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로는 국립대 경쟁력 제고에 한계' 판단

“교대 MOU는 구조개혁 첫 단추···국립대 확산 드라이브”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교육대의 좋은 사례(총장 직선제 폐지)가 다른 국립대에도 확산되었으면 하는 것이 교과부의 바람이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총장직선제 폐지를 선언한 광주·부산교대와 18일 구조개혁 추진 MOU(업무협약)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는 교육대를 기점으로 전체 국립대에 총장직선제 폐지를 확산시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도입, 20년 동안 자리잡은 직선제 폐지를 국립대 혁신의 시발점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과부가 총장직선제 폐지에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는 이에 따른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국립대가 대부분의 운영경비를 국고로 지원받고 있음에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배경에는 총장직선제도 한몫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대학 중 국립대의 비중은 학교·학생·교원 수에서 각각 10.5%, 23.5%, 21.6%를 차지하지만, 정부 재정지원액 중 60% 정도를 지원받고 있다. 2010년 기준 전체 대학 재정지원액(7조 395억 원) 가운데 무려 59.8%(4조2129억 원)가 국립대에 투입됐다.

그러나 국립대의 연구·교육성과는 사립대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다. 기술이전 수입은 국립이 4억9568만원, 사립이 6억9981만원을 기록했다. 전임교원 1인당 논문 수에서도 국립대(평균 0.35건)의 실적이 사립(0.44건)에 미치지 못한다. 건강보험 연계 취업률에서도 사립(58.7%)이 국립(51.9%)보다 앞섰다.

때문에 교과부는 국립대의 낮은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특성화·학과통폐합 등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1차적으로 총장직선제 폐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장보현 국립대학제도과장은 “대학 특성화 등 국립대가 구조개혁을 하려고 해도 교수들의 학과 이기주의가 발목을 잡고 있다”며 “총장직선제 폐지가 국립대 구조개혁의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립대 총장 선거가 교수들의 연구·교육 분위기를 흐리는 측면이 있다. 근래에 치러진 국립대 총장선거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잡음으로 얼룩졌다. 부산대는 지난 6월 선거에서 선출된 정윤식 교수가 선거인 37명을 모아놓고 지지를 부탁한 혐의로 부산지법으로부터 벌금 4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이에 앞서 지난 3월 치러진 창원대 총장선거에서도 후보자인 A교수가 같은 학교 B교수의 연구실을 방문, 선물과 ‘기프트 카드’를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지난해 5월 전주교대 총장선거에서는 현 유광찬 총장이 동료 교수에게 선물을 제공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벌금 80만원을 확정받았다. 80만원은 당선자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벌금액이기 때문에 우여곡절 끝에 총장 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는 국립대 총장선거가 필요이상으로 과열되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최소 5명 이상의 후보자가 등록하고, 학내 교수들은 지지자에 따라 파벌을 형성하기도 한다. 장보현 과장은 “국립대 총장선거가 과열·혼탁해지면서 선거철마다 후보로 출마한 교수는 동료 교수들에게 밥 사고 얼굴 내미느라 바쁘다”며 “대학의 연구·교육역량을 결집하는 데 총장직선제가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은 이번 교육대 총장직선제가 폐지되는 과정에서도 거론됐다. 부산교대 교수들은 학교가 하위 15% 국립대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직선제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

100명도 채 되지 않는 교수들이 분파를 형성하고 ‘돌아가면서’ 총장을 하는 교대 특성상 ‘이번엔 우리 차례’라고 생각한 교수들이 강하게 직선제 폐지를 반대한 것이다. 당시 부산교대 관계자는 “총장 선거 때마다 교수사회가 사분오열 된다”며 “이번에는 우리 차례라고 생각한 교수들의 반대로 직선제 폐지가 힘이 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구성원 직선으로 뽑힌 총장의 경우 자신을 밀어준 교수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국립대 총장 재임 중 교수들에게 지급한 급여보조성 경비 지출은 총장 재임 2년차에 가장 많았다. 이 문제를 거론한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총장을 직선으로 선출할 경우 어떤 후보든 교직원 복리후생을 증진시키겠다는 선심성 공약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당선되면 재임 첫 해는 그냥 넘길 수 있으나 두 번째 해에는 공약이행에 대한 내부 압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총장 선거를 놓고 교수사회가 갈리기 때문에 어느 쪽에서 총장이 된다 해도 대학운영이 어렵다는 점도 거론된다. 부산교대 관계자는 “총장선거에서 이긴 쪽이 학교 당국이 되고, 안된 쪽은 연합전선을 구축해 야당이 되니 학교경영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새로 선출된 총장이 비전을 갖고 대학을 개혁하려고 해도 다른 분파에서 이에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연유로 교과부는 향후 전체 국립대에 대한 총장직선제 폐지를 요구할 전망이다. 정책에 동참하는 대학에는 재정지원 사업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보인다. 직선제를 폐지하는 대학이 교수 정원(TO)을 우선 배정받고,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침 내년부터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가 국립대와 사립대로 분리된다. 때문에 국립대 간 경쟁에서 총장직선제 폐지여부(15%)를 평가지표로 활용, 직선제 폐지를 유도하겠다는 얘기다.

실제로 교과부가 지난 8월 발표한 ‘2단계 국립대 선진화 방안’ 초안에는 내년 교육역량강화사업 평가지표가 예고됐다. 교육 여건·성과지표(취업률·재학생충원율·장학금지급률·1인당교육비)가 65% 반영되고, 총장직선제 개선 방안에 따른 학칙개정 여부(선진화지표)가 15%나 반영된다.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정부 재정지원을 받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더 좋은 대안이 없으면 2단계 선진화 방안이 초안대로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가 교육역량강화사업의 당락을 가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 사업은 대학에 대한 대표적 재정지원사업으로 선정 대학 당 25억~30억 원 정도를 지원받는다. 워낙 신청 대학이 많아 평가점수 1~2점에도 당락이 엇갈리기 때문에 대학들로서는 마냥 직선제를 유지할 수 없는 입장이다. 총장 직선제 폐지가 다른 국립대에도 확산될 것으로 보는 장관의 시각에는 이러한 현실인식이 깔려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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