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학 학제 자율화> 교육부 대통령 업무보고 전문대학 규제완화 담겨

4년제 대학들 “구조조정 하는 판에 왜 풀어주나”
전문대 “산업구조 바뀐 만큼 인력양성도 바꿔야”

[한국대학신문 신하영·김기중·손현경 기자]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전문대학 수업연한을 풀겠다”고 밝히면서 대학가가 술렁이고 있다. 아직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관련 법 개정이 현실화되면 양측 간 적지 않은 논란이 예고된다.

◆ 수업연한 다양화 계획 대학가 술렁= 새 정부 출범 직후 이뤄진 교육부 대통령 업무보고에선 전문대학과 지방대에 대한 육성책이 시선을 끌었다. 특히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을 풀어주겠다는 계획은 ‘당사자’인 전문대학은 물론 ‘잠재적 경쟁자’인 4년제 대학까지 들끓게 만들었다.

전문대학 수업연한 다양화는 기존 2~3년제로 제한돼 있던 전문대학의 학제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게 골자다. 심화된 교육과정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선 전문대학이라도 4년제 교육이 가능하도록 규제(수업연한)를 없애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물론 4년 교육과정이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은 해당 대학이 내린다.

벌써부터 4년제 대학들의 반대 의견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4년제 국립대 총장은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들을 구조조정하는 판에 전문대학을 4년제로 만들어주겠다는 발상이 말이 되느냐”라며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 구조조정 정책과 상반 된다”고 비판했다. 4년제와 전문대학 구분 없이 대학을 줄여야 하는 판국에 한 쪽에서는 규제를 푸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사실 2~3년제인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을 4년까지 확대해 주면 편제정원이 늘어나는 효과가 생길 수 있다. 4년제 대학 일각에서 “학령인구 급감을 앞둔 상황에서 대학정원을 실질적으로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인 교육부는 현실적으로 ‘증원’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전문대학정책과 이은선 사무관은 “정원을 늘리려면 늘어난 정원에 해당하는 4대 요건(교원·교지·교사·수익용기본재산)을 모두 100% 충족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증원은 어렵다. 수업연한이 풀리더라도 전문대학들은 자체 정원 조정을 통해 일부 학과를 4년제로 변경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증원에 필요한 요건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수업연한 다양화가 정원이 늘어나는 효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에 대해선 전문대학 측도 입장이 같다. 이승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전문대교협) 정책기조실장은 “고등교육법상 정원을 함부로 늘릴 수 없고, 정원을 늘린다고 학생들이 많이 오지도 않는다”며 “현재 편재정원은 그대로 두고 수업연한만 다양화 하자는 것”이라 말했다.

▲ 지난 2005년 열린 전문대학 교육혁신결의대회에서 참석자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자료사진>
◆ 전문대학 규제 완화 왜 나왔나= 그렇다면 전문대학에 대한 규제에 해당하는 수업연한을 풀겠다는 발상은 왜 나왔을까. 이에 대해 교육부는 전문대학이 도입될 당시(1979년)와 지금의 산업구조가 너무나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나승일 교육부 차관은 이번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지금의 전문대학 체제가 만들어진 1979년에 비해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확연히 다른 지식기반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대학 수업연한은 풀어주고, 산업 수요에 맞는 제대로 된 인재 양성을 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승근 실장도 “전문대학은 1979년 ‘중견직업인 양성’을 목표로 탄생했지만 1997년 교육법이 세분화하면서 교육목표가 ‘전문직업인 양성’으로 바뀌었다. 교육목표가 바뀌면서 수업연한 다양화가 필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산업 발달로 현장에서 요구하는 기술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에 2~3년제를 기본으로 하는 전문대학 학제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해외에서도 직업교육이 심화된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미국의 경우 전문대학에서도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일부 전문대학은 대학원까지 설치해 석사학위까지 준다. 캐나다·영국·핀란드·독일 등 교육선진국을 자부하는 국가에서도 전문대학에 대한 수업연한 규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제 대학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교육의 질’이나 ‘정체성’의 문제와 관련이 깊다. 대구지역 한 사립대 교수는 “전문대학은 실습위주의 교육을 시켜 직업인을 양성하는 곳이고, 4년제는 학문연구와 이론교육이 중심”이라며 “만약 전문대학이 4년제로 전환할 수 있게 해 주면 (전문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대학의 교육과정을 4년으로 확장하면 이론교육도 시켜야 하는데 실습교수가 대부분인 전문대학에서 가능하겠느냐는 문제 제기다.

이에 대해 전문대학은 발끈한다. 윤여송 고등교육직업교육학회장(인덕대학 교수)은 “전문대학 교수나 4년제 대학 교수는 이미 법적으로 교수자격이 단일화 돼 있다. 중학교 교사와 고등학교 교사가 다르다고 볼 수 있는가”라며 “오히려 산업현장과 괴리된 교육을 시키는 일반대학이 전문대학 교수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일반대학과 전문대학 간의 갈등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취업률이 대학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4년제 대학이 전문대학의 실용학과들을 모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안경광학·패션·미용 등 과거엔 전문대학에서만 볼 수 있는 학과들을 10여 년 전부터는 4년제 대학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양한주 전문대학 기관평가인증원장(동양미래대학 교수)는 “전문대학들이 온갖 노력을 들여 키워온 학과들을 4년제 대학이 가져갈 때는 아무런 말도 없다가 이제 와서 칸막이를 없애려하자 (4년제 대학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여송 회장도 “이미 4년제 대학도 학술중심의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며 “수업연한 다양화는 전문대학이 4년제 대학과 같아지려는 게 아니라 바뀐 산업현장에 맞는 맞춤형 인력을 양성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4년제 전문대학 언제쯤 가능할까= 교육부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전문대학 수업연한 다양화 계획을 밝혔지만, 당장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행 고등교육법(48조)은 ‘전문대학의 수업연한은 2년 이상 3년 이하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4년제 전문대학’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고등교육법과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교육부는 가급적 빨리 법 개정을 추진할 생각이다. 개정법안을 만들어 상반기 중 국회에 제출, 올해 안에 법 개정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이 계획대로라면 시행령 개정에 6개월이 소요된다 해도 내년 하반기부터는 시행이 가능해 진다. 이르면 2015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전문대학도 ‘4년제 학사학위’가 가능하다는 점을 내세워 신입생 유치에 나설 수 있다.

대학 구조조정 방침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교육부 생각은 다르다. 이은선 사무관은 “대학정책은 두 가지 트랙으로 가야한다”며 “잘하는 대학은 규제를 풀어주고 못하는 대학은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해서 잘하는 전문대학의 발목을 잡을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대학이 원한다고 ‘4년제 전환’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교육부도 대학 설립·운영에 필요한 4대 요건(교원·교지·교사·수익용기본재산)을 충족해야 4년제 전환을 허가해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사무관은 “법 개정이 된다고 해도 이를 신청한 전문대학에 대해 무조건 4년제 전환을 허가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 전문대학은 4년제에 비해 4대 요건 충족율이 70% 정도인데, 이 기준을 채워야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4년제 전환을 원하는 전문대학들은 교수를 더 채용하거나 교사·교지 면적을 늘려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개정이 이뤄지면 전문대학의 4년제 전환 신청은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그만큼 전문대학의 숙원이 현실화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사회 통념상 4년제 대학의 학사학위를 선호하기 때문에 4년제 대학으로 학생들이 쏠리고 있다”며 “전문대학도 수업연한을 풀어 일반대학과 같은 출반 선상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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