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사태가 던진 대학가의 화두는?

이른바 서남표식 대학개혁이 연이은 KAIST 학생과 교수의 자살로 좌초위기를 맞았다. 한 때는 국내 대학의 혁신과 개혁의 대명사로 불리던 서 총장식 교육방식이 지금은 학생들과 교수를 사지(死地)로 내모는 몰지각한 경쟁주의자의 한풀이식 교육방식으로 매도되고 있다.

 

15일 열린 KAIST 이사회에서 서 총장의 거취와 책임론은 거론되지 않았다. 학생들의 비상총회에서도 총장의 개혁 실패안이 부결됐다. KAIST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고는 있지만 이미 마녀사냥식 여론몰이에 서 총장식 대학개혁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연 서 총장식 대학개혁은 이대로 대학사회에서 파묻혀 버리는 것이 맞는 것인가? 대학개혁은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인가? 대학가에 화두를 던지고 있다.

 

서 총장식 개혁의 목표 = 지난 20067월 취임한 서 총장은 KAIST의 제도 근간을 바꾸는 역할도 했지만, 국내 대학의 혁신과 개혁을 선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취임 후 서 총장은 KAIST 교수와 학생의 경쟁상대는 MIT대로, MIT를 따라잡는 것이 지상과제라면서 교수들의 정년보장(Tenure) 심사를 강화하고 전 과목 영어 강의, 차등 등록금제도를 도입했다.

 

서 총장은 2008년 정년심사를 요청한 38명의 교수 중 15명을 탈락시켰다. 학점 3.0 미만은 등록금을 차등 부과해 이른바 장짤(장학금 혜택에 잘린)’ 학생들은 학업 부담감을 느끼며 피로감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 드라이브로 서 총장이 내세운 목표에 부합하듯 더타임스가 200910월 발표한 세계대학평가에서 KAIST는 공학·정보기술(IT) 분야 세계 21위에 올랐다. 국내 대학으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이 같은 개혁의 성공은 국내 대학가로 급속하게 확산됐다. 서울대·포스텍·연세대·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이 정년보장 심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거점 국립대까지 교수평가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일단 전임교원으로 임용만 되면 승진과 정년 보장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대학가의 낡은 명제를 ‘KAIST() 개혁으로 깨 나가고 있었다.

 

대학가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교육부에서도, 언론에서도 서남표식 대학개혁을 칭송(?)하며 개혁전도사로 대서특필했다.

 

최근 KAIST 학생 자살사건으로 벤치마킹 대상이던 그의 정책은 커다란 부작용을 낳는 위험한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지만 좁은 영토에 자원빈국(資源貧國)인 우리로서는 여전히 유효한 대학개혁의 화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강도 높은 개혁 부작용은 없었나 = 서 총장 취임 이래 5년은 ‘MIT 따라잡기로 규정할 수 있다. 취임 초 입학생 규모를 700명에서 2011년 현재 970여 명으로 끌어올리고, 430명 정도이던 전임교수를 585명으로 충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서남표 총장 1기 때 대외부총장과 기획처장을 맡았던 양지원 KAIST 교수는 최근의 과학기술 분야가 워낙 세분화돼 있기 때문에 연구인력이 많을수록 세계적 연구 성과가 나올 수 있다서 총장은 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적인 면에서도 MIT 수준으로 교수·학생의 역량을 끌어올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임기 중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개혁에 매진하다 보니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했다. 학생자살 등의 부작용도 급격한 성장정책으로 나타난 문제란 평가다.

 

김상식 고려대 산학협력단장은 “MIT를 목표로 학교를 발전시키겠다는 방향은 맞지만, 서 총장 자신의 임기 중 MIT와 비슷한 수준으로 KAIST를 올려놓으려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 차례의 연임을 생각해도 길어야 8년이란 시간 안에 MIT와 경쟁할 만한 대학으로 키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서 총장은 지난 2007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2011년까지 세계 10대 대학으로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자신의 목표에 발목이 잡혀 오직 앞만 보고 질주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부 구성원의 호응을 얻지 못했음에도 소통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한 과학기술계 고위인사는 개혁이란 것은 구성원의 지지를 얻거나 최소한 구성원이 납득해야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며 서 총장의 개혁정책은 그 점에 있어서 좀 무리가 따랐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방향이 옳은 개혁도 구성원과 공감대가 형성돼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은 서 총장도 인정한 대목이다.

 

개혁은 계속돼야 =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KAIST의 개혁이 뒷걸음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18년 전 국민의 혈세(血稅)과학입국을 위해 개교한 KAIST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KAIST가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인 MIT를 지향하고 개혁하는 것은 맞다다만 한국적 토양에 맞는 학생관리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3학번으로 KAIST를 졸업한 이병욱 건국대 기계공학부 학부장도 한 신문의 기고에서 적어도 한국의 대학 중에 MIT를 능가해서 세계 1위를 하겠다는 미친 주장을 하는 대학은 KAIST밖에 없다며 서 총장 개혁을 옹호했다.

 

우리는 흔히 대학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고 얘기한다. 소위 SKY로 불리는 우리의 일류대학이 전 세계 대학순위 100위권 밖에서 맴도는 현실에서 대학경쟁력을 키우고 인재를 양성해 세계 1등 대학을 만들자는 서남표식 계혁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대학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다만 이번 KAIST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개혁의 각론에 들어가서 구성원이 납득하고 따를 만한 방법론을 찾고 보완해야 한다는 것은 서 총장뿐 아니라 대학가가 유념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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