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제한 없어야 로스쿨 희망 있다

로스쿨 도입이 임박했지만 로스쿨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뜨겁다. 로스쿨 총 입학정원을 놓고 법조계와 법학계의 갈등은 점차 깊어지고 있으며 로스쿨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이로 인해 로스쿨이 과연 고시로 멍든 사법교육의 현실을 개혁할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은 커지고 있다. 이에 로스쿨은 정원 제한이라는 통제적 발상을 벗어나 다양한 법률전문가 양성이라는 본 취지에 충실할 때 비로소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다. ■정원 제한 반대 여론 확산 “로스쿨 총 입학정원을 현재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준으로 제한하려면 차라리 도입 안 하는 게 낫다.” 로스쿨 총 입학정원 제한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다. 이 같은 반대 여론은 특히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이하 사개추위)가 9일 실무위원회를 개최한 이후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개추위는 9일 차관급 실무위원회를 열어 로스쿨 설립 법안을 사실상 확정하고 16일 장관급 본위원회에서 최종 입법안을 의결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당시 제시했던 방안을 그대로 통과시킨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계와 시민ㆍ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와 전국교수노조, 전국공무원노조, 전국민중연대 등 60여 개 시민ㆍ사회단체들은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과 변호사 연간 3천명 배출을 위한 국민연대’(이하 사법개혁3000국민연대)를 출범시켰다. 사법개혁3000국민연대는 출범선언문에서 “변호사 수의 획기적인 증대에 의해 법조 특권층의 구조를 해체하는 일이야말로 사법개혁의 핵심적 사항인데도 사개추위는 변호사는 그대로 둔 채 방식만 로스쿨 제도로 바꿔 사법개혁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사개추위 안 저지를 위한 10만명 국민청원운동과 변호사 3천명 배출을 위한 입법운동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전국 법과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사)한국법학교수회와 법학교육 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합(이하 법교련) 등 법학계의 반발도 거세다. (사)한국법학교수회는 11일 성명서를 내고 “로스쿨 도입이 법학교육 분야를 배타적·특권적 구조로 고착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로스쿨 정원은 매년 최소 3천명 이상의 법조인이 배출될 수 있도록 최대한 적정 수준으로 책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법교련 소속 서울지역 사립대학 법과대학 학장들은 16일 사개추위 본위원회 회의 시간에 맞춰 기자회견을 열어 사개추위 안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원 제한은 로스쿨 취지 무색 로스쿨 도입의 근본 취지는 고시로 멍든 법학교육을 개혁하고 다양한 법률 전문가 양성을 통해 대 국민 법률서비스를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학 정원 제한 주장은 이 같은 로스쿨의 근본 취지를 송두리 째 흔들고 있다. 제한된 입학정원을 특정 소수 대학에 할당하면 로스쿨이 획일화됨으로써 다양한 법률 전문가 양성을 위한 교육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철송 한양대 법대 학장은 “대학들이 특성을 살려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로스쿨 본 취지와 부합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인가제도는 결국 판에 박힌 몇 개 로스쿨만 양성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로스쿨 취지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최근 학계는 물론 시민 단체들까지 가세한 정원 제한 반대 여론이 급격히 확산되고 그동안 로스쿨에 침묵하던 서울대가 정원 제한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서울대는 로스쿨 정원을 제한하더라도 로스쿨 설치가 확실한 대학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어 정원 논란에 참여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원 제한을 반대해 이번 서울대의 입장 표명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학장은 "현재의 로스쿨 논의가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잃게 된 것은 법조인의 배출수를 연간 1천명 남짓으로 제한하려는 변호사 단체의 직역이기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면서 "로스쿨 정원을 연간 1천명 남짓으로 상한을 두는 것은 국가가 변호사 자격을 소수 대학에 특혜 분양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성 학장은 "로스쿨 정원의 상한을 두는 것은 헌법상 대학자치와 평등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비와 심각한 과잉투자를 유발할 것"이라며 "제한된 입학정원을 특정 소수 대학에 할당하는 제도는 필연적으로 모든 로스쿨을 획일화시키고 로스쿨의 다양성과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중호 중앙대 법대 학장 역시 “정원 제한은 다양한 법학 교육의 발전을 저해한다”면서 “로스쿨의 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원 제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매년 2천명 수준의 법조인 필요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 등 법조계는 법조인 대량 증원은 자질이 떨어지는 법조인만 양산하고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현재로서도 법조인 배출수는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1천명 정원 제한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최근 법학교육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합(이하 법교련·회장 이승호 건국대 법대 학장)이 ‘변호사 적정수’에 대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법조계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된다. 법교련은 2003년을 기준으로 △소송사건수 △적정변호사 선임률 △2003년도 변호사 1인당 평균수임 송무사건수 △변호사수 증가율 △비송무분야 진출 변호사 비율 등을 통해 향후 10년간 필요한 변호사 수를 분석했다. 그 결과 향후 10년간 매년 최소 2천명 수준의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표1, 2참조) 이는 변협 등이 주장하고 있는 1천명 정원안으로는 법률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의미로 정원 제한의 부당성을 말해주고 있다. 이승호 회장은 “현재는 국민들의 다양한 법률서비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변호사와 판·검사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라면서 “따라서 법률시장에 새로이 진입하는 변호사 수를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고 시장 원리에 일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변호사 숫자를 국가가 일방적으로 제한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원리에 맡겨 국민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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