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추정치 반영으로 정확도에 의문 제기

그 동안 학원가의 대학 배치표는 대입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이런 학원 배치표의 아성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 서울시교육청이 직접 배치표를 만드는 등 공신력을 가진 곳에서 잇따라 ‘대체재’를 내놓기 시작하면서다.

◆“학원 배치표 영향력 무시 못해”=아직까지 학원 배치표의 영향력은 유효하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교사들 가운데서도 진학 지도 시 학원 배치표를 참고하는 교사가 많고, 학생들 중에는 학원 배치표를 믿고 교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대학 입장에선 대입학원들이 내놓은 배치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강제상 경희대 입학처장은 “학원 배치표를 보고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에 (배치표에) 신경이 쓰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 A대학에선 학원 배치표상의 순위가 B대학보다 낮게 나와 학생들이 반발한 일도 있다. B대학은 평소 A대학보다 입학성적이 비교적 낮았던 곳이다. A대 관계자는 “학생들이 학원가에서 돌고 있는 배치표를 보고 자신들이 입학할 당시에는 점수가 더 낮았던 B대학보다 우리 대학이 낮게 배치됐다며 ‘학교가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고 따진 적이 있다”고 전했다.

현재 대입학원 배치표는 진학사·유에이·메가스터디·종로·청솔·대성학원 등 수험생들이 몰리는 학원마다 각각 다른 배치표를 내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대학 같은 학과라도 배치표를 만든 학원에 따라 점수대가 달라지기도 한다.

학원가의 배치표는 수능 표준점수와 대학·학과별 표준점수 반영비율, 수년간의 실제 합격선 등의 자료를 근거로 만들어진다. 진학사 김희동 입시분석실장은 “수능시험 이후에는 누적백분위를 활용해 배치표를 만든다”며 “대학의 입시요강, 그간 학생들의 모의지원으로 나타난 예상 합격선, 해당년도의 수능난이도·수험생수·대입정원·입시패턴 등을 종합 판단해 작성한다”고 설명했다.

◆정확성·공정성은 ‘글쎄’=그러나 학원 배치표의 정확성에 이의를 다는 견해도 많다.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만든다지만, 그 과정에서 입시학원의 추정치가 반영된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입학처장은 “배치표를 만들기 전에 학원 관계자가 성적이 제일 좋은 학과가 어디인지를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며 “거기에 답을 해주면, 학원에선 배치표 상에 해당 학과를 가장 위에 놓고, 그 밑에 다른 학과들을 배치하는 식”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수험생들이 학원 배치표를 믿고 대학에 지원하기 때문에 배치표 상의 ‘포지션’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해마다 특정 대학의 점수대가 올라가면, ‘포지션’을 올리기 위해 대입학원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소문은 소문만 돌뿐 실체를 확인하긴 어렵다.

대학이 대입학원들을 상대로 집행하는 광고비가 배치표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냐는 심증도 있다. 한 대학 입학관리팀장은 “학원의 월간지, 대입가이드, 홈페이지, 배치표 등에 광고를 내고 있다”며 “아무래도 광고비를 집행하면 배치표 상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학들이 갖는 심증”이라고 전했다. 모대학 입학처장도 “대학이 학원을 상대로 로비를 하는 경우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학원에서 광고를 부탁해 오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학원 배치표의 아성도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가장 좋은 예가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대학 배치표다. 교육당국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놓은 배치표라 반응은 뜨거웠다.

이는 시교육청 대학진학지도지원단 소속 고교 교사 115명의 참여로 만들어졌다. 특히 서울시교육청이 총 4만7000여건의 전년도 ‘대입 합격·불합격자 지원 결과’를 바탕으로 배치표를 만들었기 때문에 정확성과 공정성을 갖췄다는 평가다. 실제 교육청 배치표와 학원배치표를 비교하자 일부 학과의 경우 크게 5점에서 11점까지 점수 차가 났다.

◆학원가 배치표 영향력 줄어드나=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서 지난해 9월부터 운영한 대입 콜센터도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의 고교를 대상으로 대교협이 위촉한 진학상담교사 300명이 직접 학생들을 상담해 준다. 점수에 따른 합격여부만 알려주는 단순한 성적상담은 아니라는 게 대교협의 설명이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을 묻고 어떤 학과가 적합한지 안내해 준다. 경우에 따라선 성적에 따른 지원가능 대학·학과를 안내해 주기도 한다.

대교협 구안규 입학관리팀장은 “대학 서열화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어 성적 상담보다는 적성을 고려한 진로 상담을 중심으로 한다”며 “지난해 첫해에만 총 3만3000건의 상담이 있었고, 올해에는 약 2배정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교 교사들도 직접 나섰다. 서울지역 고교 진학지도 교사들로 구성된 서울진학지도자협의회(이하 서진협)는 4년 전부터 각 고등학교의 대입자료를 제공받아 배치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해 왔다.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300개 고교에서 대입자료를 제공해 준다고 한다. 조효완 회장(은광여고 교사)은 “고등학교로부터 입학 자료를 제공받아 배치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며 “전년도 입학성적 등을 근거로 각 대학의 합격 가능 점수대를 알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학원 배치표는 각 대학별 환산점수를 반영하지 못한다. 환산점수는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을 반영한 뒤 나온다. 영역별 가중치 등은 각 대학이 정한 기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학원에선 이를 일괄적으로 합산하기 어렵다. 학원 배치표로는 복잡·다양해진 대입 전형을 다 반영하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학원가에서도 이런 맹점을 인정한다. 진학사 김희동 실장은 “학원 배치표는 표준점수를 합산해서 나오기 때문에 대학마다 기준이 다른 환산점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학원 배치표가 대입에서 미칠 영향력도 점차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의견은 이래서 나온다. 조효완 회장은 “학원에서 나오는 배치표는 대학의 영역별 가중치 등이 고려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대학 배치의 기준 자체가 상당히 틀린 것”이라며 “교사들이 직접 만드는 배치 프로그램의 경우 고등학교로부터 직접 입시자료를 받기 때문에 대학별 환산점수를 반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사립대 입시 담당자는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수능 원점수가 공개되고 있고, 교육당국도 대학 배치표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학원 배치표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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