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더 믿음을 주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 공부를 하다 보니 어느덧 박사까지 됐네요."

경기도 성남시에서 `묘향산 한의원'을 운영하는 박수현(44)씨가 탈북자 출신 한의사 중에는 처음으로 박사 학위까지 따는 영예를 얻게 됐다.

박씨는 한약재인 청피(귤껍질)와 지골피(구기자 뿌리의 껍질)가 스트레스 감소에 끼치는 효과를 주제로 한 연구논문을 써 19일 열리는 경원대 졸업식에서 박사모를 쓴다.

박씨는 2001년에도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한의사가 되는 기록을 세운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새로 `1호' 기록을 더한 것이다.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개업해 보통 남한 사람들에 비해서도 남부럽지 않은 한의사가 됐지만 배움에 대한 갈망은 접지 못 했다.

박씨는 "한의사만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한의학은 믿음의 의학이다"라며 "환자가 나를 더 잘 믿을수록 치료 효과가 더 좋으니 더 좋은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난관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석사 과정에 들어가 2년 과정을 수료했지만 뜻하지 않은 `영어'라는 복병이 박씨의 발목을 잡았던 것.

학교에서 출제하는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만 졸업 논문을 쓸 수 있었는데 다른 동료는 모두 쉽게 통과했지만 북한에서부터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박씨만 떨어지는 바람에 졸업을 못 한 것이다.

이때부터 박씨는 한의학이 아닌 영어와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다음에도 낙방, 그다음에도 또 낙방이었다.

석사 입학 5년 만인 2007년에야 박씨는 영어시험의 벽을 넘어서 석사 학위를 땄고 연이어 박사 과정에 들어갔다.

영어 관문을 넘어선 박씨는 순풍에 돛 단 듯 학업을 계속해 박사 정규과정 3년을 마치고 결국 올해 박사모를 쓰게 된 것이다.

박씨는 "박사 학위를 따고 보니 오히려 10년 전에 개업할 때의 설레던 마음이 생각난다"며 "내게 오는 사람들은 다 아파서 오는 사람들이니 초심을 잃지 않고 이웃같이 따듯하게 대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졸업식을 앞두고 마냥 기뻐야 할 박씨지만 그에게는 얼마 전 조금 아쉬운 일이 있었다.

4형제 중 둘째인 자기를 따라 한의사가 된 막냇동생에 이어 한의대를 졸업한 셋째가 최근 한의사 국가고시를 봤는데 그만 합격을 하지 못한 것이다.

유례없는 `탈북자 출신 3형제 한의사' 탄생을 기대했던 그로서는 아쉬움이 컸다.

박씨는 그러나 "처음에 한국에 와서 방황하기도 했던 동생들 때문에 걱정도 많았지만 지금은 저를 따라 어엿한 한의학도의 길을 걷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럽다"며 "셋째도 꼭 다음 시험에는 붙을 것"이라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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