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제개편 이어져, 교수들 전공전환도

#1. 호원대는 지난 2005년부터 대대적인 ‘수술’을 시작했다. 2005년 신입생 정원을 2280명에서 1500명으로 무려 780명 감축했다. 전체 34.2%에 달하는 수치다. 지난 2008년에는 경쟁력이 약한 8개 학부를 폐지했다. 지난해에는 신입생이 선호하는 간호학·치위생학·응급구조학·작업치료학과 등 보건계열 4개 학과를 신설했다. 호원대의 변화 이유는 단 하나. ‘살아남기 위해서’다.

#2.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경동대는 ‘취업사관학교’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개설된 학과들은 관광학부, 사회복지경영학부, 스포츠마케팅학과, 경찰학과, 경호학과, 유아교육과, 중등특수교육과 등 철저하게 취업 위주다. 특히 올해는 몇 개 학과 정원을 100명 줄이고 대신 보건계열 학과들을 신설해 220명을 배정받았다. ‘학과 구성이 전문대학과 비슷하다’는 지적에 대해 대학은 “이미 전문대학과의 경계는 무너졌다”고 말했다.


■ 지방대의 몸부림=지방대가 변하고 있다. 학과명을 변경·폐지·신설하는 일은 예사다. 교수들은 자신의 전공마저 바꾸고, 학과에 맞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다시 공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수는 물론, 해당 학과 학생들의 반발도 이어진다. 학내 갈등에도 불구, 지방대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4년제 대학=연구중심, 전문대학=취업중심’이라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생존을 위해 가장 강력한 무기로 ‘취업’을 내걸고 있다.

호원대의 변화는 ‘냉혹할’ 정도다. 한 해 정원을 34.2%나 감축하고, 8개 학부를 폐지하는 일은 대학으로선 쉬운 일이 아니다. 내년에는 전공진로과정(이하 트랙과정)을 신설한다. 실무교육중심 대학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다. 트랙과정은 전공 이수학점 110학점 중 50학점을 차지하며, 크게 5개 과정으로 나뉜다. 글로벌어학(토익·영어회화)·교직과정·레포츠분야·자격증과정·공무원 양성과정이다. 학생들이 트랙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 기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다. 서울의 4년제 대학은 생각지 못할 변화들이다.

강태구 기획조정처장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지방대가 수도권의 큰 대학처럼 모든 분야를 다할 수 없다. 호원대는 취업경쟁력 강화에 집중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학제개편에 따라 교수들의 전공전환, 이른바 ‘트랜스퍼(transfer)’도 진행 중이다. 상이한 전공은 ‘전공전환 및 재배치’가 원칙으로, 대학은 석·박사학위과정 이수에 따른 등록금을 지원한다. 유사 전공일 경우 해당 전공 연수프로그램 비용을 지원한다.

경동대는 14년 전 개교 때부터 ‘취업’을 기반에 두고 학과들을 개설했다. 그래서 순수학문 분야가 없다. “전문대학이냐?”는 비난도 이어진다. 그렇지만 대학의 생각은 다르다. 민준식 입학관리실장은 이에 대해 “지방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경동대의 경우는 ‘취업’”이라고 밝혔다. 지난 9년 동안 이렇게 달성한 취업률은 90%를 상회하며, 대학 역시 입시에서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다.

■ “전문대학이냐” 비난도=호원대, 경동대뿐 아니라 지방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울산대는 내년도 정원을 120명 감축한다. 전기전자제어공학전공과 컴퓨터정보통신공학전공, 의공학전공은 전기공학부로 통합된다. 기계자동차공학전공과 항공우주공학전공은 기계공학부로 통합된다. 산경대 소속 행정학과와 영어과 야간과정은 폐지된다. 2030 비전에 따르면, 기존 신입생 정원은 3000명에서 1875명까지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정준금 기획처장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 극복을 위해 취업과정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교 경쟁력을 높이고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학제개편과 정원감축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초당대는 올해 4개 학과를 폐과한다. 입학정원은 420명 감축할 예정이고, 내년에는 340명의 입학정원을 추가로 감축한다. 이러한 체질개선을 통해 오는 2012년 일반대 전환을 할 예정이다. 교수들의 트랜스퍼 역시 피할 수 없다. 대학 관계자는 “교수 이동의 경우 석·박사학위 취득에 3년의 시간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나뉜다. 울산대의 경우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에서 학제개편으로 지원을 받는 기계공학부와 전기공학부는 학제개편을 반기고 있다. 통합된 학부는 학부 일류화 사업에 선정돼 1년에 2개 학부 합쳐 55억원씩 총 5년 동안 275억원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교수입장에서는 학과가 없어지지 않으면서 지원이 늘고, 학생들은 현대중공업 등 취업 기회 확대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이동수 울산대 교수협의회 회장은 “2030년까지 정원의 37.5%를 줄이는 중대한 사안에 비해 학내 여론수렴 과정은 부족했다. 대학측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박인경 울산대 총학생회장도 “학내 정원감축이 시장 논리로 비인기 과목을 없앤다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산경대학 소속 행정학과와 영어과 야간과정 폐지문제는 학내 이슈다. 산경대학 학생회는 “울산대 단과대학 중 유일한 야간대학인 산경대학을 구성원들의 의견도 묻지 않고 폐과했다”면서 “재학생은 물론 졸업생까지 동참해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교육의 질 담보 고민=학과 변경에 따른 갈등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서’라는 목적 아래 봉합되고 있다. 강태구 호원대 기획조정처장은 “처음 전공전환에 대해 교수들의 반발이 많았다. 실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교수들은 명예퇴직을 하기도 했다”면서 “대학에서 교수들에게 전공전환 과정을 책임지고 지원한다는 방침을 절실히 전했고, 해당 교수들은 전공전환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학제개편을 단행하면서 폐지되는 학과 교수나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배려한 게 갈등을 줄인 케이스다.

학생들 중에서도 일부는 이런 대학의 노력에 대해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초당대 학생회장 범영준씨(경찰행정학과 4)는 “솔직히 지방대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대학의 존립을 위해 희생하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 때로는 과감한 구조조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교수들의 트랜스퍼에 대해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 역시 여전한 형편이다. 민준식 경동대 입학관리실장은 이에 대해 “트랜스퍼는 가급적 유사한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유사학과가 아닌 전혀 새로운 학과에 대해 할 경우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폐과된 학과나 전공명을 사회 흐름에 맞게 바꾼 학과들의 경우, 해당 교수의 트랜스퍼는 피할 수가 없다. 다만 여기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전문대학과 유사한 학과들을 구성하면서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에도 할 말은 많다. 민준식 경동대 입학관리실장은 “우리나라에서 대학 가는 목적 중 하나가 사회진출 아니겠느냐”면서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오더라도 취업이 전제가 안 되면 대학을 큰돈 들여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4년제와 전문대학의 영역 구분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보고 문제라고 지적하기보다는 사회적인 현상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중·김재홍 기자 gizoong·duncan21@un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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