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스스로 자기검열케 하는 정치권력

언론소송은 피해자의 인권을 구제하는 절차이면서 동시에 소송에 연루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공적인 관심 사안에 대한 취재를 언론인 스스로 기피하게 만드는 자기검열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목숨을 건 제보자들이 은밀하게 전해준 공적기관의 비리정보가 언론인들의 휴지통으로 간단히 던져지고 대신 언론은 공적기관이 공들여 거르고 맛깔스럽게 포장해서 제공한 보도자료나 다뤄주는 나팔수 행태를 보일 수 있다.

정치권력 뿐만 아니라 해당 사회의 유력한 기업이나 유명세를 가진 공적인 인물들 역시 언론보도에 미리 재갈을 물리려는 소송위협을 가하는데 이를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일컫는다.

거대 기업의 반사회적인 행위를 규탄하고 고발하려는 시민사회의 조직적 움직임에 대해 상상을 초월한 손해배상금을 청구하거나 명예를 훼손하였다는 혐의로 형사 고소함으로써 수사기관의 손을 빌려 문제 제기자를 은근히 겁주고 피로하게 만드는 행위 양식이다.

은밀하게 자행되는 정치권력과 거대기업 등의 부정은 양심적인 내부고발자의 고발이나 언론인들의 치열한 취재를 통하지 않고선 세상에 제대로 알려질 수도, 올바르게 치유될 기회를 갖기도 어렵다.

고위 공직자 등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 보도를 간단없이 처벌하거나 취재원을 실토하라고 함부로 강압해서는 안 될 이유가 거기에 있다. 1964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에서 출생한 ‘현실적 악의’의 법리가 바로 그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시 경찰위원 셜리반과 뉴욕타임즈간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공직자의 언론소송에 대해 강력한 제한조치를 취했다.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언론보도라고 하더라도 연방수정헌법 제1조의 보호대상이 되기 때문에 공직자는 언론의 현실적 악의를 입증해야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허위라는 점을 알고도 언론이 진실인 것처럼 보도했거나 혹은 허위인지 아닌지 여부에 대해 무모할 정도로 고려하지 않고 보도한 것을 두고 ‘현실적 악의’라고 지칭하면서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그러한 현실적 악의를 원고인 공직자가 입증해야만 언론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시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언론소송을 지배하는 법리는 다소간의 진폭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악의’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 1997년과 1998년 판결을 통해 공무원이나 공적인물에 대해 ‘현실적 악의’의 법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그러면서도 2002년 이후 공적인물, 특히 고위 공직자가 제기하는 언론소송에 대해 독특한 법리를 적용해 왔다. 결과적으로 허위인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지 않았다면’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리는 언론소송에 적용해 온 진실성의 법리, 진실오신의 상당성 법리를 뛰어넘어 결과적으로 허위가 된 공적인물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호하는데 활용돼 왔다. 이를 두고 상당수 언론법 학자들은 한국의 법원이 미국의 현실적 악의법리를 수용했다고 평가했으나 이를 부정하는 학자들도 많았다.

지난달 15일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대한민국이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에서 ‘현실적 악의’를 명시적으로 수용했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자로서 소송을 제기할 적격이 없다고 판시하면서 ‘현실적 악의’가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동시에 법원은 현실적 악의, 즉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었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인 국가에게 있다고 못박았다.

‘증거개시’와 같은 소송절차상의 몇가지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한국의 하급심 법원이 현실적 악의론의 뼈대 가치들을 분명히 받아들인 것이다. 소송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만약 소송이 계속 진행된다면 헌법이 보장한 표현자유, 특히 공적인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의 자유를 확장한다는 차원에서 대법원이 이 법리를 어떻게 판단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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