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20년 내다보고 정원 10~30% 감축 계획

대학가에 급격한 변화의 파고가 밀려오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정원감축·학과개편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원감축은 최근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생존을 위한 대학들의 ‘고육지책’ 으로 풀이된다.

18일 대학가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게 될 지방대들은 정원감축을 본격화하고 있다. 학과 폐지나 통폐합 등 대응책을 제시하는 대학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수도권 대학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적 수요를 고려한 학과 구조조정 방안을 잇 따라 내놓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정원 조정을 염두에 두고 ‘학제 유연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생존을 위한 자구책 ‘정원감축’=최근 울산대가 2030년까지 정원을 37.5% 감축하는 방안을 내놨다. 중장기발전계획인 ‘비전 2030’에서다. 울산대는 2011학년도 120명 감축을 시작으로 2030년까지 현재 정원에서 약 4500명을 줄여갈 방침이다.

대전의 한남대도 2020년까지 정원 10%를 감축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체정원의 10%는 1200명 규모다. 김정곤 한남대 기획조정처장은 “구체적 안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정원 감축, 학문단위 조정 등 전반적 구조조정을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대도 향후 10년 내 입학정원 500~1000명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감원 대상은 지원율이나 취업률이 저조한 학과가 우선순위다. 조기조 경남대 기획처장은 “우선 지원율이나 취업률이 떨어지는 학과부터 폐지하거나 감원할 계획”이라며 “2012학년도 입시부터는 감원을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미 입학정원을 줄인 대학들도 눈에 띈다. 대구가톨릭대는 입학정원을 2004년 대비 500명 가량 줄였다. 학과별 모집정원이 일정 수준에 미달할 경우 학생 모집을 중지하는 규정을 신설, 강력한 구조조정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초당대의 경우 2010학년도에 5개 학과를 폐지했고, 입학정원도 전년 대비 170여명 줄였다. 입학정원의 15%를 이미 감축한 셈이다. 전주대도 교육혁신처를 상설화해 매년 입학정원 감축이나 학과 통폐합 여부를 결정토록 했다.

◆ 정원감축은 평가지표 제고책=대학들이 이처럼 살을 깍는 구조조정에 나선 이유는 학령인구 감소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입 학령인구는 올해 68만2000명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든다. 특히 10년 후인 2020년에는 대입 학령인구가 30% 이상 감소한 49만3000명이 될 전망이다.

정원감축은 대학들의 평가지표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갖는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대학에 대한 ‘기관평가’에선 교원확보율·충원율·재학률 등에서 최소 요건을 채우지 못하면 ‘인증’판정을 못 받게 된다. ‘인증’을 받지 못한 대학은 향후 정부 재정지원사업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정원감축을 통해 평가지표를 개선하지 못하는 대학은 입학자원 감소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도태될 전망이다.

때문에 지방대들의 정원감축 바람은 평가지표 개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기도 하다. 동아대 손계수 평가감사팀장은 “학생 수를 줄이면 교원확보율 등 평가지표가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며 “상당수 지방대들이 내부적으로는 정원감축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윤창 초당대 기획처장도 “정원이 많은 게 좋지만은 않다. 신입생 충원율 같은 지표에도 좋지 않아 감원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정원감축에 따른 등록금 수입 감소가 문제다. 이에 대해 경남대 조기조 처장은 “입학정원을 줄이는 대신 평생교육, 학점은행제 과정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지방대 교수는 “입학자원 감소는 지방대들의 공통된 문제”라며 “정원을 줄이더라도 외국인 학생 유치 등 정원외 모집에 치중하는 대학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수도권 대학들도 학제 유연화=수도권 대학들의 사정은 좀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잇따른 ‘덩치’줄이기에 나선 대학들이 눈에 띈다.

최근에 이 같은 내용의 중장기 비전을 마련한 대학은 동국대다. 동국대는 학문·경영·재정 3개 분야 9대 전략과제를 담은 ‘비전 2020’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융·복합 연구·교육 활성화를 위한 학문구조 조정과 학과체제 개편이 핵심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동국대는 기초학문 분야를 통합한 기초학문대학을 설립하고, 교수단을 신설해 학과 조직과 교수 조직을 이원화해 운영키로 했다. 동국대 관계자는 “학과평가 결과에 따라 하위 15% 학과의 입학정원을 우수 학과에 나눠주는 입학정원관리시스템과 연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균관대도 문과대학·사회과학부·경제학부·자연과학부 등을 통합해 가칭 ‘문리과대학’을 신설하는 내용의 ‘비전 2020’을 추진 중이다. 학내에서는 ‘인기학과’를 제외한 나머지 학과들을 ‘인문계열’과 ‘자연계열’로 통합 모집하고, 학과 규모를 대폭 축소할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얼마 전 학문단위 구조조정으로 홍역을 앓았던 중앙대도 정원 조정안 확정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 수요와 대학의 효율성을 고려한 각 학과의 정원 증·감축이 예상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사회적 수요에 따른 학과개편·조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학령인구감소 등 대외적 환경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학과 통폐합과 정원 감축이 용이하게끔 하는 ‘학제 유연화’로도 해석된다. 학과 구조조정과 학사제도 개편을 골자로 한 중장기 발전계획들이 잇따라 발표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학과 통폐합과 규모 감축은 외부 환경과 정부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대비책”이라고 분석했다. <대학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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