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섭 본지 논설위원·광주보건대학 기획실장

우리사회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기존 제도의 개선에 있어서 여타 선진국의 행보보다 한 박자 늦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특히 개혁 속도가 느린 교육분야에서 개혁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사회구조의 변화에 발맞춰 교육시스템도 변화돼야 하나 하드웨어적 접근 보다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에 급급하는 모양새가 그러한 비판의 날을 서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근래에 새로운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고등직업교육체계의 전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당 대표인 안상수 의원의 발의로 간호과 4년제로의 학제 단일화 법률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고, 김영진·김춘진 의원을 비롯한 야당의원들도 전문대학의 경쟁력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학제 자율화를 기본 내용으로 하는 법률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다.

그동안 정부 주도하에 모색돼 왔던 고등직업교육체계의 변화가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의 이니셔티브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교육과학기술부도 전문대학경쟁력 강화 방안을 연이어 제시하고 있다. 바야흐로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교육시스템 구축, 특히 고등직업교육체계의 새판짜기에 정부, 입법부가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다행스럽게도 각 의원들이 제출한 법률개정안들은 이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그동안 전문대학들이 숙원사업으로 내세웠던 학교 명칭변경과 직무에 따른 수업연한 자율화 등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지부진하던 고등직업교육체계의 개혁에 입법부가 불을 댕긴 것이다.

많은 교육전문가들이 OECD 선진 국가에서 이루어진 고등단계에서의 개혁정책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교육개혁 필요성을 역설해 왔다. 이들은 하나같이 현행 교육시스템을 지식기반사회에 필요한 교육시스템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였다. 개혁안의 핵심 키워드는 수업연한의 자율화와 평생학습체제의 구축이 다. OECD 선진 국가들의 교육개혁은 바로 이 두 가지 주제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국회의 고등교육법 개정안도 바로 이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모처럼 입법부의 활동이 사회 변화를 리드하는 좋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교육개혁에 많은 공을 들여왔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현실에 얽매이고 변화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2020 교육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대학에서는 그 보다 빠른 2015년에 교육대란이 일어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위기의식의 발로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교육시스템으로 ‘대학교육의 사회부합도’를 높이는 데 한계에 도달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제경쟁력을 가진 인적자원은 우리나라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인재들이 계속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돼 왔다. 특히 지구촌 시대를 맞이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인재 양성의 측면에서 현재의 교육시스템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동안 역대 정부들은 문제는 인식했으되 실질적인 행동은 결여된 함정에 빠져 있었다. 개혁에 필요한 ‘발상의 전환’에 인색했고 ‘미래 비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금번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과감한 입법조치들은 매우 적절하고도 희망적인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등직업교육 체제의 재편에 대해서 논의할 토대는 마련되었다. 정부도 좌고우면하던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경쟁력있는 인재양성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적극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고등직업교육시스템 개편이라는 더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데 있어서 금번 국회의 노력이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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