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수익개선 위주 평가에 의료윤리도 실종

한국병원경영연구원이 전국 42개 대학병원(3차 의료기관) 가운데 22곳의 지난해 경영실적을 분석해 지난달 18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대학병원 의료이익 부문 적자규모는 2001년(24억8천만원)에 비해 70.2% 늘어났다. 이는 병원당 평균 42억2천여만원에 달하는 수치이다. 특히 분석대상 22곳 중 국립대병원 7곳은 평균 70억3천만원의 적자를, 사립대병원 15곳은 평균 29억1천만원의 적자를 각각 의료이익 부문에서 내 국립대병원의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병원의 적자행진은 의약분업 이후 높은 진료수가를 찾아 의사들이 대거 병원을 떠나는 ‘개원열풍’이 불고, ‘재벌’ 병원의 시장이 확대되면서 경영 여건이 악화된 데 따른 것이다. 대학병원의 쌓여가는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병원의 경영혁신 방안을 내놓기도 하고 병원들은 정부방침대로 구조조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국립대병원 감독 책임을 가진 교육부 대학재정과 관계자는 “국립대병원은 특수법인으로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서울대병원만해도 누적적자가 8백억원이 넘는데 경영상의 문제점을 놔둘 수 없다”며 정책적 유인을 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교육·연구 위축…교육부 밑에 둘 이유 무엇? 병원들은 적자 타개를 위해 재정긴축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나름의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교육·연구활동의 부실화라는 심각한 부작용도 동반했다. 국립대병원은 교육, 연구, 진료의 세 가지 공공 책무를 갖고 있음에도 교육, 연구활동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위원은 “교육부가 대학병원에 제시한 경영혁신 방안을 보면 교육부문에 대한 평가는 거의 없고 영리기업 원칙과 꼭 닮았다. 자연히 국립대병원들은 교육과 연구부문에 대한 뒷받침 보다는 돈벌이 중심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진료수익 쪽에 초점을 맞춰 의사들을 돌리다 보니 교육·연구보다 진료만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싹텄다”고 꼬집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실장도 “진료행위를 해서 적정한 수익이 보장됨으로써 교육이나 연구가 제대로 돼야 하지만 병원수익이 상당히 낮아 사실 잘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 2000년 교육부가 내놓은 ‘국립대병원 경영혁신’ 연구용역 논문에서도 연구단이 ‘국립대병원 경영혁신 방안은 진료부문에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교육 및 연구부문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소지가 있다’(‘정책제언’ 중)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국립대병원을 보건복지부가 아닌 교육부가 관할하도록 한 이유와도 배치된다. 진료뿐 아니라 교육·연구 기관인 관계로 국립대병원을 교육부 밑에 둔 이유가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보건의료노조는 보건의료에 대한 전문성도, 의료교육·연구에 장학의지도 없는 교육부보다 차라리 보건복지부로 국립대병원을 이관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상당수 보건의료단체들과 의료종사자들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국립대병원 평가시 ‘교육·연구’와 ‘공공 봉사’쪽 평가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S대 보건대학원의 한 교수는 “국립대병원 개혁이 책무성을 균형있게 강화하는 쪽이 아니라 수지개선만 강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며 “교육·연구를 진작하려는 정책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위기 돌파구는? 그러나 정부는 아직껏 ‘공공성 회복’의 관점 보다 늘어나는 적자를 줄이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게 보건의료 시민단체들의 판단이다. 경영의 군살을 뺀다면서 오히려 공공서비스까지 축소시키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실제 의료수익이 아닌 병원내 식당, 주차장, 영안실 등 부대시설에 거두는 의료외 수익의 경우 연간 30~50억원의 이익을 내는 현실(한국병원경영연구원 2003년 조사자료)을 차치하더라도 지난 7월 드러난 물품 및 치료재료비를 환자에게 이중청구한 사례, 이달 16일 보건복지부가 밝혀낸 혈액검사비 이중청구 사례는 대학병원들이 수익고를 채우려 환자 ‘사취’까지 관행화했음을 드러냈다. 특히 잇따르는 추문들이 ‘정보의 비대칭성’(환자의 전문 의료지식부족)을 악용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지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대해 의료 공급자 연대체인 ‘건강사회를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결국 국가가 공공의료 예산을 확대하고 공공의료기관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경우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비 비율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스웨덴 83.8%, 일본 78.3%, 헝가리 76.5%, 폴란드 73.3%(1998년 기준) 등에 턱없이 못 미치는 45.8%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이용균 연구실장은 “우리나라 의료체제는 전국민의 의료보험 강제 가입과 수가구조를 통해 이뤄지는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구조”라며 “국가가 공공의료예산을 늘리는 방식을 쓰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는 병원 적자규모를 감축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은 ‘수가 현실화’ 밖에 없지만 보험료 인상에 대한 저항이 크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 정부도 머뭇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보건의료 시민단체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공공의료기관인 대학병원들이 구조적인 위기를 겪는게 사실이라면 국민부담을 늘려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환자에게 의료비를 부당청구하고 투명성 문제로 의혹을 사는 일이 다반사인 상황이라면 책임을 나누겠다는 국민적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며 “의료계의 자기개혁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