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의 '합의' 전제되면 등록금 인상도 수용"

“학부생 등록금 동결, 환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동국대 총학생회 명의로 17일 나붙은 자보의 첫 문구다. 으레 ‘등록금 동결’을 학생회의 성과로 강조하는 자보와는 달랐다. 이 자보는 등록금 동결 여부보다 학생들과의 합의가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같은 날 연세대에서는 ‘근본적인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 선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미 등록금 2.5% 인상을 발표한 바 있는 연세대도 포커스는 대학의 등록금 동결 여부가 아니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대학 본부와 총학생회가 함께 정부의 교육재정 지원 확대를 요구할 것이란 내용으로 끝맺었다.

대학가 총학생회(이하 총학)들이 달라지고 있다. 등록금 동결은 총학의 오랜 화두였다. 대학 본부와의 투쟁으로 얻어내야 할 성과물이란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 총학들은 등록금 동결 여부를 ‘부차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얼핏 총학의 보수화로 비칠 법도 하지만 스스로는 ‘합리화’의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동국대는 작년에 이어 2년째 등록금이 동결됐다. 하지만 총학은 동결이란 ‘결과’보다 논의 ‘과정’을 더 문제 삼았다. 박인우 동국대 총학생회장(윤리문화학·4)은 “동결이든 인상이든 결정되는 것은 차후의 일”이라며 “등록금 결정 과정에서 학생들은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의사결정권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에게는 한 마디 논의조차 없었던 게 진짜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동국대에는 ‘등록금책정위원회’(이하 등책위)로 통칭되는 대학과 학생간 등록금 협의기구가 없다. 박인우 총학생회장은 “다른 대학들은 형식적이더라도 등책위가 열리고 학생들도 참여하고 있다. 등책위 같은 제도를 마련해 학생 대표가 대학의 등록금 산정 근거와 예산 등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학생 참여를 통한 합의가 전제되면 등록금 인상에도 무조건 반대하지만은 않겠다는 입장이다. 연세대의 사례를 들기도 했다. 이들은 자보에서 “연세대의 경우 등록금은 인상됐지만 이례적으로 학생과 대학이 합의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동국대는 등록금이 동결됐지만, 책정 과정에서 학생들과 함께 하는 노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총학 역시 등록금 동결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지난 1월 말 대학 본부와 함께 2.5% 인상에 합의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 그 방증이다. 이들의 17일 기자회견도 대정부 요구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 대학을 상대로 한 등록금 동결 투쟁에 매몰되기에 앞서, 대학과 함께 정부에 교육정책 개선을 촉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정다혜 연세대 총학생회장(사학·4)은 “근본적 문제는 정부가 교육비용 부담을 대학과 학생 개개인에게 전담하고 있는 것”이라며 “개별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2%냐 3%냐 같은 숫자보다 등록금 원가 산정에 학생들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등록금 동결 여부는 그 후에 합의할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등록금 동결 이면의 문제점들을 꼬집기도 했다. 정다혜 총학생회장은 “등록금이 동결된다 해도 사실상 수입은 그대로인 사례가 많다. 대학원 등록금이나 신입생 입학금을 올린다든지, 장학금 예산을 축소하는 경우가 그렇다”면서 “대학 본부와 학생이 함께 정부에 재정 지원 확대 요구와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 문제제기 등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합의가능한 등록금 수준을 책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상황은 다른 대학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3.19%의 등록금 인상률을 기록한 한국외대 총학은 등록금 인상 자체보다도 학생들과의 협의가 없었던 점을 절차상 문제로 꼽는다. “학교의 주인이라는 학생들과 상의 한 번 없이 대학 본부가 등록금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통보했다”는 불만인 셈이다.

대정부 항의 기자회견, 기획예산처장과의 면담, 등록금책정자문위원회 개최 등 전방위적 활동을 펼친 고려대 총학은 등록금 동결을 성과로 꼽으면서도 △‘등록금심의위원회’ 정례화 △이월적립금 환수 △예산안 심의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또 “OECD 국가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등록금 문제는 동결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보완도 계속 논의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동덕여대 총학도 등록금 동결 자체보다 대학 본부가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한 점에 주목한다. 최유미 동덕여대 총학생회장(경영학·4)은 “등책위에서 학생 대표의 의견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적립금 기금에서 2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전입할 수 있게 됐다. 등록금 동결 말고도, 적립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예산을 절감하자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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