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교에 20~25명 배정 선정 대학들도 ‘고민’

약대 신설대학이 최종 확정됐다. 본지가 관측한 바대로 대학 간 약대정원 나눠먹기가 현실화 됐다. 교과부는 26일 15개 신설 약대를 선정하면서 경기지역 5개 대학에 20명씩을,대구·인천·충남·전남·경남지역 2개교씩 총 10개 대학에 각각 25명씩을 배정했다.

최종 선정된 15개 대학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초 예상대로 ‘계획평가’ 보다는 연구역량에 따라 희비가 갈렸다. 지난 10월 교과부가 발표한 평가지표는 △교육·연구 여건과 역량(18%) △6년제 약대 설립기반과 약학관련 분야 발전 가능성(22%) △약학대학 운영계획(30%) △교수·학생 충원계획(10%) △교육·연구시설과 기자재 확보 계획(20%) 등 총 5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결과적으로 배점의 60%를 ‘계획평가’에, 배점의 40%는 교육·연구역량과 발전가능성에 두었다.

◆약대 신설, 연구력 따라 ‘희비’ 갈려=그러나 예상대로 ‘계획’보다는 ‘연구역량’에 따라 승부가 갈렸다는 분석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당초 예상대로 연구 실적을 갖춘 대학들이 대부분 선정됐다”며 “연구 실적에 따라 정량평가의 우열이 갈린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교과부도 “약대정원배정심사위에서 생명과학 분야의 연구역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신장시킬 수 있도록 연구중심 약대로 성장이 가능한 경쟁력 있는 대학을 선정했다”고 밝혀, 이를 뒷받침 했다.

실제로 교과부는 약대 신청 시 연구력을 뒷받침 할 실적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최근 3년간 이공계 분야 정부연구비 수혜실적을 제출했다. 연구비 수혜 실적은 해당 대학의 연구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아울러 이공계 교수들의 논문실적도 요구했다. 그것도 SCI(E)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실적으로 인정했다.

논문의 질도 따졌다. 교과부는 △최근 3년간 이공계 교수 가운데 피인용 지수(Impact-Factor)가 높은 SCI 저널에 게재한 대표 논문 △국내외 특허등록 실적도 제출받았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에 점수를 더 줬을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약대 신청서를 제출한 대학들은 대부분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다. 지난달 본지가 전국 14개 대학의 투자계획 규모를 조사한 결과, 평균 330억원을 기록했다. 모두 △약대 건물 신축 △전임교원 20명 이상 채용 △교육 기자재 구입 △약초원 조성 등에 투입되는 비용이다. 대학마다 약대를 유치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투자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때문에 '계획평가'가 전체 배점의 60%를 차지한 반면, 대학간 변별력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40%를 차지하는 교육·연구 역량과 발전가능성 등에서 당락이 갈린 것이다.

◆20~25명 배정, 선정된 대학도 ‘고민’=문제는 20명~25명의 정원을 배정받은 약대들의 고민이다. 약대신설 인가를 받은 대학들은 6년제 약학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기존 4년제에서 요구되는 졸업학점 기준은 110학점이지만, 6년제 하에선 170학점이 요구된다. 따라서 전임교원 수가 최소 20명은 필요하다는 게 약학대학협의회의 공식 견해다.

그러나 약대 정원 나눠주기로 등록금 수입에 기대를 걸기는 어려워 졌다. 몇몇 대학들은 약대 학생들에게 전액장학금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런 대학들은 등록금 수입이 ‘제로’인 상태에서 △약대건물 신축 △교육 기자재 구입 △교수 채용 등을 감내해야 한다. 등록금을 받는 대학도 문제다. 학생 20~25명에 대한 등록금 수입으로는 전임 교수 인건비 비용도 감당키 어렵다. 충남지역서 약대를 배정받은 대학의 한 교수는 “정원 25명에 따른 등록금 수입으로는 교수도 제대로 충원하지 못할 것”이라며 “약대 선정에 정치논리가 개입돼 나눠먹기식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교과부도 이런 비난을 의식해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한 약학전공의 저변 확대를 위해 15개 대학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의대가 전국 41개 대학에 설치된 반면 약대는 20개 대학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워 ‘정원 나눠주기’를 합리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약대 운영과정에서 신설 약대들의 불만은 계속해 터져 나올 전망이다. 교과부가 “2012년부터 약대별 최소정원 30명 수준을 맞추겠다”고 밝혔지만,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단 얘기다. 이미 약대를 운영해 본 대학들도 추가 증원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본다. 한 지방국립대 약대학장은 “대학들에게 등록금 수입은 포기하고 약대를 통해 사회사업을 하라는 것”이라며 “향후 신설약대들의 증원 요구가 불거져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럴 거면 평가 왜 했나”= 실제로 신설 약대 정원을 배정받은 대학들의 불만이 강하게 제기된다. “정원 나눠주기를 할 거였다면 대학 간 경쟁이 불필요했다”는 불만이다. 특히 지역마다 약대 신설이 유력시 됐던 대학들의 불만이 강하다.

정희석 경북대 기획처장은 “50명 정원을 바라고 있었는데 지역 내 복수선정으로 25명밖에 배정받지 못한 점이 아쉽다”며 “25명 갖고는 단과대학을 운영하기가 어렵다. 이럴 거였으면 애초에 경쟁을 시킬 필요가 없지 않았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 처장은 “교과부의 마지막 발표에서 ‘나눠주기식’ 정치논리가 개입된 것 같아 불만”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지역에서 약대 정원을 배정받은 계명대도 “일단 선정된 데에 의미를 부여한다”면서도 “정원 25명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해봐야할 문제로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천에서 지역대학들을 누르고 약대신설 정원을 배정받은 연세대도 정원에 대한 불만은 크다. 안영수 약대추진위원장(의대 교수)은 “이렇게 많은 대학에 정원을 나눠준다면 그동안 들인 노력은 무엇이 되느냐”며 “(약대 신설을 위해) 2년 가까이 열심히 준비해는데 교과부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충남에서 약대 신설 정원을 배정받은 고려대도 우려를 나타냈다. 박영인 약대설립추진위원장(생명과학대 교수)은 “정부에서 정원 문제를 신속히 보완하지 않으면, 사설 약사 양성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대학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규모 정원으로 등록금 수입에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에선 교육의 질적 하락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정치논리 개입”vs“우열 가리기 어려워”=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의 약대설립위원장은 “결과를 보니 약대 신청 대학들을 대상으로 왜 평가를 했는지 모르겠다”며 “1등과 2등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약대 정원을 준 데에는 정치논리가 개입됐다고 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5개 대학이 무더기로 선정된 경기도의 아주대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김민구 기획처장은 “5개 대학에 모두 약대를 줬는데 정치논리에 굴복한 게 아니냐”라며 “1차심사 통과 대학에 약대 정원을 다 줄 거라면 현장실사는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교과부 관계자는 “평가 결과 대학 간 우열을 가리기 힘든 대학들이 많았다”며 “선정대학 모두 연구역량과 실습여건을 갖췄기 때문에 약대 정원을 나눠주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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