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성(본지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교수)

연합뉴스에 ‘한국 의사가 왜 영문학술지에만 집중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국내에서 발간되는 의학계의 대표적인 국제학술지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편집위원장인 홍성태 교수가 대한내과학회지에 기고한 글을 소개한 기사였다. 이 글에서 홍 교수는 국내 과학계가 해외출판사의 상업성에 종속되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국내 의료인에 대한 원만한 정보제공 기능 측면에서 국내 학술지의 역할을 인정하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홍 위원장의 의견에 흥미로움을 느끼면서 현재 국내 학술지의 현황과 학자들의 인식에 대해서 조금 원론적인 문제제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학술지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시는가? 동료학자들에게 물으면 대체로 한 500종, 많게 본 경우 1000종 정도가 돌아오는 답이다. 그런데 2016년도 현재 KCI (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 따르면 자그만치 5263종이다. 3526개의 학회에서 2780종, 그리고 5211개 대학부설연구소에서 2351종이 발간되고 있다. 우선 이 숫자의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국내 학회의 80%가 한 개씩의 학술지를 발간하고 있고 약 16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박사 30명당 한 종의 학술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별로는, 인문학계에서 554종, 사회학계에서 807종 학술지를 KCI 등재(후보)지로 등록하고 있다. (비등재지 제외)

한편 과학기술분야에서는 총 703개 학술지가 KCI등재(후보)지로 등록돼 있는데 이에 관련해 결코 새삼스럽지 않은 문제가 존재한다. 홍성태 교수는 학술지의 기능으로 ‘국내 의료인에 대한 정보제공’을 중요하게 꼽았는데, 학자가 아닌 의사들에게도 학술정보가 긴히 보급돼야 하는 의료계의 특성을 감안하면 타당한 말씀이나, 이공계 전체의 시점에서는 조금 다르다.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내가 공들여 만든 정보의 전파가 최우선이다. 그것도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의 전파 말이다. 이 관점에서 이야기하자. 인문사회계 특히 인문계 연구는 연구주제가 지역중심이다. 그 나라의 역사나 교육현실 등 지역특이적 문제가 주 연구대상이 되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한정된 현상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논문을 읽고 평가하는 동료들도 역시 지역의 사람들에 국한된다. 따라서 로컬한 언어, 즉 한글로 논문이 발표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

이에 반해서 이공계 연구에서는 주제가 글로벌 이슈(global issue)가 대부분이다. 전 세계인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를 다룬다. 한국인의 유전체 특성을 이야기하는 논문이라고 해도 그 내용에 대해서는 전 세계 학자들이 관심을 갖는다. 동해에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가 변하는 것에 대한 연구는 십중팔구 결론에서 ‘글로벌’한 기후변화를 얘기할 것이다. 따라서 이공계 논문은 전 세계 학자들을 대상으로 전파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영문학술지 발표가 맞는 것이다. 국문 논문을 고집하는 것은 ‘우리는 세계적인 문제를 우리들끼리만 속닥속닥 얘기하겠소’라는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자세이며, 학술적으로 아무런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

이점은 학술지의 인용지수(Impact Factor, IF)로도 잘 드러난다. KCI 자료에 의하면 사회과학의 KCI등재지 821종의 평균 IF는 1.11인데 비해, 농수해양학, 자연과학종, 공학, 의약학 학술지들은 각각 0.53, 0.43, 0.41, 0.34의 평균 IF를 갖고 있다. 여기서 자기인용을 제외하면 이공계 학술지는 대부분 0.2 이하의 IF를 보인다. 한 학술지에 실린 10편 중 2편만이 다른 사람에 의해 1년에 1번 인용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도 순수히 학술적이지 않은 사유로 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필자 본인이 소속된 학회는 20년 된 학술지를 폐간했다. 15년전 얘기다. 이미 회원들은 논문을 국제학술지들에 발표하고 있었다. 연구재단과 대학에서 국내 학술지 게재 논문이 연구실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분위기가 시작됐고 또 학자들도 자신의 논문이 좀 더 양질의 평가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로 국제적 아이덴티티를 확보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정착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거의 아무도 읽지 않는 학술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임원들에게 논문을 할당해 투고하게 해 간신히 발간하고 있었던 것이다. 투고 논문자체가 많지 않아서 논문의 질적 가치는 차치하고, 연구진실성이 거의 보장되지 못한 논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구태는 많은 학술지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제 ‘학회는 학술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어디서 유래한 얘긴지 모를 낡은 명분에 의해 발간되고 있는 학술지는 없어져야 한다. 교육부와 연구재단이 이런 의도에서 국내 학술지를 정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 소위 ‘학진등재지‘ 제도였다. 그러나 KCI등재지는 계속 확대돼가고 있고 더불어 국내 학술지의 수도 이렇게 어마어마해 졌다. 이 제도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연구 수준은 국제적으로 꽤 높은 경쟁력을 가진 단계에 이르렀고, 학문하는 분위기는 꽤 진지해졌다. 글로벌한 주제의 연구를 가지고 내 학술지만을 고집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글로벌한 학술지에 발표하지 못하는 수준의 연구라면 이는 시간과 돈의 낭비일 뿐 아니라 많은 왜곡이 개입된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사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미 이 구태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학술지만이 동떨어져서 남아 있는 것이다. 홍성태 위원장의 주장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미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를 통해 양질의 논문을 출판하고 있는 학회에서 내국인을 대상으로 첨단정보의 욕구를 충족시킬 목적의 한글학회지를 따로 만드는 일, 어떻게 성공할 것인지 우리 학계에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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