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대 세계 유일 ‘칠예과’ 폐과 위기 놓여

최근 각 대학에서 특성화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면서 매년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신설학과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든 대학들이 신설 당시의 각오와 의지를 잃지 않고 꾸준히 최초학과 육성에 힘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최근 일부 대학들은 해당 분야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최초학과들을 통폐합·축소 조치해 논란이 일고 있다.

■ 실용성 떨어지니 나가라(?)

지난 26일 대학가에 따르면 2004년 세계 최초의 나전칠기 관련 단독학과로 개설된 배재대 칠예과는 최근 대학이 추진하고 있는 학제개편으로 폐과 위기에 처했다. 배재대 칠예과는 단독학과로 개설되기에 앞서 1990년 예술대학 옻칠(칠예)전공으로 신설된 뒤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 최초·최고·유일의 옻칠 교육기관으로서 명성을 얻어왔다.

최근 사례만 들더라도 배재대 칠예과는 2002~2010년 산업인력공단 주최의 기능경기대회 대전지역대회에서 금·은·동메달을 석권했고, 대한민국 공예대전 등 각종 대회에서 대통령상·국무총리상과 같은 최고 권위의 상을 수상했다. 또 배재대 칠예과를 졸업한 중국인 유학생 3명이 베이징공대 등에 전임교원으로 임용되며 국제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배재대 칠예과가 학내외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음에도 대학 측은 이달 12일 학생들에게 내년부터 학과가 통폐합될 수 있다고 일방 통보했다. 학생들과 한 마디의 논의도 없이 결정된 일이었다. 칠예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최은정씨는 “통폐합 통보에 앞서 대학은 칠예과 학생들과 단 한 번도 소통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통보’였다”고 토로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난해 8월 칠예과 전임 교수들이 모두 정년퇴임한 후 신규 교수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학내에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청한 배재대 한 교수는 “칠예과가 2~3년 전부터 전임 교수 충원을 요청했는데 대학에서 갖은 핑계를 대며 이를 미뤄왔던 것으로 안다”며 “학교에서는 칠예과의 취업률, 실용성이 낮다는 점을 탐탁찮게 보고 있다. 그러나 칠예과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역할 등을 고려한다면 통폐합은 대학 스스로 ‘블루오션’을 등지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칠예과 학생들은 대학에 학과 통폐합 방침 철회, 전임 교수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최은정씨는 “칠예과 학생들은 모두 배재대가 아닌 칠예과를 보고 대학에 왔다. 통폐합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칠예과의 앞길을 학생들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대학 측에서 빠른 시일 내에 전임 교원을 충원해 주길 바란다”며 “교수님과 학생들이 충분한 논의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대학 측은 현재로선 칠예과 통폐합에 관한 일체의 언급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보직교수들은 “나중에 얘기하자”며 응답을 회피했고 입학처 관계자는 “칠예과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정확히 정해진 사안은 없다”고 일축했다.

배재대 칠예과와 함께 1994년 국내 최초로 개설된 동국대 북한학과도 최근 폐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동국대가 2007년부터 입학성적·경쟁률 등으로 학과를 평가해 하위학과 입학정원 10~15%를 전략학과에 재배정하는 ‘입학정원관리시스템’을 시행하면서 북한학과의 입학정원이 기존 40명에서 20명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대학가에서는 “동국대는 입학 정원이 15명 이하로 떨어진 학과의 경우 이듬해 신입생을 선발할 수 없게 하고 있다”며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동국대 북한학과의 폐과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와 관련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알려진 것과 달리 동국대 북한학과는 전혀 위기 상황이 아니다”며 “학과별 모집, 소신 지원 증가 등으로 입학 정원이 15명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 ‘대학 의지’에 희비 갈려

이처럼 일부 대학에서 최초학과가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은 해당 학과를 지키고 육성하려는 대학의 의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지표를 중심으로 대학 평가가 이뤄지면서 대학이 취업률·실용성이 낮은 학과들을 성장 가능성, 국가·사회적 필요와는 상관없이 정리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학의 꾸준한 지원에 힘입어 차근차근 경쟁력을 더해가고 있는 최초학과들도 있다. 1993년 국내 최초로 신설된 단국대 몽골학과, 1997년 세계 최초로 신설된 명지대 바둑학과 등이 대표적이다. 이성규 단국대 몽골학과 주임교수는 “단국대의 경우 재단에서 오래전부터 몽골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학의 지속적인 지원·관심을 받으며 차근차근 성장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대학의 지원에 힘입어 개설 이후 단국대 몽골학과는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탄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전적인 노력을 쏟았다. 학과 개설을 전후로 교수들이 몽골국립대에 교환 교수로 파견돼 현지 교육시스템·환경 등을 배워왔다. 또 국내 대학으로서는 최초로 몽골 대학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현지 교수들을 초빙했다. 현재 단국대 몽골학과 전임 교수는 한국인 1명, 몽골인 3명 등으로 몽골인 비율이 월등히 높다.

학과 성장을 위한 노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시적인 성과로도 나타났다. 출입국관리소의 몽골어 분야 담당자 중 단국대 출신은 2005년 5명, 2007년 4명, 2008년 8명 등 총 19명 중 17명이다. 또 올해는 5명을 선발하는 법무부교정직 전원이 단국대 몽골학과 출신으로 채워지기도 했다.

이 주임교수는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보유국으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무궁하다. 몽골 전문가 수요도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며 “대학의 의지와 지원을 바탕으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전국 최초로 신설된 광주여대 콜마케팅학과도 매년 100%에 까까운 취업률을 달성하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박득 광주여대 콜마케팅학과장은 “콜마케팅에 대한 선입견, 낯선 학과명 등으로 인풋이 높은 건 아니지만 아웃풋만큼은 자신한다”며 “광주여대에는 전체적으로 특수한 학과들이 많다. 학교에서 특수학과 성장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지원해주는 게 학과 성장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 역시 대학이 최초학과를 포함한 특성화학과를 개설할 때 장기적인 의지를 가지고 성장을 꾀해가야한다고 조언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대학특성화지원센터 김희근 연구원은 “우리나라 대학들에서는 유행에 따라, 혹은 외부 지원을 받을 목적으로 학과를 신설하고 정리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며 “각 대학들이 확고한 의지와 계획을 가지고 특성화학과들을 육성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도 초당대 검도학과, 호남대 축구학과, 건국대 동화미디어콘텐츠학과, 차의과학대 헬스산업학과, 경기대 융합보안학과, 한국해양대 해양플랜트운영학과 등이 ‘최초학과’라는 타이틀을 달고 신설됐다. 선례에 비춰봤을 때 앞으로 이들 최초학과들이 어떤 길을 걷게 될지에는 대학의 의지가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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