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추락하는 스승의 위상
[시론] 추락하는 스승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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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평소 제자 사랑이 각별하던 원로 교수님들을 모시고 조촐한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에서의 일이다. 말씀을 아끼던 교수님 한 분이 조심스럽게 제자들 주례를 맡지 않게 된 지도 꽤 오래되었다고 고백하셨다. 이유를 여쭤 보니, 예전 제자들은 대학 시절의 은사(恩師)를 결혼식 주례로 모시는 걸 진정 기쁨으로 여겼던 만큼, 당일의 주례 대접에도 소홀함이 없었음은 물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대로 감사 인사를 드리러 오는 것이 상례였다는 것이다.

한데 언제부턴가 결혼식장에 가면 사회를 보는 신랑 친구가 흰 봉투만 건네고는 나 몰라라 하는 일이 빈번해지더니, 급기야 신혼여행 선물이라고 아파트 경비실에 맡기곤 도망치듯 사라져 버리는 제자도 이 즈음엔 찾아보기조차 어려워졌다는 이야기셨다. 그 씁쓸한 경험을 반복하기 싫어 주례를 거절하다 보니 입소문(?)이 났는지 최근엔 부탁해하는 제자가 한 녀석도 없다셨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지네...”란 노랫말이 무색해진 요즈음, 각급 학교에는 스승의 날을 재량껏 운영하라는 지침이 전달됐고, 교총은 1982년부터 시행해 온 스승의 날 행사를 올해부터 폐지하겠노라 선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미 오래전 시작된 교실 붕괴 및 공교육 위기가 교사를 향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그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버린 셈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새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외치면서,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말라던 옛 시절의 '영화(榮華)'를 그리워하는 건 아니다. 지나온 과거를 '미화(美化)'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다만 온 국민의 교육열은 광풍(狂風)이라 불러 손색이 없을 만큼 날로 치열해져만 가는데, 정작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의 위상은 해를 거듭하며 추락해 가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나아가 우리네 사회의 '어른'이 사라지면서 지켜져야 할 기본이 무너져 내리고, 존중받아 마땅한 권위 또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여 기우가 자꾸 고개를 든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옛 국민학교) 4학년 시절의 스승의 날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날 우리 반 엄마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하여 딸기며 복숭아며 제철 과일을 한아름 사 들고 오셨고,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은 방과 후 운동장에 둘러 앉아 엄마들이 사 오신 과일을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날 담임선생님의 함박웃음이 오래도록 눈가에 맴돌았던 나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나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리라 꿈꾸기 시작했다.

중학교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에 기초과학자의 외로운 길을 걷게 되고, 고등학교 선생님의 격려 한 마디에 소외된 이웃을 돕는 사회복지사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이 어찌 한둘이겠는가. 대학생 제자들과 속내를 나누노라면 중고등학교 시절 선생님을 자신의 멘토로 삼아 온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올해도 스승의 날엔 졸업 후 오래도록 소식이 뜨악했던 제자들이 반가운 소식을 전해올 것이요, “저희 엄마가 직접 짠 참기름이에요”라고 말하며 수줍게 내밀곤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모르는 제자 녀석도 있을 것이다. 덕분에 인생 세 가지 기쁨 중 하나가 바로 가르치는 기쁨이란 옛말이 그르지 않음에 감사할 수 있는 건 아닌지.

교사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고 소신껏 교육에 임하고 있는 다수의 '이름 없는 선생님'의 목소리 또한 실종되어 있음도 안타까움을 더한다. 스승의 날이 진정 제자리를 찾을 때 우리 모두 성숙한 사회를 향해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내딛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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