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부실대학 선례 살펴보니······

이른바 ‘한계대학’이 50여개에 달한다는 판단 가운데 정부 주도의 부실대학 퇴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실대학이 퇴출이 현실화되면 해당 대학 교수·직원·학생은 어떻게 될까. 본지가 앞서 퇴출·폐교된 아시아대·광주예술대 등의 선례를 살펴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교수와 직원에 대해서는 무대책으로 일관했고, 학생들 역시 인근 대학들에 뿔뿔이 흩어져 편입됐다.

대학 퇴출시 잔여재산을 국고로 귀속시키는 현행 법에 따르면 이들을 구제할 방안은 없다. 잔여재산 일정 비율을 설립자·구성원 인센티브와 대책 비용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 갈 곳 잃어버린 퇴출대학 교수·직원 =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상처를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춰내는 것일 뿐더러 폐교니 퇴출이니 하는 단어는 생각하기도, 입에 올리기도 싫습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퇴출대학 A 교수의 상처는 여전했다. 지난 2006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 감사에서 임원 허위 취임, 대가성 금품 수수, 교직원 급여 체불 등 각종 비리로 문을 닫은 아시아대 A 교수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대내외 인정을 받는 교수였다. 하지만 몸담은 대학이 퇴출되는 바람에 그간 쌓은 실적은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퇴출대학 교수들은 다른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난망했다. 비리로 채용된 것 아니냐는 시선부터 실력이 있다면 왜 진작 건실한 대학으로 옮기지 않았냐는 의혹이 끝끝내 낙인으로 작용했다.

정부가 손을 쓸 수도 없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사립대학제도과 담당자는 “학생들은 그렇다 쳐도 교수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국립대 교수로 채용시켜줄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교과부는 고교 이하에 한해 읍·면 소재지 분교 통폐합시 해당 교원을 공립 교원으로 특채하는 정책을 썼지만,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해당 대학의 직원은 상황이 더 열악했다. 교수는 연구 실적 등 포트폴리오로 평가받아 다른 대학에서 채용되기를 바랄 수 있었지만, 직원은 그나마도 불가능했다. 송영식 한국대학법인협의회 사무총장은 “부실대학 퇴출시 교직원 처리 문제가 가장 큰 난관”이라며 “직원은 교수들보다 상황이 더 어렵다. 자영업 외에 다른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 ‘두 번 우는 학생’ 책임은 누가 지나 = 재학 중인 대학이 부실 판정을 받은 이유만으로 적을 옮기며 마음고생을 해야 했던 학생들의 처지는 더 기가 막히다. 몇몇은 자칫 잘못하면 옮긴 대학마저 다시 한 번 부실대학에 지정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대규모 부실대학 퇴출 사태를 맞으면 이들의 편입을 받는 대학들의 행정적 애로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된다.

비교적 최근 퇴출된 아시아대 학생들은 인근의 건동대·대신대·경북외대 등으로 나눠 편입됐다. 교과부가 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의 편입을 받아주라는 공문 발송 정도였다. 당시 담당자는 “학생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 웬만하면 받아주라고 학교들에게도 요청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공교롭게도 이들 학생이 편입한 대학 중 상당수가 ‘학자금대출제한대학’·‘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되며 부실대학 정리 대상에 오른 것이다. 아시아대 퇴출 당시 편입했던 몇몇 학생들은 두 번씩이나 부실대학 학생으로 지정되는 풍파를 겪게 되는 셈이다.

해당 학자금대출제한대학의 B 교수는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지표를 들이대 정리해버리는 방식 자체가 부적절하다. 제대로 인풋·아웃풋의 교육적 효과를 비교할 기준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무조건 정리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며 “특히 부실대학 퇴출로 두 번 상처받는 학생들이 하나라도 있다면 누가 책임지나. 전혀 교육적 조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부실대학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규모가 커지면 행정상의 애로점도 많아질 전망이다. 퇴출된 광주예술대 학생들을 편입받은 호남대 관계자는 “당시에는 퇴출대학이 드물고 학생 숫자도 많지 않았지만, 이제 그럴 경우 학교 네임 밸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전주대 관계자 역시 “퇴출대학과 교육과정이 다소 다른데, 편입생 한 명 때문에 대체과목을 새로 개설해야 하는 등의 행정적 번거로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 퇴출경로 이끄는 인센티브 보장 필요 = 결국 이런 문제점 때문에 퇴출대학 구성원에 대한 위로금 지급 등 인센티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핵심은 잔여재산을 국고로 환수하는 현행 법을 고쳐 일정 비율을 이 인센틴브 명목으로 돌리는 것이다. 현재 잠자고 있는 관련 법안 중에서도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의 사립학교법 전부개정안 같이 구체적 수치(30%)를 정해 대학 정리·퇴출 비용으로 사용토록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대학평의원회와 개방이사제 시행으로 교직원들이 학교 해산의 심의·결정에 관여하는 구조에서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실직을 권유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구성원 동의에 의한 ‘자발적 퇴출’을 위해서도 잔여재산을 활용할 수 있는 법적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이슈가 된 성화대학이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 관계자는 “성화대학은 월급 13만원으로 난리가 났지만, 그 대학 교수나 직원이 실업자가 되는 마당에 제 손으로 정리하자는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며 “설립자를 포함해 이해 관계자들에 대한 보상금·위로금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퇴출 경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사학에 대한 일종의 명예퇴직 제도인 셈이다. 그렇다고 설립자가 잔여재산을 100% 챙길 수는 없다. 실제로 법안에 따르면 설립자가 잔여재산 처분 계획서를 만들어 교직원 위로금 등 퇴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외에도 챙겨야 할 대상은 많다. 기부자나 무상으로 대학에 부지를 제공한 지자체 몫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 양도소득세 보전 문제 등 세금 탕감·면제·감세 조항은 세법에서 추가로 다뤄져야 한다.

지방 소재 대학의 경우 자산가치가 높지 않은 현실적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폐교가 결정되면 쓸모가 없어지거나 리모델링 비용이 감안돼 공시지가보다 값이 떨어지고, 학교 용도 폐지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학교시설로밖에 쓰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아시아대 부지를 인수한 대구한의대 이영화 기획연구처장은 “다른 목적으로는 매입이 불가능하고 교육기관끼리만 매매할 수 있어 매입 과정에서 몇 번 유찰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 지방 사립대 법인 관계자는 “조전혁 의원 안이 비교적 합리적이지만 잔여재산을 돌려주는 비율은 30%가 아니라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며 “설립자가 잔여재산을 독식하는 것으로 비춰지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먹튀’는커녕 교직원 위로금과 각종 기부자에게 배분하는 금액이 설립자가 돌려받는 몫보다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방대는 문화센터… 정원 감축부터

부실대학 퇴출에 따른 후속 구제조치에 대한 논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 대학구조개혁위원회 박광원 사무관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활동이 이제 한 달 됐다.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3개 관련 법령이 담고 있는 학교 폐쇄·해산시 교직원 보호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퇴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지방대들은 평가 잣대가 수도권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부실대학 결정에 사실 대학 경영보다는 입학자원 감소라는 ‘외부 환경’ 변화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들 대학 관계자는 “지방대가 죽어야 다른 대학들이 산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가만 놔둬도 퇴출될 대학은 퇴출된다”며 “낙인을 찍어 퇴출시키는 것보다 인센티브를 제공해 자율적 퇴장을 유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송영식 한국대학법인협의회 사무총장은 “부실대학이라고 낙인을 찍지만, 지방대는 그 지역 문화센터 역할을 하고 타지 학생들을 유치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도 된다”며 “여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게 아쉽다”고 꼬집었다.

그는 “군·면 단위에 대학이 하나 있음으로 해서 인구가 수천명 늘어나고 지방교부금 수입도 쏠쏠하다. 이런 점을 도외시하고 대학 퇴출을 밀어붙이면 대학 구성원 뿐 아니라 지자체·지역주민까지 반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학 숫자 줄이기에 앞서 학생 숫자부터 줄이는 정원 감축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규모 연구중심대학, 지방거점국립대의 덩치를 줄여 연구력·기초학문 강화, 소수정예교육 효과와 함께 고른 정원 분배로 입학자원 감소에 대처하는 ‘공생의 길’이 있다는 주장이다.

김봉구·이연희·전은선 기자 paper81·bluepress·ches24@unn.net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