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판. 단판으로 끝나는 일본의 스모와 달리 우리나라 씨름은 세 번을 겨뤄 승부를 가른다. 몽골 씨름 역시 한판승이다. 힘과 기술을 이용해 상대방을 땅바닥에 넘어뜨리는 씨름은 수 천년간 면면히 계승돼 온 동북 아시아 나라들의 민속경기다. 원형 경기장에서 승부를 겨루는 방식은 같지만 일본의 스모는 상대방을 원형 바깥으로 밀어내기, 한국의 씨름은 땅바닥에 ‘자빠뜨리기’를 위주로 한다. 천하장사 이만기 선수가 머리통 하나쯤 더 큰 선수를 머리 너머로 ‘자반뒤집기’ 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는다. 특설의 무대 없이 맨 땅이든 풀밭이든 아무데서나 치러지는 몽골 씨름 부흐는 수초 만에 끝나기도 하고 푸른 하늘을 이고지고 여러 시간 계속되기도 한다. 터키 씨름 ‘카라카자크’는 우리 씨름과 비슷하긴 하지만 양어깨를 땅에 닿게 만들어야 종료된다고 한다.

지리문화적 특성에 따라 씨름의 경기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선수층이나 선수 양성과정도 같지 않다. 씨름을 민속으로 즐기는 나라가 있는가하면 상업스포츠로 탈바꿈시켜 시청자들의 눈요기감으로 제공하는 나라도 있다. 어느 나라건 씨름 ‘선수’가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일상적으로 치열하게 씨름을 벌이며 살아간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힘이나 손발이 필요없는 ‘입씨름’이다. 입으로 서로의 힘을 겨룬다. 직설적인 언사가 동원될 때도 있지만 말 바늘을 은유적 표현 속에 섞기도 한다. 말을 칼처럼 찌르거나 말의 칼을 휘둘러 사람의 마음을 베는 ‘말싸움’에 비해 샅바 당기듯 은근하고 음전한 맛이 입씨름의 묘미다.

그런데 입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하는 사람들도 널브러져 있다. 명예를 훼손당한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형사고소해서 형벌을 받게 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해 위무를 받는 방식을 활용한다. ‘언론중재’ 제도를 운용하는 우리나라는 법원에다가 피해구제를 청구할 수 있지만 간이한 방법으로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는 명예훼손 행위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빈도가 높다. 공직자와 유명한 공적인물들 역시 공인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언론을 상대로 수십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나아가 해당 언론인을 형사처벌해 달라며 가차없이 고소하는 일도 대단히 잦다.

십여년 전부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공직자·공적인물에 대한 언론의 명예훼손 책임을 완화해 주는 판례를 구축해 왔다. 공직자의 도덕성이나 청렴성, 정부정책에 대한 언론의 감시와 견제 역할은 그것이 현저히 악의적이거나 공격적인 보도가 아니라면 민형사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자 이번엔 공직자와 공적인물들이 다른 방식의 법적 대응 태세를 갖추었다.

불쾌한 얼굴 표정으로 버럭버럭 화를 내지르며 상대방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가 시간이 흐르면 슬그머니 고소를 취하하는 ‘발빼기 전략’을 구사한다. 기왕지사 법정에서 진실을 가려보자는 상대방의 간곡한 요구를 ‘넓은 아량’으로 감싸 안겠다며 재빨리 고소를 취하해 버린다.

또 다른 대응 행태로서 ‘입소송 전략’은 발언이나 보도를 허위라고 몰아붙이면서 상대방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다고 한껏 떠벌리기만 할 뿐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방식이다. 입소송 전략가들은 ‘고소장 작성을 도와 드리겠다’, ‘제발 고소하라’고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떠밀어도 모르쇠한다. 시간이 물처럼 흐르고 사람들의 뇌리에서 입소송의 추억이 사라질 때까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오로지 기다릴 뿐이다. 우리나라 씨름의 꽃은 ‘뒤집기’다.

예술처럼 우아하고 정교한 기술로 상대방을 뒤집어 땅에 메친다. 우리사회의 정치인과 공직자들 중 일부는 스스로의 말을 뒤집어 ‘자신을 땅바닥에 메치는’ 입 소송 전략의 달인이 돼 가는 듯하다. 그것은 범부들의 입씨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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