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제 전환 잇따라… 교수입장 크게 반영

대학들이 학과제 복귀와 학부제 유지의 갈림길에 섰다. 연세대·한국외대·건국대 등을 시작으로 잇따라 학과제 전환에 나선 데 반해 중앙대·성균관대·동국대 등은 학과 통폐합과 함께 ‘문리과대학’, ‘기초학문대학’ 등 통합 단과대학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학과제 전환과 학과 통폐합을 병행하는 사례도 보인다.

9일 대학가에 따르면 이 같은 움직임에는 개별 학과와 대학 간 입장차가 작용했다. 학과제 전환 주장은 △기초학문 고사 위기 △교수·학생간 관계 단절 △학과 소속감 저하 등 학부제에 대한 불만에서 나왔다. 개별 학과와 교수들 의견이 절대 다수다. 반면 융·복합 교육·연구를 명분으로 내건 학부제 유지 입장은 대학 측 논리가 강하게 반영됐다. 학과 통폐합 등 학사구조 개편과 함께 융·복합 국책사업 수주나 입학 성적 유지에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문제는 이 같은 추세에 정작 수요자인 학생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들이 광역 학부제를 앞다퉈 도입한 것은 당시 연계시킨 BK21 사업에 선정되기 위한 측면이 있었다”면서 “효용이 떨어졌다고 너도 나도 학과제로 복귀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학부제로 들어온 학생들을 우선 책임지는 게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1990년대 후반 도입된 학부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는 모집단위 광역화가 추진됐다. 대학·학과 서열화와 인기학과 지원 편중현상을 해소하고, 입시 경쟁을 완화하는 것 등이 학부제 도입의 명분이었다. 대학 입학 후 적성에 맞는 학과를 고를 수 있다는 것도 학부제의 장점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학부제 하에서도 인기학과 쏠림 현상은 여전했고, 기초학문 분야는 고사 위기에 처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010학년도부터 학과별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모집단위를 자율화 한 이후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학과제 전환 움직임이 불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의 생활 구조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학부제로 입학한 이후 학과제로 바뀌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십상이란 얘기다. 학과 소속감을 높여 대학원생 유치로 이어지는 구조를 위해 교수들이 학과제로 입학한 학생들만 챙기는 경우가 잦아서다. 학과가 정해지기 전 1학년 때 ‘반’으로 생활하던 체제 역시 바뀌어 10년 넘게 지속되던 학부제 하 선·후배 관계마저 모두 단절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수험생들의 혼란도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다. 유성룡 이투스 입시정보실장은 “학과제로 복귀하면 지금까지 같은 모집단위로 뽑던 각 학과의 서열화 현상이 확연히 드러날 것”이라며 “학부제와 학과제는 각 학과별로 지원할 수 있는 점수대가 달라지기 때문에 고교 일선이나 수험생들에게는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별 학과와 교수의 목소리가 센 대학들 중심으로 학과제 전환이 우선 추진됐다면, 학부제 유지 입장은 비교적 대학 본부의 힘이 강한 대학들에서 발견된다. 학과 통폐합을 포함한 학사구조 개편과 학부제 유지, 통합 단과대학 신설 등을 최근 잇따라 발표한 중앙대와 성균관대는 공교롭게도 기업이 재단을 인수한 케이스. 동국대의 경우 ‘혁신 전도사’란 별명을 가진 오영교 총장의 추진력이 있었다.

이 경우에도 학생들 입장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통폐합 해당 학과 학생들의 반발에 직면한 중앙대가 대표적 사례다. 성균관대 역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비전 2020’에 대한 교수들의 반대 성명에 학생들의 지지가 더해졌다. 1학년 때 학점만으로 전공을 배정하는 것 역시 학부제 출범 당시부터 논란이 일었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학부제를 유지하더라도 적성검사나 학과 자체 시험 같은 정성적 요소들을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 대학은 학제간 연구와 융·복합 과제 수행, 통섭 학문 등의 명목으로 큰 틀에서 학부제를 유지키로 했지만, 현장에서는 ‘비인기학과·비실용학과 통폐합의 구실’이란 문제 제기가 나온다. 허남결 동국대 교수회장은 “관련 내용을 담은 ‘미래 비전 2020’ 학내 공청회의 구성원 반응은 부정적이었다”며 “지금도 학과평가를 통해 하위 학과 입학정원을 상위 학과에 나눠주고 있다. 기초학문 분야 통폐합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역학부제로 입학해 연세대를 졸업한 김도훈(29) 씨는 “대학 차원에서 주도한 학부제에선 소속감이 별로 없어 어려웠고, 학과제로 돌아가는 추세에선 교수들이 학과 학생들만 챙겨 어려웠다”면서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교수나 대학 위주로만 결정되는 것 같다. 학과제 전환이건 학부제 유지건 우선 학생들의 편의부터 챙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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