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법시행령 명칭 규제는 넌센스

전문대학에 근무하는 필자는 매년 신입생들의 과제물을 받으면 불편해진다. 많은 학생들이 겉표지에 아무런 생각 없이 ‘○○대학교’ 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잘못된 표기를 지적해 줄 용기가 선뜻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모든 교육기관이 ‘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자를 사용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독 전문대학만은 ‘교’자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이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어떻게 학생들에게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잘못하면 학생들의 마음에 불필요한 상처를 줄 수 있는 문제이기에 늘 조심스럽게 대하곤 한다.

대학 명칭은 종합대학교와 그 밖의 대학을 구분하는 수단으로 ‘대학교’와 ‘대학’의 명칭을 사용한 게 시초다. ‘대학 간 차별화’를 명목으로 일부 4년제 대학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와 함께 기관장의 명칭도 종합대학의 장은 ‘총장’으로, 소규모 대학의 장은 ‘학장’으로 하게 됐다.

이것이 바뀌어 ‘전문대학’이라는 차별화된 명칭 때문에 발생하는 ‘낙인(stigma)’ 현상을 없애기 위하여 ‘전문’이라는 글자를 반드시 넣지 않아도 되도록 교명 명칭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얼마 전 법이 개정되면서 전문대학의 장도 ‘총장’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고등교육법시행령 8조에는 ‘대학·산업대학·교육대학·방송대학·통신대학·방송통신대학은 각각 그 명칭을 대학교 또는 대학으로 전문대학 및 기술대학은 각각 그 명칭을 대학으로 사용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문대학만 소외된 채 현재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고등교육기관들 간의 형평성과 전문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며 아울러 직업교육의 발전을 가로막는 근본적 요소다.

정부 관계자들은 ‘교’자를 붙이면, 교육수요자인 학생들이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서 일반대학인지 전문대학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지원자가 있을까. 더욱이 올해부터는 대학정보공시제가 시행되고 있어 정보를 더욱 쉽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또한 전문대학의 장도 ‘학장’에서 ‘총장’으로 변경됐다. 그래서 이런 염려는 그야말로 ‘기우’라고 생각한다.

모든 대학은 정관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대학교 또는 대학의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조속히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행령 개정은 전문대학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편견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전문대학 학생 및 학부형에게도 자긍심을 고취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전문대학은 일반대학의 교육과정을 축소한 초급대학이 아니라 동등한 위상을 갖되 교육 목적이 구분된 직업 및 평생학습 중심교육으로 특화된 고등교육기관이다.

따라서 현 정부의 공약사항인 ‘취업 100%대학 프로젝트’와 ‘2080 평생학습 플랜’을 앞장서서 실천하는 중심대학의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MB 정부의 공약인 ‘전문대학의 수업연한 규제완화’ 도 함께 추진돼 그동안 전문대학 발전의 발목을 잡았던 규제들을 하루 속히 풀어 주길 바란다.

이런 환경이 조속히 마련돼야 전문대학은 세계 속의 직업교육중심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전문대학의 직업교육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이며, 오늘의 심각한 사교육비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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