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식 전주대 총장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원)의 2009년도 세계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두뇌 유출 지수는 2006년 40위에서 2009년 48위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2006년 자료에 의하면 국외 한국 유학생 수가 국내 외국 유학생 수의 5.8배에 달했다. 소위 ‘두뇌 역조현상’이 심각한 것이다. 2009년 ‘더타임즈’ 세계대학평가에서도 국내 대학 중에선 서울대가 47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20위권 안에 한 대학도 들지 못한 것이다. 한국은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에서도 30위에 머물렀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경쟁력이 세계 수준에는 상당히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경쟁력이 이렇게 낮은 데는 많은 원인들이 있다. 그렇지만 크게는 대학 운영을 위한 정책제도와 재정 지원,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고등 공교육의 약 80%를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에 대한 정책제도와 재정 지원 측면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선 현행 제반 사립 고등교육 정책과 제도들이 사학의 특수성에 따른 자율적 운영을 장려하지 못했다. 오히려 운영 비리를 과도하게 우려해 사학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바라본 감이 없지 않다. ‘이중잣대’도 문제다. 공공적 책무성에서는 사학과 국·공립대에게 같은 기준을 요구한다. 반면 재정 지원 면에서는 사학과 국·공립대에 다른 기준을 들이댄다. ‘고등교육 수요 충족’이란 동일한 기능의 두 주체에 대해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셈이다.

현행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에는 사학 경영의 자율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요소들이 있다. 먼저 개방이사제도를 두고, 실질적인 개방이사 선임권을 학교 법인이 아닌 대학평의원회에 있도록 한 점이다. 이는 이사회의 본질을 훼손하고, 사학의 설립 및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 다음으로 현행 사학법이 법제화한 대학평의원회 제도의 폐해를 들 수 있다. 대학평의원회가 학내 최고 심의기구가 돼 결과적으로 기존 교무위원회나 학·처장회의와 기능적으로 충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 많은 사립대에서 대학평의원회의 도를 넘는 간섭과 함께 운영에 제동이 걸리는 부작용을 겪었다. 이로 인해 학내 분쟁과 학교 운영의 심각한 부담이란 ‘이중고’에 처했다. 마지막으로 임시이사제도에 관할청의 직접 개입 소지를 남겨둬, 그에 따른 운영상 파행이 초래되는 사례도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면 먼저 사학을 규제의 대상이 아닌, 자율과 책임의 주체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선행돼야 한다. 사전적 규제보다는 사후적 평가와 감사에 따른 철저한 시정조치를 내용으로 하는 정책적 전환도 이뤄져야 한다. 개방이사제도는 유지하더라도 대학평의원회가 주관하는 추천위원회 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대학평의원회는 현행 의무적 설치를 대학의 선택적 설치로 바꾸고, 심의기관이 아닌 자문기관으로 기능을 한정해야 한다. 임시이사제도도 관할청의 직접 개입 여지를 낮추는 방식으로 보완돼야 할 것이다.

사립대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이 갖는 문제점들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재정에서 차지하는 정부 부담은 약 25%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대학생 1인당 교육비 수준은 약 8500달러로 미국의 34%, OECD 평균의 69%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사립대의 재정상 등록금 의존도는 70%에 이른다. 매년 등록금 인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어 정부의 교육 재정 투자 확대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교육 재정 지원의 불균형도 존재한다. 초·중등교육 부문에 비해 고등교육 부문이, 고등교육 내에서는 국·공립대에 비해 사립대가 적게 지원받는다. 2009년 교과부 예산 및 기금운용 계획에 따르면, 대학생 1인당 예산액이 국·공립대는 355만 원이나 사립대는 59만 원에 그친다. 특히 2001년부터 2005년까지 4년제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정부 재정 지원 규모를 비교해보면, 학생 1인당 수혜액은 국·공립대가 사립대의 15.5배에 달했다. 국·공립대와 사립대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의 불균형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정부의 간접적 재정 지원 면에서도 사립대는 국·공립대에 비해 차별을 겪고 있다. 대학 기부금의 세법상 손금 인정비율이 국·공립대는 100% 인정되나 사립대는 2011년부터 50%로 인정비율이 축소된다. 국가유공자 자녀에 대한 장학금도 국·공립대는 100% 지원되지만 사립대는 50%까지만 지원된다. 학비 면제 중 의무적으로 10% 이상 지급토록 한 ‘가계곤란자 장학금’은 정부가 전액 지원해야 한다. 또한 민간자본 유치사업(BTL·BTO)에서 국·공립대는 영세율을 적용받아 부가가치세를 전액 환급받을 수 있는 반면, 사립대는 면제사업자 규정에 따라 이를 환급받을 수 없다. 각종 대학 지원사업 시 학교의 대응투자액 규모를 평가요소로 한 것도 학교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대학의 경쟁력 향상에는 운영제도 선진화와 함께 충분한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란 게 교육선진국들의 경험에서 확인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두 가지 측면의 보완과 개선이 시급하다. 최근 이러한 내용을 충분히 담은 사립학교진흥법 제정 노력이 활발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 법의 조속한 제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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