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누가 진정 ‘루저(Loser)’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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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 과연 '몸의 노예'로 살고 싶은가

공중파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불거진 여대생의 “남자 키 180cm 이하는 루저(Loser)” 발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키도 큰 남자, 키만 큰 남자, 키만 작은 남자, 키도 작은 남자. 이 가운데 어떤 남자를 선택하시렵니까?” 농담하던 여대생들이 이번 사건을 접하며 보인 일차적 반응은 다소 의외란 표정들이다. 그간 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비하 및 폄하 발언이 무수히 많았건만 이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해 왔던 남성들이, 입장이 바뀌고 보니 지나치게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루저에서 벗어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강남 번화가에 자리한 R정형외과는 키 늘리기 수술로 유명한 곳이라 한다. 몇 달 전 물리치료를 받으러 들른 길에 참혹한 현장을 목격했다. 앳돼 보이는 얼굴의 중고등학생들이 양쪽 무릎에 둥그런 쇠를 낀 채 목발을 짚고 병원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둥그런 쇠마다 무릎뼈를 관통하는 살이 끼워져 있는 모습은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한 학생에게 물으니 키 늘리기 수술 중이란 답이 돌아왔다. 수술을 통해 평균 10센티 정도는 성공적으로 늘릴 수 있기에 성장이 멈춘 시점에서 1년 정도 휴학을 하고 수술을 받는다는 것이다. 자기 말고도 입원 중인 친구가 여럿이라나. 진정 루저에서 벗어나려면 뼈를 깎는 고통을 무릅쓴 채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가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여대생의 루저 발언은 우리네 천박한 자화상을 여과 없이 보여 준 작은 사건이 아닐런지.

현대인에게 몸은 스스로 디자인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서, 정체성의 기반을 제공해 주는 근원이자, 개인적 자산이요, 상징적 자본이 됐다. 더불어 몸은 끊임없이 조율하고 보살피며 주도면밀하게 개조하고 전시해야 할 대상이 됐고, 몸의 ‘표면’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이 곧 몸이 되어 버리는 체험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얼굴 성형시술, 지방 흡입술, 배 탄력수술, 코와 턱 수술, 유방 확대수술, 흉부 확대수술 등은 지방과 살 그리고 뼈를 더하고 빼는 것을 가능케 함으로써 몸을 전면 변형시킬 수 있는 근본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을 제공해 주고 있다.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타인의 시선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풍토는 ‘몸의 식민화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데 매우 비옥한 토양을 갖고 있는 듯하다. 몸의 식민화는 마치 서구 열강이 식민지 개척을 통해 거대한 이윤을 창출해냈듯이 오늘날은 자본이 우리의 몸을 상품으로 만들어 적극적으로 이윤을 실현해 가는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 덕분인지 지난 25년여 사이 전문의 숫자는 5배 정도 증가한 반면 성형외과 의사는 무려 17배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였고,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는 다이어트 관련 산업이 폭증하고 뒤를 이어 ‘뷰티산업’이 불황을 모른 채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결과를 불렀다.

문제는 몸의 프로젝트화가 진행되고 몸의 식민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아름다움이 대중매체를 통해 힘을 얻으면서, 우리 모두를 몸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가 새삼 그리울 만큼 외모 지상주의가 우리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 루저가 된 셈이다.

실증적 연구 결과, 성형수술에 적극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일수록 자아존중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고, 그로 인해 성형은 자신감 회복에 도움을 주기보다 성형중독에 빠질 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모로 인해 차별받아 본 경험 자체가 성형에 몰입하고 다이어트를 실행함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나타났음도 주목할 만하다.

고도소비사회에서 뷰티산업들이 쏟아 내는 구호는 우리들로 하여금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 몸을 디자인하고 키 늘리기 수술을 감행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몸을 주체적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야말로 소비자본주의가 유포해 낸 ‘허위의식’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보다는 몸을 둘러싼 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나 10인 10색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인정받을 때 우리는 몸의 식민화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타인의 시선이나 몸의 표면보다 자신의 진솔한 목소리와 내면의 깊이를 더하는 데 더욱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때 자신감 또한 견고해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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