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 발언 이후 대학가 반응

정운찬 총리가 잇단 ‘3불 정책 재검토’를 시사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연세대 총장도 3불 폐지의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3불 폐지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의 입학처장들은 3불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5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학들은 총리와 일부 사립대 총장이 주도하는 3불 관련 논의는 부정적으로 봤다. 정부가 나서 분위기를 몰고 가는 것 보다는 체계적 연구와 공론의 장이 필요하단 얘기다. 아울러 2불(고교등급제·대학별고사)에 대해선 ‘현실’을 감안해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반면 기여입학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대세를 이뤘다.

이기범 숙명여대 입학처장은 “고교등급제는 지역간 격차, 본고사는 사교육문제, 기여입학제는 사회계층간 갈등이 걸린 공정성과 형평성의 문제”라며 “기여입학도 어떤 기여입학을 말하는지 3불 정책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등은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체계적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윤제 성균관대 입학처장도 “3불 폐지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본다”며 “오히려 (도입 초기인) 입학사정관제부터 제대로 정비하고 3불을 논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용찬 영남대 입학처장도 “정운찬 총리의 발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정부가 선언해 놓고 끌고가는 형태의 자율화는 반대한다”며 “정 총리와 보조를 맞춰 일부 상위권 대학이 3불 폐지를 주도하는 모양새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의 입학팀장도 “입학사정관제가 이제 막 도입돼 정착 단계인 시점에서 3불을 들고 나오는 것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며 “새로운 정책으로 혼란을 느낄 학생, 교사 학부모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는 면이 있더라도 고교등급제·대학별고사는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동노 연세대 입학처장은 “오히려 수능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면 줄세우기 경향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신입생 선발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 대학별로 특색에 맞게 학생을 선발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등급제에 대해서도 “실제 고교별 성적에 상당한 편차가 있는 상황에서 고교 간 격차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된다”며 “고교별 등급을 반영하는 게 오히려 실질적인 평등”이라고 주장했다.

입학사정관제 도입으로 고교등급제 폐지 논의가 무의미 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이윤호 동국대 입학처장은 “3불정책 중 2불(고교등급제·대학별고사)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정성평가를 위주로 하는 입학사정관제에선 고교를 등급화시키는 전제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며 “각 대학들이 논술을 포함한 다양한 입학전형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본고사 금지 논의도 무의미 해 졌다”고 말했다. 

사실상 고교등급제와 대학별고사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굳기 금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박흥수 한국외대 입학처장은 “대학들이 실질적으로는 보이지 않게 고교등급제를 시행하고 있고, 초중고교의 학력평가가 공개되는 마당이다. 현실적인 차이를 인정해 고교등급제를 인정해야 한다”며 “본고사도 이미 대학마다 논술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허용해 학교 특성에 따라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 대학들은 급작스런 ‘3불 폐지’보다는 점진적 폐지, 대학별 선택적 수용을 주장했다. 이철리 경남대 입학처장은 “입학문제를 대학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방향에선 동의하지만, 자율화 과정이 갑작스럽게 진행돼선 안 된다”며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신중하고도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섭 경북대 입학처장도 “정운찬 총리의 갑작스런 3불 발언은 당황스럽다”며 “3불을 폐지하면 지방대는 더욱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3불 폐지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김용찬 영남대 입학처장은 선택적 수용을 주장했다. 그는 “대학별 고사는 각 대학에서 적합한 입시제도 모형을 정립한 후 도입할지 말지 논의해야 하기 때문에 세부규제는 풀고 대학 자율에 맡길 문제”라며 “그러나 고교등급제는 대학입시에서 이미 출신고교가 고려되고 있기 때문에 음성적으로 명문고에 점수를 주는 방식보다는 정보를 공개해 객관적 데이터를 주는 게 낫다”고 밝혔다. 이미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는 ‘고교등급제’를 양지로 끌어내자는 지적이다.

같은 지역의 지방 사립대라도 2불에 관해 입장차가 갈리는 경우도 있었다. 김재필 순천향대 입학처장은 “다양한 시험형태로 사교육을 배재하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라면 본고사는 필요하다”며 “고교등급제도 현실적으로 고교 간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 이를 인정하지 말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영근 선문대 입학처장은 “3불이 폐지되면 수도권 대학에 혜택이 주어질 것으로 본다”며 “지금보다 지역 간 격차가 완화되고 학생들이 적성과 특성에 맞게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는 풍토가 조성된다면 폐지 검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여입학제 관해선 수도권·지방 대학들이 대체적으로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김윤제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기여입학제는 한국의 정서상 시기상조”라며 “상당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철리 경남대 입학처장도 “기여입학제의 경우 현재 사회적으로 합의가 전혀 돼 있지 않고, 공감대 형성도 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박흥수 한국외대 입학처장도 “우리나라 대학의 학사관리는 미국처럼 엄격하지 않기 때문에 기여입학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실력이 부족해도) 결국은 졸업하게 될 것”이라며 “대학들도 기여입학으로 들어온 돈을 장학금으로 돌린다고 하지만, 그걸 전부 장학금으로 돌리겠느냐”고 반문했다.

반면 이윤호 동국대 입학처장은 “극히 소수를 뽑는 ‘정원외 선발’로 기여입학제를 시행하면 서민들에게도 피해가 없을 것”이라며 “기여입학제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 등으로) 수혜가 돌아간다는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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