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학문을 위해서 있는 곳이고 그것을 위해서 교수와 학생들은 그곳에 모인다. 그런데 교수와 학생들이 오직 배우고 가르치고 연구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집단이라면 학교는 그 같은 기능만을 지닌 곳이어서는 안된다.

아침부터 온종일 그곳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다가 석양을 바라보며 교문을 나서는 것이 그들의 일상생활이라면 학교 생활은 바로 그들의 인생 자체이고, 그 의미의 전부일 수 있다. 즉 밥 먹고 배설하고 친구를 만나고 산책하고, 사색하고 사랑도 나누는 곳이 캠퍼스라면 그곳은 잠시 머무는 자기 집보다도 더 쾌적하고 아름다운 삶의 공간의 요건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집을 예쁜 삶의 공간으로 꾸미기는 해도 대학 캠퍼스는 그냥 배우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기능만 갖추면 그만 이라는 고정관념으로 그곳은 책상과 걸상만 있으면 그만 이라는 식의 생각에 길들여져 온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 나라 대학들이 대개는 재정적으로 너무 궁핍한 단계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에 양적 팽창주의 또는 대형화의 관행이 볼품없는 캠퍼스를 만든 것이다.

사실 이 나라의 대학들은 넓은 강의실이 많은 대형건물의 위용만을 자랑할 뿐 그 건물의 심미적 가치는 망각해온 경향이 많다.

그러다 보니 대개 천편일률적이며 길거리의 상가 건물과 다를 바 없이 우중충한 색깔에 볼품없는 모양들이 많다. 대개는 서구식 건물뿐이고 교문까지도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하는 등 쓴웃음을 자아내는 곳도 많다.

만일 교수나 학생들이 저녁까지 눈 뜨고 사는 시간을 거의 대학 캠퍼스 내에서 보내고 학문에만 정진하는 대학풍토를 기대한다면 대학의 책상, 걸상, 실험도구 등 기능적 구조물로만 채워지고 있을 뿐 그 외형과 주변환경이 아무런 미적 가치도 없는 캠퍼스는 마땅히 새옷 입히고 성형수술도 해서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항상 주변환경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다. 해골처럼 삭막하고 사막처럼 황량한 환경은 우리들의 정서마저 황폐화시켜 버린다. 그러므로 아무리 심오한 학문의 세계에 들어가더라도 풀 한 포기 없이 흙먼지만 날리는 자리에 잿빛 콘크리트 건물만 우뚝 서고, 새 소리 풀벌레 소리도 없는 곳이 그 대학이라면 그 대학이라면 그 학문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 곳은 인간적 정서를 무시해도 좋은 해괴한 학문의 연구에나 적절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쾌적하고 아름다운 캠퍼스라면 그곳은 그만큼 학문에 지쳐있는 우리들의 피로를 덜고, 더 많은 학문의 성과를 올려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대학이라면 누구나 그 대학을 사랑하고 그 대학의 품 안에 오래 머물고 싶어하고 대학을 떠난 뒤에도 그 대학을 죽는 날까지 그리운 추억의 그림으로 간직하게 될 것이다.

또 그래야만 그 대학은 많은 졸업생들의 자랑이 되고 많은 고교생들이 가고 싶은 명문대학이 되고 전통있는 대학으로 발전할 것이 아닌가?

이렇게 쾌적하고 아름다운 대학을 만들려면 물론 초기부터의 마스터플랜이 필요했어야 옳지만, 지금부터라도 뜻만 있다면 아름다움을 살리는 변화는 결코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대학에서는 그 분야의 전문성, 창의성을 지닌 인재들도 많을 터이니까.

그리고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대교협의 대학평가와 달리 해마다 한번씩 "가장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를 선발하는 또 하나의 대학평가제도가 운영되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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