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평의원회 ‘자율화’ 논란
-사학법 따라 사립대는 의무 설치 … “경영에 피해” 반발
-교과부 사후 대응 미흡 … “취지 살리면 효과적” 의견도

사립학교법(이하 사학법)에 따라 전국 사립대가 의무적으로 설치·운영하고 있는 대학평의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학재단의 전횡을 막고, 구성원 간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마련된 대학평의원회가 본래의 목적은 구현하지 못한 채 다양한 문제점만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대학평의원회 설치·운영을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사학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교과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제도를 보완·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사학 자율성 침해” … ‘선택론’ 대두 = 15일 교과부 등에 따르면 사립대의 대학평의원회 설치는 본래 선택 사항이었으나 지난 2006년 개정 사학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의무화됐다. 개정법에서 교과부는 대학평의원회를 ‘교육에 관한 대학의 최고 심의기구’로 정의하고 △대학 발전계획 △학칙 제정·개정 △개방이사·감사 추천 등 대학 운영에 관한 주요 사안을 심의토록 했다. 이 같은 법에 의해 현재 각 대학들은 학내 중점 사안을 결정하기에 앞서 필수적으로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사립대들은 대학평의원회가 사학 운영의 정체성·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교수·직원·학생·외부인사 등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가 ‘대학의 최고 심의기구’라는 막대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법인·총장 등의 자율적 권한이 대폭 축소됐다는 것이다.
송영식 한국대학법인협의회 사무총장은 <대학교육> 142호에 발표한 ‘대학평의원회 설치·운영의 문제점’을 통해 “개정 사학법은 대학 구성원들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사립대의 최고 의결기구인 법인이 대학평의원회가 심의·결정한 사항을 거부할 수 없게 했다. 법인은 대학평의원회가 결정한 사항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다”며 “또 총장, 교무위원회도 기존 권한을 상당 부문 잃었다”고 밝혔다.
충남지역 한 대학 교무처장도 “대학평의원회가 대학의 최고 심의기구가 되면서 기존 교무위원회 학·처장회의와 기능이 충돌하고 있다. 대학 운영·발전에 저해가 되는 부분이 많다”며 “현행 사학법은 사학의 자율적 운영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대학평의원회”라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 대학들은 대학평의원회 설치·운영을 기존처럼 선택 사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열린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참가한 총장들은 대학평의원회 자율화 등의 내용을 담은 사학법 개정 입법안을 발의키로 하고 TF팀을 발족해 귀추가 주목된다.
당시 이남식 전주대 총장은 “사학을 규제의 대상이 아닌, 자율과 책임의 주체로 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대학평의원회는 현행 의무 설치를 대학의 선택 설치로 바꾸고, 심의기관이 아닌 자문기관으로 기능을 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자율성은 폐지 위한 핑계” 비판도 … 고려대 등은 설치도 안 해 = 그러나 ‘사학 운영의 자율성’은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무력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외부의 감시·방해 없이 법인·대학본부 입맛대로 학교를 운영하고 싶은 속내를 그럴듯한 포장으로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과부가 섣불리 대학평의회의 자율화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견제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 한 대학 교수협의회장은 “대학평의원회 설치를 대학 자율에 맡길 경우 이를 계속해서 운영하는 대학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폐지나 같다”며 “대학평의원회가 없어지면 학교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이 다시 상부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법인·본부가 전처럼 무소불위의 절대적 권력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전북지역 한 대학 교수는 “대학평의원회는 기존의 권력 체계를 흔드는 감시·방해 세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득권들로서는 제거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며 “그러나 현재 각 사학들의 부패가 심각한 수준에 달해있는 만큼, 대학평의원회의 설치·운영은 반드시 필요하다. 섣부른 자율화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도 일부 대학은 대학평의원회의 불필요함을 이유로 설치를 미루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학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성균관대·홍익대 등 16개 대학은 여전히 대학평의원회를 설치하지 않았다. 안 의원은 “사학법 개정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교육기관인 대학이 대학평의원회 구성에 관한 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법을 지키지 않은 사립대들이 과연 지성의 전당으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대학 구성원들을 뒷전으로 미뤄놓고 학교 발전을 위한 진정한 논의를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부산지역 한 대학 교수는 “이유를 불문하고 법으로 정해진 사안은 함께 지켜야 질서가 유지된다. ‘우리는 하기 싫다’는 일부 대학들의 의식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홍익대 고위 관계자는 “대학마다 특성·사정이 다른데 일률적으로 대학평의원회를 두도록 한 것은 비논리적이다. 사학 발전에 저해가 된다”고 반대 입장을 표했다. 또 연세대 한 보직교수도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대학의 주요 사안은 윗선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게 옳다”고 반발했다.
■ “교과부 잘못 크다” 원성 높아 … 정착·보완 촉구도 = 이처럼 대학평의원회 설치·운영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가운데, 각계에서는 교과부의 허술하고 무책임한 관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더불어 대학평의원회의 바람직한 운영을 통해 거둘 수 있는 효과도 상당한 만큼, 향후 교과부가 대학평의원회의 정착·보완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조언도 많다.
안민석 의원은 “일부 대학들이 대학평의원회 구성을 미루고 있다. 그런데 법을 집행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팔짱을 끼고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며 “3년 이상 법을 지키지 않는 대학에 정부는 공문만 몇 번 보내고 아무런 제재도 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 이철갑 조선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조선대는 1988년 비리재단 척결 당시 교수·직원·학생·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대학자치운영협회의를 발족, 현재까지 20여 년간 운영해 오면서 대학의 위기 극복, 각종 현안 결정 등에 큰 효과를 거둬왔다. 현재의 대학평의원회도 조선대 대학자치운영협회의를 모델로 탄생했다”며 “사학 운영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실질적으로 수렴·반영할 수 있는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행 대학평의원회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 교과부가 책임감을 가지고 보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경북지역 한 대학 교수협의회장 역시 “대학평의원회는 충분히 올바른 취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교과부의 미흡한 사후 대처로 다양한 논란을 낳고 있다. 대학평의원회 정착을 위한 교과부의 철저한 개선·관리가 요구된다”며 “대학평의원회를 정말 제대로 운영해 본 뒤에 설치의 자율화를 추진해도 늦지 않다. 각 대학이 법을 준수하고, 대학평의원회의 효율성을 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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