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하면 용서되는 사회. 자아에 대한 고민할 시간 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입시보다 더한 경쟁 속에서 인성교육이나 사회경험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 의사가 되는 게 현실이다.” “명문의대생의 성폭력사건, 진료실의 성추행사건…의대에서 인성교육을 포함한 윤리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고려대 의대생의 동기 성추행 사건을 두고 의대생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인성교육이 무너지고 있다는 자탄의 목소리도 높다. 이와 동시에 인성교육을 강조한 교과목이나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의대들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16일 대학가에 따르면 많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은 인성교육을 강조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거나 의대생을 대상으로 심리상담·봉사활동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는 2003년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인성교육을 강조한 ‘환자-의사-사회(이하 환의사)’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환의사 과정에서는 △의료윤리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환자에 대한 이해 △의사 역할 등을 교육하고 있다.

서울대는 또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의대생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역의 어려운 가정 청소년을 대상으로 ‘서울의대 멘토링’을 실시하는가 하면 학생들이 매달 1004원씩 모은 후원금을 불우한 소아환자들의 진료비로 기부하고 있다.

최민호 서울대 의대 학생부학장은 “의사는 환자를 접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환자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같이 보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북대는 이보다 앞선 1999년 의대 교과과정을 인성교육에 방점을 두고 개편했다. 전 학년에 걸쳐 △환자의사관계 △의료와 사회 △의료윤리학 △의사윤리 등의 과목을 수강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회 각계 인사들을 초청해 특강을 여는 ‘소셜스쿨’ 프로그램을 개발, 학생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안목을 넓힐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장봉현 경북대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는 “의대생들은 ‘의사가 되려는 동기 결여’, ‘적성에 대한 고민’, ‘방대한 학습량과 계속되는 시험’, ‘여가 없는 생활’ 등을 경험하면서 심적 어려움을 겪는다”며 “대학에서 의학지식과 기술교육뿐 아니라 인성에 근간한 의학교육이 되도록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의대생들은 학습량이나 적성 고민 등에서 타 단과대 학생들보다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대학들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의대생을 위한 학생상담센터, 다양한 전인교육 프로그램 등을 마련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는 최근 대학생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학생들이 위기상황에 전화할 수 있는 ‘핫라인’을 개설해 눈길을 끌었다. 핫라인은 연세대 정신과학교실 소속 정교수 7명이 전화번호와 이메일 등을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학생들이 자살 등 위기 상황에 놓이면 언제든 원하는 교수에게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창구다.

남궁기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최근 학생들의 자살이 이어지고 있는데 ‘내 학생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전화번호를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교수들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은 명함 형태로도 만들어져 의대·의전원 학생 모두에게 배포된다.

이 대학은 또 학생상담실을 통해 의대생들의 고민·심리상담 등을 들어주고 있다. 학생 상담실은 대인관계, 학습전략, 스트레스 대처 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부터 전문적인 심리 상담까지 해주고 있다. 또 정신과 진료가 필요할 경우 병원과 연계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한편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한 성추행 사건을 의대 인성교육 부족 탓으로 확대해석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최민호 학생부학장 “이번 사건은 인성보다는 성격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의대의 인성교육과 직접적으로 연관됐다고 볼 순 없다”며 “다만 의대생들이 공부나 명예, 돈 등 세속적인 것 외에 전인적 소양을 갖춘 의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관심을 갖고 지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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