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저소득층 로스쿨 진학 어렵다” 도입 주장

학계 “변호사 기득권 지키기···로스쿨제도 보완해야”
법무부 “예비시험 도입 2년 뒤 논의하자” 유보 입장

▲ 8일 전국법학전문대학원 학생협의회 학생대표 20여명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변호사 예비시험을 도입할 게 아니라 로스쿨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김성주 전국법학전문대학원학생협의회장(전남대 로스쿨 학생회장, 오른쪽 두 번째)이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신하영 기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 5년차를 맞으면서 흔들리고 있다. 변호사 예비시험(이하 예비시험) 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는 데 따른 것이다. 로스쿨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도 예비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얻을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학계에선 예비시험이 도입되면 로스쿨제도 자체가 와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예비시험 도입 주장 왜?= 17일 법학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예비시험 도입 주장은 지난 5년간의 로스쿨 운영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빌미가 됐다. 대표적인 것이 ‘고비용의 로스쿨 학비’다. 이로 인해 저소득층·서민의 법조계 진출기회가 차단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사립대 로스쿨의 연간 평균 등록금은 2075만원에 달했다. 이는 국·공립대 등록금(415만원)의 5배, 사립대(737만원)의 3배가 넘는 액수다. 3년간 60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로스쿨은 ‘돈스쿨’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때문에 로스쿨이 부와 권력의 대물림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액의 학비와 로스쿨 입학전형방식이 서민층 접근을 어렵게 하는 진입장벽으로 기능한다는 주장이다.

로스쿨은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 양성’을 취지로 도입됐다. 이 때문에 입학 전형과정에서는 면접 반영비율(10~40%)이 비교적 높다. 면접에선 사회경험이나 자격증 등 소위 ‘스펙’을 고려하게 되는데 생계와 학업을 병행해 온 고학생이 불리하다는 주장이다.

▲ 사립 로스쿨 1인당 등록금 증가액(단위: 천원, %, 자료: 유기홍 국회의원실)
높은 학비와 입학전형방식 때문인지 로스쿨 입학생 중 40%는 서울지역 고교 출신이다. 그 중에서는 10.4%가 서울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전국을 놓고 볼 때, 234개 시·군·구에서 3년간 로스쿨 입학생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지역이 150곳이나 됐다.

◆ 로스쿨 합격생 절반이 ‘SKY 출신’= 명문대 쏠림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김상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해 1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전국 20개 로스쿨에 합격한 5074명 중 서울대 출신이 21.1%, 고려대 출신이 15.2%, 연세대 출신이 14.1%를 차지했다. 소위 ‘SKY’ 출신(50.4%)이 전체 입학생의 절반을 넘어선 것이다.

물론 로스쿨 입학제도에도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특별전형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선발규모는 2011년 기준 124명으로 총 입학정원(2000명)의 5% 정도다. 그런데 이 제도마저 부유층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월 감사원이 로스쿨 특별전형에 대한 감사를 진행할 결과 부유층임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으로 위장, 입학한 사례가 대거 적발됐다. 저소득층 수준을 넘어서는 부동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건강보험료 납부액이 적다는 이유로 특별전형에 합격한 게 대표적이다. 재산세 납부증명서 발급의 맹점(지자체별로 발급되는 점)을 이용, 증명서류 일부만 제출해 저소득층으로 인정받은 사례도 드러났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법조계를 중심으로 예비시험 도입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일 박영선 민주통합당 의원이 주최한 국회 토론회에 참석한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은 “로스쿨제도에서 특정 지역·학교를 중심으로 한 서열화와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예비시험을 통해 로스쿨 문제점을 보완하고, 누구나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게 헌법의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편”이라고 주장했다.

◆ 사법시험 폐지 앞두고 급부상= 변호사 예비시험제는 로스쿨 출신에게만 허용되는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비(非)로스쿨 출신에게도 주자는 것이다. 기본적인 법학소양을 평가, 합격하면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이 부여되는 게 이 제도의 골자다.

현재 법조인 진출 코스는 기존 ‘사법시험→사법연수원’에서 점차 ‘로스쿨→변호사시험’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사시 선발인원은 지난해 500명으로 줄었고, 올해는 300명으로 감축된다. 법무부는 △2014년 200명 △2015년 150명 △2016년 100명 △2017년 50명을 끝으로 사법시험을 폐지할 방침이다.

사시 폐지 이후에는 로스쿨을 통하지 않고는 법조인이 될 수 없다. 지금의 사법시험·로스쿨로 이원화된 법조인 진출 코스가 점차 일원화되는 것이다. 이에 “경제적 형편상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서민층에게도 법조인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논리에서 예비시험의 필요성이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법학계는 본질을 호도하는 논리라며 이 같은 주장을 일축한다. 로스쿨이 가진 문제는 ‘총정원’ 규제에서 비롯됐다는 항변이다.

지난 2006년 로스쿨 인가 심사기준을 연구했던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로스쿨을 정착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예비시험을 도입하게 되면 제도 자체가 와해 된다”며 “법조계가 로스쿨 입학에 서민에 대한 진입장벽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로스쿨 총정원 규제를 푸는 게 서민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로스쿨 입학정원은 2000명으로 제한돼 있다. 이를 전국 25개 로스쿨로 나누다보니 정원이 40명인 곳이 4곳, 50명인 곳이 5곳이나 된다. 반면 인가신청 당시 이들이 제시한 장학금 규모는 크다.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원감축 등 제재를 받는 로스쿨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때문에 한상희 교수는 로스쿨 총정원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원 제한을 풀면 대학들이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야간과정이나 평생교육과정에서도 로스쿨 교육을 도입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로스쿨을 ‘돈스쿨’이나 ‘귀족학교’로 부르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 “로스쿨 총정원 제한이 문제”= 법학계에선 최근의 로스쿨 흔들기를 ‘변호사들의 기득권 지키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2017년을 끝으로 사법시험이 없어진다고 하니 변호사들이 강박관념을 갖는 것 같다”며 “이들은 ‘사법시험 합격’과 ‘연수원 출신’인 점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기 때문에 끊임없이 로스쿨을 흔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지금의 제도를 개선해 로스쿨을 유지하자는 게 법학계 주장의 골자다. 신현윤 로스쿨협의회 이사장(연세대 교수)은 국회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로스쿨은 변호사예비시험을 두지 않더라도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 신체적·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계층을 ‘특별전형’으로 선발하고 있다”며 “차라리 예비시험에 드는 비용을 로스쿨에 투자해 특별전형을 활성화시키고 장학금을 확충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도입된 지 5년밖에 지나지 않은 로스쿨을 흔들리기보다는 저소득층·서민층의 진입이 용이하게 제도를 보완하자는 의견이다.

현재 법무부는 예비시험 도입 논의를 당분간 유예하자는 입장이다. 법무부 안권섭 법조인력과장은 “2, 3기 로스쿨 졸업생의 취업 현황을 살펴보면서 로스쿨 제도가 정착할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며 “예비시험 도입 여부는 2015년에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우리보다 먼저 로스쿨 경험 일본은?
예비시험 출신이 신 사법시험 합격률 더 높아

일본은 우리보다 5년 일찍(2004년)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다. 초기에는 우리처럼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법시험 제도를 병행했다. 이후 단계적으로 합격자 수를 줄여나가다 2011년 이를 완전히 폐지하고, 새로운 시험제도를 마련했다. 예전 시험과 구분하기 위해 명칭은 ‘신(新)사법시험’으로 정했다.

신 사법시험은 원칙적으로 로스쿨 졸업생만 응시할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의 ‘변호사시험’에 해당한다. 대신 예비시험이란 별도의 평가 제도를 신설했다. 로스쿨을 다니지 못한 사람들은 이 예비시험을 통해 신 사법시험에 도전할 자격이 주어진다. 매년 로스쿨 졸업생과 예비시험 합격자가 신 사법시험에 응시하는 ‘이원화’된 구조인 셈이다.

지난해 치러진 신 사법시험에는 8387명이 응시해 2102명이 합격했다. 이 가운데 로스쿨 졸업생의 합격률은 24.6%였다. 8302명이 응시해 2044명이 합격한 것이다. 반면 예비시험 통과자는 85명 중 58명이 합격했다. 응시자 수는 훨씬 적었지만 합격률(68.2%)에 있어선 로스쿨 출신을 압도했다.

때문에 신현윤 이사장은 “예비시험제도를 도입하면 우수 인재들의 법조인 진출 ‘단기코스’로 전락할 것”이라며 “이들의 합격률 독식은 상대적으로 취약계층의 법조인 진출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김한규 부회장은 “예비시험은 경제적 형편이 어렵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학업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계층도 열심히 노력하면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도입하자는 것”이라며 “현행 로스쿨 제도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기능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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