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한국 최초 영화는 연극형태의 "의리적 구토"

영화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참으로 친근하다. 더구나 누구라도 한번 쯤은 접해 보았을 영상채팅과 디지털 카메라폰 시대를 살면서 가정에 16mm 캠코더가 필수품이 된 시대인 만큼 영상에 대한 친밀도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영화와 더불어 인생을 살아온 시인이며, 영화평론가로 현재 청주대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있는 김종원 교수를 본지 김우종 주필이 만났다.
김우종 = 올해로 한국영화사가 100주년을 맞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란 것이 언제 어떻게 우리 한국사회에서 시작된 것입니까? 김종원 = 한국영화사의 시작을 자주적 역량에 의해 영화가 제작된 시점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영화가 이 땅에 들어온 시점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후자로 본다면 1903년 6월 24일자 황성신문의 한 광고가 한국영화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대문 전기회사의 기계창에서 구미각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내용이었죠. 당시의 영화는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가 중심을 이루게 됩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프랑스 리옹의 루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촬영영사기술장치를 발명해냄으로서 영화가 시작된 것인데 40초 내지 1분 미만의 실사영화가 최초로 제작됐죠. 김우종 = 그러면 최초로 우리의 손으로 제작된 영화는 누구의 어떤 영화입니까? 김종원 =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공개된 “의리적 구토”라는 활동사진입니다. 이것은 연극에서 보여 줄 수 없는 부분, 말하자면 한강철교나 살곶이 같은 야외장면에서 인물들이 거니는 모습 등을 찍어서 연극상연 중에 인물들이 커튼 뒤로 사라지면 스크린이 내려와 이것을 보여주는 형식이었죠. 이른바 연쇄극, kinerd라고 일컬어집니다. 세계 영화 역사상 이같은 방식으로 영화가 시작된 것은 한국이 유일한 경우입니다. 일본은 가부끼, 중국은 경극, 인도는 자체 전통극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완전한 영화로 상영하기 시작한 데 반해 우리의 경우 연극에 접목해서 불완전하게 시작됐다는 점에서 이를 한국영화의 한계이자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1923년 이후 제작된 영화를 우리 영화의 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김우종 = 1923년의 그 영화는 누가 만든 어떤 영화입니까? 김종원 = 그것을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깝게도 우리 영화는 100년을 헤아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정비가 되지 못했습니다. 문학이나 연극, 음악의 역사와는 다르죠. 일본은 풍부한 기술과 인력과 자본이 있었습니다. 한국영화의 역사에서 빼놓지 못하는 부분이 일본이라는 요소이며 우리 영화의 시작도 일본인들이 깊숙히 간여해서 이뤄진 것이거든요.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제작된 우리 영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가 또다른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우종 = 오늘날의 우리 영화는 어떻습니까? 김종원 = 지금은 5백만의 영화 관객을 흡수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1990년대 ‘쉬리’를 시작으로 ‘공동경비구역 JSA’라든지 ‘친구’ 등이 관객동원에 크게 성공을 거둡니다. UIP 직배영화가 들어왔던 1980년대 중후반 이후 오히려 우리의 영화는 자생력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생존의 여지를 확인하게 된 셈이죠. 국내 영화 점유율이 40%를 넘어선 기간이 2년을 헤아리고 있는데 이렇게 자국 영화가 지배력을 갖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드뭅니다. 김우종 = 정부에서 보호 정책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그와 같은 역량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인가요? 김종원 = 딱 잘라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정책적 지원의 영향이 컸던 게 사실이니까요. ‘스크린 쿼터’라는 법적 제도 장치에 의해 우리 영화는 1년에 148일간은 상영이 보호됐습니다. 한국영화도 경쟁할 시장에 나가게 해줘야 한다는 마지노선이었던 겁니다. 최근에는 글로벌 시대에서의 적합성을 놓고 재정부나 상공부가 스크린 쿼터제의 축소나 전면 취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김우종 = 한국영화의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김종원 = 누가 봐도 기술적인 면에서만은 일본에 비해서 절대 뒤지지 않는 상당한 수준에 와있습니다. 김우종 = 영화등급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면서 우리 영화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해오셨을 터인데 한국영화에 대해 불만스러운 점은 없으십니까? 김종원 = ‘꿩잡는 매’론(論)을 제시할까 합니다. 관객을 우선 끌여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는 물론 홍콩영화와 견주어도 우리 영화는 경쟁력이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상업적 토대의 마련이 절실했죠. 바로 지금 그 상업적 토대가 마련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주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IT문화가 발전한 만큼 기술적인 면 즉 컴퓨터 그래픽, 특수촬영 등이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영화에서는 흥미로운 사건과 테크닉 속에 인간이 묻혀서 보이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찰리 채플린의 예술 지상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업성과 예술성이 공존해야 하는 시대이며 균형과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한국영화는 흥행을 위해 관객을 끌어모으는 동안 인간을 그리는 데 소홀했던 점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디어의 전환과 소재의 다양화, 장르의 다변화 그리고 무한한 상상력이 특히 요구됩니다. 흥행작의 아류영화라는 안전장치에만 관심을 가져선 안된단 거죠. 이것이 우리 영화에 애정을 갖는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김우종 = 그런 문제들이 언제까지 되풀이될까요? 그와같은 영화를 계속 봐줘야 하는 겁니까? 김종원 = 관객은 양면성을 가집니다. 영화를 흥행하게 하는 것도 관객이며 이를 비판하는 것도 관객이거든요. 이같은 이중성을 인정하되 그렇다고 흥행만을 염두에 두어 오락성에 치중하는 등 무작정 관객의 흥미에 영합할 것이 아니라 상업적 아이디어를 새롭게 발굴해야죠. 관객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김우종 =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고 계신데 학생들이나 학과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김종원 = 전국에 40여개 이상의 대학에 관련 학과가 설치돼 있는데 경제논리로 양산된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영화가 글로벌 시대에 신뢰받을 수 있는 장르임을 확신하고 진지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단순히 연기지망생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간에 지식적 간극이 더욱 심화되고 있죠. 김우종 = IT시대의 발전을 위해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김종원 = 70년대 중후반 컬러 텔레비젼이 출시되면서 영화가 위기를 맞은 경험이 있었죠. 오히려 영화가 대형화면이라는 시청각 매체의 위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실감했습니다. 블럭 버스터를 즐길 수 있는 스펙타클한 대형화면이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거죠. 인터넷 시대에 누구든지 아마추어 연출가나 감독이 되는 상황에서 디지털 세대는 영상에 주목하기 마련입니다. 다양하고 용이한 접근성이 이같은 영화에 대한 친밀도를 더욱 높이고 있죠. 이와 같은 사회적 현상을 영화쪽에서 긍정적인 차원으로 개발해 한단계 진보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이 바로 그 적기입니다. 그만큼 아이디어 창출과 노력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죠. 김우종 = 그런데 김선생 말씀대로 우리 영화는 지금 관객동원에서 웬만큼 ‘꿩 잡는 매’로서 성공단계에 이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만 혹시 사업적 성공에 바빠 영화가 우리의 특수한 역사적 현실 속에서 해야할 역할에 다소 소홀한 건 아닌가요? 김종원 = 아닙니다. ‘서편제’가 우리 고유 문화의 미(美)를 파고 들면서도 세계 속에서 성공하고 있듯이 흥행대작인 ‘공동경비구역 JSA’나 ‘쉬리’ 등은 우리 분단 현실의 아픔과 평화에 대한 갈망을 극명하게 드러냈죠. 그런 면에서 우리 영화에 좀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을 갖고 대학에서도 이론만이 아니라 현장 중심성을 강화해 세계적 경쟁력을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김종원(金鍾元)은 누구인가 1937년 제주 출생 < 학력 > 1958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1년 동국대 국문과 졸업 < 경력 > 1959년 「사상계」 신인작품 당선 1963년 월간 「영화잡지」 편집장 1966년 「주부생활」 편집차장 1969년∼75년 조선일보「주간조선」기자 1978년 태창영화사 기획실장 겸 태창문화사 주간 1982년 영화평론가협회장 1991년∼97년 공연윤리위원회 영화심의위원 1994년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이사(현) 1997년 공연예술진흥협회 상근 심의위원 1998년 청주대 공연영상학부 겸임교수(현) < 상훈 > 청룡영화상, 정영일 영화평론상 < 저서 > “영상시대의 우화” “세계명배우100선” “생명의장” “광화문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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