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럭스 미(VERITAS LUX MEA). 이 말은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뜻의 고대 라틴어로 서울대의 교훈(校訓)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민수 교수는 ‘진리’를 누설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추방당했다. 교훈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로 대학에서 쫓겨나는 희극이 연출된 것이다. 악의적 심사, 두둔하는 서울대 김 교수는 은퇴한 서울대 미대 원로교수의 친일행적을 학술논문을 통해 끄집어냈다는 이유로 지난 98년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당시 재임용심사에 참가한 이 대학 디자인학부 교수들은 연구실적 등을 문제 삼았지만 김 교수의 연구실적은 기준의 네 배에 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재임용 심사의 문제점은 재판과정에서 더욱 여실히 입증됐다. 지난 2000년 2심 당시, 김 교수의 변호인이 재판부로부터 서울대 미대 교수들의 ‘연구실적 심사보고서’ 18건을 입수해 서울대 권영민 교수(국문)와 인하대 성완경 교수(미술교육)에게 감정을 의뢰한 결과, 심사 보고서가 객관성, 공정성, 신뢰성을 잃었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감정에 참여한 성 교수는 “(심사보고서를 보면) 심사위원들이 학술적 자질은 물론, 학자적 윤리성까지 의심된다”며 “이런 식의 논문 심사는 심사 자체의 공정성 뿐만 아니라, 공문서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효력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라며 재임용 탈락을 재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교수 재임용 심사의 문제점이 명백해지고 있지만 서울대 당국은 ‘심사의 타당성’이 아닌 ‘법리’를 들이대며 복직을 재고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해왔다. 그것도 가장 경직된 해석으로라는 것이 김 교수 복직운동을 하고 있는 ‘김민수 교수 대책위’측 주장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서울대측은 ‘기간 임용된 대학교원이 그 기간이 만료 전까지 재임용계약을 맺지 못하면 당연퇴직된다’는 이유를 들어 미대의 재임용거부 결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대의 이런 주장도, 그 근간이 되는 재임용제가 지난 2월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게 됨에 따라 타당성을 잃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이에 따라 김 교수 복직과 관련해 서울대 당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수많은 눈과 귀가 쏠리게 된 셈이다. 정 총장 “당시 심사는 적법”…복직불가 쐐기에 비판 쏟아져
서울대 내외의 이런 관심은 김 교수 복직 문제가 개인차원을 떠나 서울대에 최소한의 자기 정화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로 보는 시각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김 교수 사건의 경과와 추이를 지켜보고 때로는 서울대 당국과 싸워온 교수들은 서울대의 관료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김세균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12일 서울대 학보에서 “김민수 교수가 아직 복직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적 의리관계 등을 앞세우는 대학 내부의 전근대적인 패거리 집단의식과 한번 내려진 결정을 어떻게든 합리화하고 기정사실화시키려는 대학본부의 관료주의적 처신에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전근대적인 패거리 집단의식은 ‘미대’ 교수를, 관료주의는 ‘대학본부’를 향한 쓴소리였다. 김수행 교수(경제학)의 비판은 더욱 가혹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교수들이 전반적으로 수구적 성향이 강하다고 봐야 한다. 서울대라는 곳은 기득권 체제에서 득을 보는 대학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의 한켠에는 서울대 정운찬 총장에 대한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대책위 소속 교수들은 “총장 당선 전 정 총장이 김민수 교수의 복직을 소신으로 피력해왔다”며 정 총장에 대한 기대감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특히 서울대 교수의 27%에 이르는 4백7명의 교수들이 김 교수의 복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만큼 총장이 외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온 나라가 들끓던 87년 6월 항쟁때 ‘호헌철폐’에 서명한 서울대 교수는 1백30여명. 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요구하는 서명에 참가한 교수는 2백50여명에 불과했다. 정 총장은 지난 19일 '학생과의 대화' 자리에서 "김 교수가 탈락한 것은 애석하게 생각하지만 당시 존재하던 규정에 따라 적법한 심사와 절차에 의해 이뤄진 결정"이라며 김교수의 재임용 탈락을 해석했다. 이에 따라 당초 미대가 아닌, 인문대 미학과를 통해 복직시킨다는 우회 방법을 번복한데 이어 또 다시 김 교수의 복직이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있다. 서명운동에 참가했다는 서울대의 한 교수는 “일단 갈등회피적 결론을 내린 것 같다. 복직이 이뤄지면 디자인학부 교수들이 또 분란을 만들테고…. 본인도 감당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서울대는 교수 한 명, 한 명의 공화국과 비슷하다. 외부에서나 보스이지 총장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분석을 내놨다. 또 다른 서명 교수는 “정 총장이 사적 관계에 갇혀있어서 그럴 수도, 인권위 결정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고 설명했다. 지난 2월 28일 교수노조는 재임용제도 헌법 불합치 판결을 계기로, 김민수 교수를 포함, 네 교수의 재임용 탈락과 해임에 대해 불합리한 법으로 인권이 침해당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인권위의 판단을 빌리기 전에 서울대의 양심이 먼저 일어나 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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