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측 “백지 위에 새로 그리겠다” 밀어부치기

중앙대가 구조조정안을 놓고 본부와 구성원간 갈등을 빚고 있다. 본부측은 학문단위별 취업률을 핵심지표로 한 학과평가 결과를 근거로 “백지 위에 새로 그리겠다”며 밀어부치고 있지만, 교수와 학생들은 “시장영합형 구조조정은 안된다”고 성토하고 있다.

중앙대 본부는 지난달 29일 현행 18개 단과대학 77개 학과 체제를 10개 단과대학, 40개 학과·학부로 광역화하고 5개 계열로 묶는 학문단위 재편성안을 일부 언론을 통해 발표했다.

이 안에 따르면 기존 단과대학은 인문 인문·사회·사범계열, 자연·공학계열, 의·약학계열, 경영·경제계열, 예·체능계열 등 5개 계열로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전공과 학과는 없어지게 된다.

또 5명의 계열별 부총장을 임명해 인사추천권을 비롯한 예산, 교원 및 직원 승진심사권 등 대학 운영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책임 운영하도록 하는 책임부총장제도 도입할 계획이다.

본부측은 이 같은 학문단위 재편성안을 지난달 18일 대학 자문기구인 평의원회에 보고했으며, 교내외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3월 최종안을 확정, 2011학년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이번 재편성안 마련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계열별 대표 교수 30명은 지난 달 30일 성명을 내고 “본부의 학문단위조정안이 대학의 이념과 정체성에 비추어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반발했다.

본부측 안의 근거가 된 학과 평가 지표 중 결정적인 기준으로 사용된 ‘취업률’ 지표의 타당성과 취업률 자료의 신뢰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대학의 정신과 학문의 고유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철저히 시장논리와 기능적 합리성에 기초하고 있다”면서 “학문 공동체로서 대학의 본질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학부제를 시행해 온 주요 대학들이 수 년 전부터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다시 학과제로 전환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지극히 시대 역행적인 방안”이라고 꼬집고 “기초학문 육성과 연구역량 제고 방안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특히 본부가 이 같은 구조조정 안을 언론에 알리는 과정도 문제삼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학문단위조정안을 마치 확정안처럼 언론에 공표한 것은 본부와 평교수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할 학문단위 조정 논의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지극히 비신사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교수협의회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이번 조정안과 그 발표 과정이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서 “본부 위원회와 계열 위원회가 워크숍을 진행하기에 앞서 본부 안을 구조조정안으로 언론에 알리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교협은 “본부안은 전형적인 탑다운 형 구조조정 방식을 따르고 있다”면서 “본부위원들 대부분 보직을 맡거나 본부가 직접 선임한 교수로 이들은 재단이나 대학본부의 의중은 충실히 반영할지 몰라도 아래로부터의 의사반영에는 소홀하기 쉽다. 학내 민주주의가 무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본부안의 근거가 된 학과 평가 지표 가운데 졸업생 취업률과 졸업 후 지업의 전공일치도를 과도하게 높게 반영했다”면서 “이는 대학의 본분인 학문과 교육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시장의 요구에 더 충실한, 시장영합형 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상당 수 학문분야를 폐과에 가까운 통합 대상으로 삼고 있다”면서 “수학, 철학, 역사학, 정치학 등 기초학문을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를 가지고 학과를 아예 없애거나 학과 대신 학부나 전공으로 통폐합한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대학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박범훈 총장은 이처럼 구성원들의 반발이 일자 지난 4일 구성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계열위원회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면서도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더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지표와 평가방법을 제시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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