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유 환 동국대 교수(북한학)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연내 정상회담 개최’ 발언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지층의 반발 등을 의식해서인지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 하에 남북정상이 만나야 한다”며 다시 ‘확고한 원칙’을 강조했다. 파장을 의식해 원래의 입장으로 되돌아가기는 했지만 연내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잠재의식의 단면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올해는 이명박 정부의 집권 3년차이다. 지난 2년 동안의 남북관계 재조정에 실패하고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됐다. 올해마저 남북관계를 풀지 못하면 임기 내 남북관계의 진전이 어려울 수도 있다. 대통령의 임기라는 시간적 제약을 고려하면 올해 정상회담 성사 등으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풀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1월 4일 새해연설에서 “올해는 남북관계에도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신뢰가 조성돼야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간에는 개성공단 실무접촉 등 경협과 관련한 접촉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고위급 대화를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조문사절과의 면담과 비밀접촉을 통해 북측이 정상회담 용의를 표시하고 있지만, 북한 태도변화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다. 북한 지도부는 지난해 8월 이후 국면전환을 결심하고 대남 유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지만 진의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경제적 실리는 챙기면서 체제위협에는 단호하게 맞서는 북한의 이중노선 때문에 남측은 북한의 유화 움직임을 경계하고 있다.

북측이 정상회담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북-미 적대관계 해소를 위한 안보차원과 대북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실리차원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최근 북한의 최대관심은 평화협정체결 문제다. 북한은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평화협정체결을 근본문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남북갈등이 지속되는 한 평화협정 체결이 어렵기 때문에 분위기 조성차원에서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로켓발사와 핵실험 이후 유엔차원의 대북제재에 따른 경제난의 가중도 남북정상회담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년 동안 남측은 정부차원의 대북지원을 중단했다. 매년 들어오던 남측의 인도적 지원이 끊긴데 따른 식량난의 가중, 제재에 따른 외화부족, 화폐개혁에 따른 혼란 등으로 북한의 경제사정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도움과 남북정상회담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북한이 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야 하는 부담과 함께 후계구축을 위한 사전정비 차원에서도 볼 수 있다.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후계구축의 사전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북-미 적대관계 해소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고 하면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한반도 비핵화 과정도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이란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핵문제해결에 진전이 없는 현시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전통적 지지세력 중 일부에서는 ‘조건 없는 정상회담’ 추진에 강한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따라서 남측 정부는 대가없이 핵문제를 주 의제로 하고,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우선 해결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북측은 인도적 지원에 관심을 가지면서 ‘핵문제는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로 규정, 미국과의 양자협상이나 6자회담에서 다루려 하며,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회피하고 있다. 남측이나 북측 어느 한쪽이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정상회담 성사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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