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2배 넘어…연구재단도 전수조사나 질 관리 불가능

졸업요건·업적평가 참고자료 그쳐…연구자들도 지도교수 ‘학맥’ 의존해 게재
학총 “등재·비등재 이분법 깨고 평가 등급 세분화해야” 주장

[한국대학신문 김정현 기자] “(내 논문을 어디 실을지) 학술지 3000개를 놓고 고민했다. 무엇이 좋은지, 어떤 것을 배제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등재지와 후보지만 나눠져 있어서 알 수 없다. 결국 교수님이 실으라는 대로 결정했다. 아직도 제 공부에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다. 내 자신의 학문적 관점을 갖고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서울 한 사립대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 A씨의 말이다. 한국연구재단 등재지가 올해로 2000종이 넘었다. 모든 등재지가 곧 권위있는 학술지라고 생각하는 학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문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한 지표로 평가하면서, 전수조사도 못할 정도로 그 수가 매년 증가했기 때문이다.

◼ 등재지 평가 강화했지만 학술지 질 담보 안 돼= 한국연구재단은 지난달 28일 학술지 112종을 신규 등재후보지로 선정하고, 102종 등재후보지를 등재지로 승격시켰다. 연구재단의 일정 기준을 충족한 학술지는 등재지 또는 등재후보지로 선정돼 연구재단의 각종 학술단체 예산 지원 사업에 지원할 자격을 얻는다. 대학은 연구자의 졸업과 승진에 지표로 활용한다.

그러나 등재지가 되기 위한 벽을 넘기가 너무 쉽다는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도가 처음 시행된 1998년(한국학술진흥재단) 57종에 불과했던 등재(후보)지는 지난 4일 2394종까지 불어났다. 등재지 수만 따져도 2006년 902종이던 것이 10년 만에 221% 폭증했다. 돈을 타기 위해 학술단체를 급조하고 유령 학술지를 만드는 일도 생겼다.

▲ 등재, 등재후보학술지는 1998년 도입된 이래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 현황은 평가 이의신청 결과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음. (자료=한국연구재단, 인포그래픽=김정현 기자)

이에 한국연구재단은 2014년 등재(후보)지 신청 자격을 강화했다. ‘정상적’ 학술지라는 최소한의 요건이라는 것이다. △발행의 규칙성 및 정시성 △논문당 최소 심사위원 수(2명 이상) △자체 연구윤리 규정 제정·적용·공시 △논문·저자명 로마자 표기 △논문 투고 다양성(동일 기관 논문 투고 제한)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등록 6가지 조건이다. 단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등록할 수 없다.

조건을 충족하면 체계와 내용을 평가해 점수를 책정한다. 이 또한 2014년에 강화된 것이다. 평가는 해당 분야 교수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평가한다. 학술지 온라인 접근성과 논문 게재율, 발간횟수 등을 평가하는 정량적 체계평가(30점 만점), 그리고 학술지에 실린 내용과 편집위원회의 전문성, 연구윤리 강화 활동을 평가하는 내용 평가(60점 만점), 학문 분야 정체성과 특성을 고려하는 특수평가(10점 만점)를 정성 평가한다.

문턱은 높아졌지만 질 관리는 부족하다.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하면 등재지가 되기도, 지키기도 어렵지 않다. 등재지는 85점, 등재후보지는 80점만 넘으면 된다. 이마저도 전수조사가 아니어서 평가를 받지 않고 해를 넘기는 학술지가 훨씬 많다. 올해 탈락해도 당장 연말까지는 지위가 유지된다. 올해부터는 평가위원 수도 늘어나고, 고의적으로 낮은 점수를 주는 평가위원을 제척할 수 있는 제도도 도입했다.

새 지표가 도입된 후 매년 탈락하는 등재지는 50여 종에 불과하다. 올해는 61종이 등재후보지 강등 평가를 받았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새 지표가 도입되기 전에는 강등되는 학술지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졸업ㆍ승진을 목적으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한 연구자에게 피해가 갈 수 있어 연말까지 지위를 유지하는 등 안전장치를 두는 것”이라며 “평가위원에게 상대평가해서 등재지 종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당부하고, 통합한 학술지에는 평가 시기를 유예해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등재지에 논문 몇 편 썼나’ 악순환 핵심고리= 제도 개선 요구는 꾸준히 제기됐지만 단칼에 제도를 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학술지 등재제도를 학계 자율에 맡기는 안을 내놓았다가 거둬들였다. 교육부가 시행 1년을 앞두고 12개 대학과 5443개 학회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가 속한 대학 중 95.9%가 교수 업적평가 시 등재(후보)지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같다. 김창일 중앙대 교무처장은 “인문·사회 분야 특성상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며 “부실한 등재지가 많다. 평가가 소위 ‘톱클래스’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없고, 형식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질적으로 형편없는 등재지도 있다”고 말했다. 대학들이 평가 지표를 개선하려 해도 분야 특수성 때문에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낼 수 없는 경우 마땅한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연구재단도 대학도 몸을 사리는 동안 국내 학술지의 질은 비상식적 수준까지 떨어졌다. 본지가 지난 6월 보도한 논문 컨설팅 업체들의 대필 행위가 그 예다. 당시 40곳 업체들이 여전히 활동하는 것은 물론 수도 늘어나고 있다는 제보가 쏟아졌다. 보건 분야 한 대학원생은 “동료가 ‘300만원을 줄 테니 대필을 해 달라’는 제의를 받은 것을 봤다. 한 선배 연구원은 등재지에 2주마다 한 편씩 연구보고서를 게재하고 1년에만 논문을 7편 써냈다”고 고백했다.

문제의식이 있는 연구자들도 섣불리 나서기엔 잃어야 할 것이 많다. 사회복지학 박사과정 대학원생 A씨는 “일반대학원생은 등록금ㆍ생활비 마련을 위해 학회와 학술지를 활용한다. 지도교수님이 동기들을 돕기 위해 아는 교수님 몇 명과 학회를 만들고, 간사직을 주고 학비를 대 주는 것”이라고 했다. 등재지가 되면 정부 지원금을 받고, 학회 운영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눈 감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얘기다.

▲ 2017년도 등재(후보)지 신규, 계속평가 결과. 통계 현황은 평가 이의신청에 대한 처리 결과에 따라 변경 될 수 있음. (자료=한국연구재단, 인포그래픽=김정현 기자)

◼ 등급 세분화는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학총) 등은 등급을 세분화하거나, 학술지의 중요성을 나타낼 수 있는 분야별 지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등재(후보)지와 비등재지로 이분된 것부터 풀어나가자는 주장이다.

서울대 기계공학과 교수인 주종남 학총 이사장은 “연구재단이 학술단체와 공동으로 과학인용지수(SCI)의 임팩트팩터(IF, impact factor)와 같은 지표를 조사해 발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논문 편수 위주의 숫자 평가에서 질 위주의 평가로 전환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정량 평가 위주의 한국 평가 문화 개선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연구재단의 KCI처럼 한국에서 SCI 또한 많은 비판을 받는다. 두뇌한국21(BK21) 사업 등에 평가지표로 활용되고 있으며, 과학기술 분야에서 등재지 평가와 같은 위상을 갖는다. 하지만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SCI도 여러 대체 지표가 나왔으나 보완할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동료평가(Peer review)를 기반으로 하는 F1000과 같은 지표가 있으나, 인맥 위주로 운영되는 국내 학술사회 현실을 고려하면 신뢰성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학술지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청한 정치학 박사급 연구원은 “등재지 시스템은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대안이 없다는 것은 행정주의적인 시각”이라며 “학문별로 자율적인 동료 평가를 통해 평가 대안을 자생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학문이 발전하는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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