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대학 대통령 원점검토 발언에 ‘비난’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원점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지자체·대학까지 나서 유치 목소리를 내고 있다.

■ 대통령 발언에 충청권 ‘부글부글’=이 대통령의 과학벨트 입지 재검토 발언으로 충청권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특히 이 지역에 기반을 둔 대학들이 이를 대통령의 ‘공약 뒤집기’로 규정하는 등 여론이 악화되고 있다.

이 지역의 한 국립대 A교수는 “논어에 보면, 공자가 자공에게 정치의 요체를 식량·국방·믿음이라고 교시하면서, 요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경우 국방과 식량은 버릴지언정 믿음만은 꼭 붙잡고 있어야 할 정도로 중요하다고 했다”며 “대통령이 공약을 뒤집고 표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면 누가 지도자를 신뢰하고 따르겠느냐”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KAIST 교수는 “초등학생에게도 뭐 사주겠다고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부모가 신뢰를 잃는다. 국민에게 공약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안다. 그 이상 할 얘기가 더 뭐가 있겠나”라며 대통령의 공약 뒤집기를 비판했다.

한 사립대 기획처장도 “이미 대덕연구단지에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기업 연구기관이 모여있고, 오송·오창에는 BT단지, 천안에는 반도체산업단지 등이 밀집돼 있다”며 “과학벨트가 조성된 뒤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충청권에 유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의 한 대학 교수도 “세종시에 입주하기로 한 과학벨트를 새로 얘기하자고 하니까 충청권이 굉장히 반발하고 있다”며 “(입지선정의)칼자루를 대통령이 쥐고 있으니, 우린 표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회는 이때” 영·호남권도 유치 주장=영남권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과학벨트 유치에 본격 나섰다. 특히 대구·경북·울산 3개 지자체는 지난달 과학벨트 사업 공동유치를 위한 MOU를 체결하는 등 공동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영남권이 과학벨트 입지 후보로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 경북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원자력클러스터와 포스텍·울산과기대·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등 과학기술 인프라가 확보돼 시너지 효과가 크단 설명이다.

지자체가 대학에 도움을 요청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동대 관계자는 “얼마 전 포항시에서 연락이 와 과학벨트의 영남권 유치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걸어달라고 요청했다”고 귀띔했다.

반면 대학은 조심스런 분위기다. 이 지역 대학 총장들이 전·현직 국가교육과학기술회의 과학기술 분과위원장을 역임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까지 김영길 한동대 총장이 위원장을 지낸 데 이어 최근 백성기 포스텍 총장이 새로 위원장을 맡고 있다.

포스텍 관계자는 “아무래도 정치적 문제로 얽힌 사안이라 의견을 말하기 어렵다”며 “특히 총장님이 주목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어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광주 전남지역 대학들은 호남권 유치를 강하게 주장한다. 차용훈 조선대 교수(기계공학과)는 “광주·전남은 광주과기원(GIST), 광기술원, 전자통신연구원 분원 등을 두고 과학기술 특성화를 다져왔기 때문에 과학벨트 입지로 적합하다”며 “국가균형 발전을 위해서도 광주에 과학벨트가 들어오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광주시가 지난달 연구개발특구로 추가 지정된 것도 입지선정의 당위성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과학계 검증까지 기다려 달라”=지자체와 대학들이 과학벨트 유치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투입예산과 파급효과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과학벨트는 7년간 3조5487억원이 투자된다. 해당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20년간 생산 212조7000억원, 부가가치 81조2000억원, 고용 136만1000명에 달한다.

이에 대해 국회 교과위 박영아 의원(한나라당)은 “충청권 입지 공약을 고려하되 입법 취지에 맞게 과학계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 과학계에서 과학벨트 입지를 검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지역 간 과열 경쟁을 경계했다. <신하영·김봉구·민현희·홍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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