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이화여대, 구성원과 합의 없이 재단 뜻대로

몇몇 대학들이 재단의 일방적 총장 선출방식 변경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많은 대학들이 기존의 총장 선출방식을 재정비하고 나선 가운데, 일부에서는 구성원과의 합의 없는 재단의 독단적 결정으로 마찰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영남대·이화여대 등은 재단이 일방적으로 총장 선출 과정에서 행사할 수 있었던 구성원들의 영향력을 대폭 줄여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대학 구성원들은 더 나은 총장 선출제도를 모색해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논의 없는 변경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영남대, 재단 마음대로 ‘직선제 폐지’

학교법인 영남학원(이사장 우의형)은 최근 열린 재단이사회에서 영남대·영남이공대학의 총장 선출방식을 변경키로 결정하고 정관을 개정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향후 영남대·영남이공대학은 현행 직선제 대신 간선제 혹은 임명제로 총장을 선출하게 된다.

영남학원 관계자는 “차기 총장부터는 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총추위)가 3배수가량의 후보를 추천토록 한 뒤 재단이사회가 그중 1명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총장 선출방식을 변경할 방침이다. 현재 이 같은 개정안을 교과부에 보고하고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며 “그동안 총장 직선제로 인한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학교 발전을 위해서는 직선제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재단측의 결정을 대학 구성원들은 수용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무엇보다 영남학원이 총장 선출방식 변경에 앞서 영남대·영남이공대학 구성원들과 아무런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따라 현재 대학 구성원들은 현행 총장 선출제도를 재정비해야 하는 것은 옳지만, 일방적 개정은 문제가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영남대 상경대 한 교수는 “재단은 대학 구성원들과 어떠한 합의도 거치지 않고 총장 선출방식을 변경했다. 현행 직선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에는 십분 동의하지만, 일방적 폐지는 옳지 않다”며 “이와 함께 개정안에 의하면 총장 선출과정에서 재단이 행사하는 힘이 전에 비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재단이 구성원들과의 의견 조율 없이 제도를 변경하고 스스로의 힘을 강화한 것은 독재”라고 비판했다.

영남이공대학 한 교수 역시 “구성원들이 직선제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만큼, 재단이 총장 선출방식을 변경하기에 앞서 대화를 시도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며 “모든 집단이 소통 없이는 발전하기 힘든 시대다. 재단이 진심으로 대학 발전을 생각했다면 이처럼 일방적으로 총장 선출제도를 변경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총추위 구성·운영 방법 등 세부 사항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가 더욱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영남대 교수회 소속 한 교수는 “현재 재단은 큰 틀만 변경했을 뿐, 세부 사항들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며 “특히 총추위 구성·운영 방법 등에 따라 간선제인지, 임명제인지가 결정되고 총장 선출에 미치는 재단의 영향력도 달라질 수 있다. 현 이효수 영남대 총장과 이호성 영남이공대학 총장의 임기가 종료되는 2013년 2월까지 남은 시간 동안 재단과 합의점을 도출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영남대 교수도 “영남대는 민주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던 대학이다. 총장 선출에 대한 모든 권한이 재단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재단과 대학 구성원이 끊임없는 논의를 거쳐 모두가 납득할 만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재단 뜻대로 총장 선출 중

영남대와 함께 이화여대도 재단의 일방적 총장 선출방식 변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이화여대의 경우 이미 재단의 뜻대로 차기 총장 선출이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화여대 재단은 현재 총추위원 구성을 모두 마쳤으며, 이달 말까지 차기 총장 선출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화여대 재단인 학교법인 이화학당(이사장 윤후정)은 지난 3월 초 교수들과의 협의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총장 선출방식을 변경, 내부 인터넷 사이트 등에 공지했다. 재단이 제시한 총장 선출방식은 표면적으로는 구성원 투표를 통해 선출된 총추위가 3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재단이 이 중 1명을 총장으로 선임하는 ‘간선제’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재단은 총추위 구성, 후보 지원 자격 등 세부 사항들을 대폭 변경해 총장 선출과정에서 교수들이 행사할 수 있었던 실질적 영향력을 거의 없앴다. 대신 재단의 힘은 한층 강화해 사실상 ‘재단 임명제’에 가까운 총장 선출방식을 내놨다.

새로운 총장 선출방식에 대해 이화여대 교수들은 수정안을 제시하며 반발했으나, 현재 재단은 어떠한 의견도 표명하지 않은 채 당초 입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초 재단은 총추위 구성을 기존 ‘교수 73명·직원 2명’에서 ‘교수 14명·법인 추천자 7명·직원 2명·동창 2명’으로 변경한다는 방침에 맞춰 총추위원 선출을 모두 마쳤다. 또 26일에는 구체적 차기 총장 선출 일정을 공고했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소속 한 교수는 “구체적 일정을 밝히기는 어렵지만, 이제 곧 후보 등록·총추위 회의 등을 거쳐 이달 말이면 차기 총장이 확정될 것”이라며 “재단은 처음부터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총추위가 양심적으로 판단해 주길 바라는 수밖엔 방법이 없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이화여대 교수도 “재단이 교수들을 농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며 “재단은 4년마다 총장을 바꿔 가며 자신 외의 다른 누구도 힘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학내 분란에 대한 큰 책임이 재단에 있다”고 비판했다.

영남대·이화여대에 앞서 지난해에는 조선대가 재단의 독단적 총장 선출제도 변경 추진으로 몸살을 앓았다. 조선대가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던 지난해 9월 재단 이사회는 직선제 폐지를 확정하고, 학내 대학자치운영협의회(이하 대자협)에 새로운 총장 선출안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당시 이사회를 이끌었던 유수택 이사장은 “이사장 취임 전 대자협과 전임 이사회 등에서 직선제 부작용에 대해 우려했다는 사실을 취임 후 알게 됐다. 직선제의 폐해에 대해 대다수 구성원이 공감하고 있고, 타 대학들도 직선제를 폐지하고 있는 추세”라며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연내 직선제를 폐지하고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재단의 일방적 직선제 폐지 추진에 대해 조선대 구성원들은 거세게 반발했으며, 임시이사들은 총장 선출제도를 변경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당시 조선대 구성원들은 “대학 구성원들과의 동의 절차도 없이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며 “총장 선출방식·투표와 같은 중대 현안을 대학 구성원과의 합의 없이 결정하는 것은 결코 마땅치 않다”고 비판했다.

■“제도 변경 앞서 충분한 합의 과정 있어야”

이처럼 총장 선출제도 변경 과정에서 일부 대학들이 분란을 겪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단과 구성원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설령 제도 변경에 따라 총장 선출에 미치는 재단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강해진다 해도, 이에 앞서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합의가 있었다면 학내 분란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총장 선출방식을 변경한 연세대의 사례에서 확인된다.

연세대 교수평의회는 지난해 8월 중순 재단 임명제와 교수 직선제를 절충한 새로운 총장 선출제도 방안을 발표했다. 연세대는 그동안 교수평의회가 주관하는 선거를 통해 2명의 총장후보를 선출한 뒤 재단이 1명을 최종 선임하는 방식으로 신임 총장을 선출해 왔다. 그러나 개선안에서는 재단이 총장후보자 1인을 선임한 후 교수평의회 주관으로 교수들이 신임투표를 실시, 최종 선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방식이 변경됐다. 교수들은 찬반 여부만 표명하기 때문에 전에 비해 총장 선출과정에서 재단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커진다.

주목되는 점은 제도 개정으로 구성원들의 총장 선출권한이 크게 줄었음에도 연세대가 별다른 내부 갈등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다수 연세대 구성원들은 재단과 교수평의회가 총장 선출방식 변경에 앞서 충분한 논의를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연세대 교수평의회는 총장 선출제도 개선을 위해 2008년부터 1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했다. 이후 교수평의회는 총 3가지의 개선안을 마련해 재단에 제시했고, 양 기관이 합의 하에 한 가지를 최종 선택했다.

연세대 교수평의회 관계자는 “대학발전에 보탬이 되면서 재단과 대학구성원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며 “개선안에는 재단이 총장 선출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가지돼 선임 절차·진행·선출자 등에 대해서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교수들의 강력한 요구도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화여대 대학원 소속 한 교수는 “재단 임명제로 총장을 선출한다고 해도 구성원 간 철저한 합의·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대학을 이끌고 싶은 재단의 욕심이 구성원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대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현재 많은 대학들이 총장 선출방식 변경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변경 과정에서 재단과 학내 구성원들이 끊임없는 논의를 거쳐야만 진정한 대학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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