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정래] "책상머리 벗어나 현장 누벼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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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본질은 '미국의 약속 불이행'
‘태백산맥’ 작가 조정래…. 암울했던 5·6공 시절을 살아왔던 이들이라면 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는 광폭했던 우리 현대사의 어둡고 쓸쓸한 기억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반공주의의 허구성과 분단이 가한 상처를 똑바로 지적해왔다. 군부정권의 탄압이 자신을 옭아 맬 수 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정치적 폭압이 두려워 알면서도 피해간다면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펜을 쥔 오른팔에 마비가 올 때까지 원고를 쓰고 또 썼다. 그는 최근 북핵 문제의 본질은 미국의 오만과 이기심이라며 왜곡돼 있는 북핵 논의의 현실을 통절해 한다. 또 언제나 우리를 보호하는 맹방으로만 미국을 보고 두둔하며 그들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추종하는 반공세력에게 아집을 벌이라고 충고한다. 우리 학자들이 학자 된 임무를 제대로 못했기에 자신이라도 나서야 했다며 “책상머리에 앉아 있지 말고 현장을 누비라”고 또 이야기한다. 문학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증언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현재 삶을 반추하고 성찰토록 한 작가 조정래를 본지 김우종 주필이 만나봤다. <편집자주> 반공세력, 미국 추종 앵무새 역할은 ‘시대착오’ 김우종=최근 북핵 문제로 또 다시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긴장하지 않는데 우리의 의사와는 아랑곳없이 국제적 음모에 의한 긴장론이 우리의 평화론을 깨부수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선생께서는 그동안 여러 소설을 통해 우리 민족의 백년사를 가장 솔직하고 대담하게 형상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데 최근 북핵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조정래=이미 제네바 합의 전인 94년에도 북한의 핵문제로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만들면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은 바 있습니다. 당시 북핵 위기의 경우 최종적으로 제네바합의를 통해 해소됐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미국과 한국 등 관련 당사국들이 경수로를 통해 북한의 에너지난을 해소해주며 경수로 1호기 완공시점까지 중유를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클린턴 정부는 북한과의 이런 합의내용을 비교적 잘 마무리져왔죠. 그런데 부시 정부가 집권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시 정부가 약속한 경수로 건설이나 중유제공을 계속해서 회피했던 것이죠. 결국 북핵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북한이 극단적인 전술을 구사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부시정권이 제공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국의 무역센터가 테러를 당했다는 이유 하나로 부시 정권의 잘못은 다 덮어놓고 무조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버리는 것은 중대한 오류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미 핵문제를 제네바 합의로 돌릴 수 있다는 뜻을 수차례 천명했습니다. 그 진정성에 대해 미국도 진정성을 가지고 대해야만 한반도 핵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미국이 그런 순수한 태도를 보인다면 한반도 핵문제는 전혀 위험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나라 안 일각에서는 자꾸 북한에 돈과 물자를 퍼주니까 그것으로 핵폭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조=대한민국에는 현재 크게 두개의 세력이 존재합니다. 80년대를 기점으로 그나마 분화된 것인데 그 전엔 하나뿐이었죠. 이를테면 친미와 반공주의 세력인데 반공주의를 친미와 등치 시킨 후 모든 사고와 행동을 미국의 입장에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고 통일 운동이 대중화된 후 반공주의에 대적하는 젊은 세대가 형성됐습니다. 반공주의자들은 지금도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 주는 존재이므로 설령 작은 잘못이 있더라도 미국의 편을 드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과연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은 역사의 물음표입니다. 분명한 것은 북핵 문제를 놓고 미국의 입장만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작금의 상황은 ‘시대착오’라는 것이겠죠. 김=북한이 너죽고 나죽고 식으로 덤비고자 한다면 핵이 없어도 가능할 만큼 많은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를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한반도 위기를 논하자면 핵 이전에 이미 우리는 충분히 그런 상황에서 살아왔는데 새삼스럽게 핵문제로 강대국 논리만 따라가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조=다행스러운 것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반공친미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002년은 반공친미 세력의 주도권을 해체시키는, 소리없는 사회혁명이 몇 차례나 일어난 해입니다. 월드컵, 촛불시위, 부시가 ‘악의 축’ 발언 후 방한했을 때 일어난 대규모 반미시위, 아시안게임, 대통령선거 등 크게 다섯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각 사건의 주체들이 전부 젊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10년, 20년 후 이 땅을 이끌어 갈 주도세력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특히 부시가 방한했을 때의 반미 시위는 해방 후 미군정이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다음 처음 있었던 일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한 것뿐인데 수십년간 그들과 적대해왔던 남쪽 국민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죠. 다시 말하면 빨갱이로만 여기던 북한 사람을 이제는 우리민족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을 깔보지 마라’, ‘북한 사람들도 우리 민족이야’라는 민족동질성의 확인이면서 민족자존심 훼손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그때 방한한 부시가 ‘악의 축’과 비슷한 말 단 한마디도 못하고 돌아가지 않았습니까. 80년대 민주투쟁, 앞으로 우리 역사 1백년 이끌 것 김=젊은 세대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는 세대임을 볼 때 이러한 현상은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조=그렇습니다. 젊은이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의 전 역사에서 배워온 바를 다시 재구성한 것이라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으면서, 고문당하면서 10년 동안 줄기차게 싸워온, 80년대의 그 거대한 투쟁이 30년의 군부독재를 종식시켜버리고 통일운동을 대중화시켰죠. 또 이러한 힘이 잠복해 있다가 어느 순간 다시 응집돼서 일어나는 역사경험의 재발현인 셈이죠. 그렇다면 80년대는 어디서 왔는가. 4·19혁명에서 왔죠. 4·19는 그전의 학생운동서 왔습니다. 또 그 학생운동은 3·1운동에서, 3·1운동은 동학운동에서 왔던 것이죠. 결국 동학운동이 이후 우리민족의 1백년 역사를 규정한 것입니다. 저는 지난 80년대의 시대정신도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1백년 역사를 규정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80년대의 씨앗이 바로 광장의 문화를 만들어 냈고, 선배들의 역사책무, 즉 선배들이 그렇게 싸웠는데 우리도 다시 뭉쳐야 하지 않느냐는 잠재의식의 역사체험이 다시 발현될 거란 것이지요. 김=선생은 지난 20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서 작품과 대결해 왔습니다. 지난 83년 처음 소설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하셨는데, 연재 자체가 우리 문학사뿐 아니라 전체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봅니다. 그 전까지 우리는 흑백논리, 안보논리 등의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겁먹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태백산맥’이 성공적으로 독자들에게 읽히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은폐되고 왜곡돼 있던 역사에 대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본격적으로 마련이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 엄혹한 5공 군사독재 시절에 이 소설이 쓰일 수 있었는지, 또 수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조=우선 신문이 아닌 문학전문지에 연재됐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 두 번째로 군사정권으로부터 당할 수 있을 위해를 반복적으로 피할 수 있는 테크닉을 계속 구사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앞으로 ‘태백산맥’ 연구자들은 이데올로기 뿐 아니라 이 ‘기법’의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으로 봅니다. 셋째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이 격렬히 일어나면서 수사기관들이 미처 문학작품까지 신경을 못 쓴 상태에서 수많은 독자들이 이미 작품을 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막상 검찰에서 이 소설을 내사하고 판금시키고 작가를 구속하려다 보니 이미 3백만부가 팔렸거든요. ‘이미 너무 많은 독자들이 읽었기 때문에 법적 제재를 할 수 없다’는 사상 초유의 검찰 발표에는 이런 연유가 있는 것이죠. 물론 운도 따르고 다양한 기법도 있었지만 억압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도 했습니다. 김=우리나라에 많은 대하소설과 역작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목숨까지 내바치며 쓴 일은 문학사에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은 시작에 불과했고 이후 ‘아리랑’과 ‘한강’을 쓰시면서 우리 백년의 역사와 사회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셨는데. 억압이 두려워 피한다면 비참한 삶
조=‘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이라는 세가지 대하소설을 쓰는 과정에 7종류의 병에 걸렸죠. 위궤양, 종기, 오른팔 마비, 탈장 등에 걸려 온몸이 조각조각 부서지는 통증을 참아가며 썼는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기를 쓰며 쓰느냐고 묻습니다.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되더군요. ‘왜 우리나라의 역사는 척박하고 쓰라리고 아플까’, ‘왜 나는 하필 이런 땅에 태어났을까’, ‘왜 하필 소설을 쓸까’, ‘그렇다면 무엇을 쓸까’…. 그래서 내린 결론이 ‘우리 민족이 겪은 처절하고 척박한 삶에 대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한다’, ‘그런데 분단이 계속 역사를 왜곡하고 정치권력이 정권지배에 편리하도록 이 분단을 써먹고 있으니 진실이 끝없이 안 보인다’, ‘그렇다면 통일이 언제 오겠는가’…. 또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 연애소설이나 재미있는 소설을 쓴다?’, ‘이것은 얼마나 소모인가’, ‘천하에 태어나 생애를 바쳐서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제대로 가자’, ‘몰라서 안 쓰면 죄가 아니지만 알면서 정치적인 폭압이 두려워 피해간다면 그처럼 비굴하고 비참한 삶이 어디 있는가’, ‘그건 죄다’. 이러한 결심이 나이가 들면서도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떳떳하게 쓰고 중간에 다 못쓸지라도 일단은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작가의 삶이다’라는 생각을 했죠. 이러한 생각들이 중첩되고 또 중첩되다보니 전두환 정권의 눈에 보이는 폭압까지도 견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김=신념에 따라 가시밭길만 골라서 걸어오셨을 뿐 아니라 온 시간과 정렬과 피와 땀을 다 바치셨는데 이러한 모습을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교수와 학생들에게서도 더 많이 찾아봤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조=제가 태백산맥을 쓸 당시 한 역사 관련 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젊은 역사학자들 앞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소위 일류대 박사들도 많이 참석한 자리였는데 그들의 공통된 질문이 어떻게 역사학자들이 전혀 손도 못 댄 여순사건과 해방공간의 이야기를 작가가 그렇게 쓸 수 있었는가, 신변에 대한 위협은 두렵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당신들 학자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안 하니까 작가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작가는 예술가이지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산문정신은 역사와 사회의식이 있어야 형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이런 척박한 땅의 작가에게는 그게 더욱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감수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당신들의 직무유기 때문에 나는 소설 쓸거리가 더 많아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신 차리십시오. 제발 책상머리에 앉아 있지 말고 라면을 싸들고 현장을 돌아다니십시오. 당신들이 원하는 자료는 모두 숨어있는 것들뿐입니다’라고 말이죠. 강단에 서는 교수들에게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투철성, 저항성, 진지성, 치열성, 진정성을 학자들이 갖춰야 대학교육이 제대로 될 것이고 선생들이 그것을 언어로, 논리로, 생활로 보여주면 학생들이 왜 안 배우겠습니까. 학생들을 탓하기 전에 지도자, 교수들의 잘못인 것입니다. 자식의 잘못이 부모의 잘못에서 비롯되듯이 학생의 잘못도 전부 교수의 잘못이라는 것을 교수들이 먼저 깨닫고, 혁신하고, 의식을 개혁해야 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김=선생의 신념과 부단한 열정이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전이가 됐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 우리 시대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몸도 쉬게 하면서 좋은 작품 부탁드리겠습니다. 대담=김우종 주필/정리=최윤수 기자/사진=한명섭 기자
●조정래는 누구인가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출생. 1948년 '여순반란사건'을 순천서 겪음. 1966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7년 시인 김초혜와 결혼. 1970년 동구여상 교사, <현대문학>에 ‘누명’으로 등단. 1973년 10월 유신후 교직 떠남. 이후 <현대문예><소설문학>등에 작품활동. 1983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 연재 시작. 1989년 ‘태백산맥’ 완간. 1990년 한국일보에 ‘아리랑’ 연재 시작. 1994년 8개의 반공 우익단체들이 소설 '태백산맥'과 작가 조정래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 이승만 양자에 의해 이승만 명예훼손죄로 고발.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수사실에서 수개월 동안 출두해 조사받음. 1995년 ‘아리랑’ 집필완료. 1998년 한겨레신문에 ‘한강’ 연재. 작품: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외 중단편 다수 수상:<현대문학상><대한민국문학상><성옥문화상><동국문학상><소설문학작품상><단재문학상><노신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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