시스템의 문제를 원론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을 거론하면서 각 제도의 맹점과 대중의 오해 등을 파고들며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서현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전청조 사기사건 등 이미 널리 알려진 사건부터 저자가 직접 수사나 재판에 관여했던 사건들까지 실감나게 풀어내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보면 그가 이미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탁월한 스토리텔러라는 걸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실제 사건뿐만 아니라 ‘살인의 추억’ ‘배트맨 비긴즈’ ‘쇼생크 탈출’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 범죄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풍성하게 논의에 끌어들임으로써 범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폭넓게 확장시켜준다.

우리는 이제까지 범죄사건이 일어나면 주로 범죄자 개인의 서사와 심리에 지나치게 집중해왔다. 정재민은 이 사건들을 다시 논의의 장으로 불러들여 범죄를 둘러싼 제도와 기저에 깔린 사회구조를 주목해야 한다고, 그래야 이 사건들을 딛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범죄 사건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즐기는 사람들부터 날마다 들려오는 범죄 소식에 불안해하는 사람들까지, 한국사회를 범죄라는 키워드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창비/ 1만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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