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매년 4월이 다가오면 대한변호사협회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변호사 시험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날카로운 공방을 주고받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변호사 시험은 자격시험이므로 그 취지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의 주장과 변호사 업계가 이미 포화상태라는 대한변호사협회의 첨예한 입장 차이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7월 노무현 정부 때 제정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설립된 전국 25개 법전원에서 학생들은 3년간 공부 후 매년 1월 변호사 시험을 치러 우리나라 법조 인력의 기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우리나라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법전원) 체제는 미국의 로스쿨이나 일본의 법과대학원과는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법 문화와 경제 현황을 바탕으로 새롭게 제도를 설계했고 제도 정착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법전원 도입으로 시험을 통한 법조인 양성에서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으로 법조계 인력 양성 프레임이 전환됐다. 이전 법과대학 체제에서 사법시험으로 법조 인력을 선발하던 것과 유사하게 변호사 시험으로 법조인을 선발한다. 그러나 사법시험은 법률서비스의 공급자 측면을 강조한 나머지 응시자격에 학력이나 연령의 제한이 없어 수많은 ‘고시낭인’을 만들었다. 이 ‘고시낭인’은 국가 인력 분배 차원에서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러한 폐단을 제거하고 국민의 다양한 기대와 요청에 부응함과 동시에 법률서비스의 수요자 측면을 강조하고 국민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법전원 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현 법전원 체제는 변호사 시험 응시 자격을 3년의 법학 교육 정규과정을 이수한 법전원 졸업자에게만 부여하고 있다. 또한 시험의 응시 횟수를 5회로 제한함으로써 고시낭인이 생기지 않도록 유도하고 있다. 법전원이 교육을 통한 법조인력 양성을 목표로 했던 만큼 변호사 시험은 선발시험이 아니라 자격시험으로 남아있어야 했지만 그동안 많은 시험을 거치면서 앞서 말한 도입 취지에 어긋나는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2년 처음으로 실시한 제1회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은 87.15%에 육박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합격률은 하락했고 지난해 시행한 제10회 변호사 시험의 합격률은 54.06%까지 떨어졌다. 자격시험을 전제로 계획한 변호사 시험이 이제는 2명 중 1명만 붙는 ‘선발시험’으로 전락한 것이다.

합격률 하락이 가져온 부작용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법전원 학생들은 법률가로서의 기본소양과 자질을 공부하는 대신 변호사 시험 과목 위주의 편중된 학습을 하고 있다. 도입 초기 다양한 전문분야 법조인을 양성하도록 설계한 교육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졌으며 국제 경쟁력 있는 법조인을 양성하겠다는 법전원의 도입 취지도 퇴색됐다.

또한 법률가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취약 계층에게도 법조인이 될 수 있는 희망의 사다리를 제공할 기회를 주겠다고 한 취지도 합격률 앞에서는 의미없는 말이다. 2019년 특별전형 졸업생의 합격률은 겨우 33.6%였으며 지방 법전원 특별전형 졸업생의 합격률은 18.8%에 그쳤다. 지역균형인재 선발제도로 선발된 졸업생의 합격률도 35.9%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변호사협회는 법조계가 이미 포화상태인 점을 근거로 변호사를 매년 1200명만 배출하라고 주장한다. 교육을 통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들을 합격시키는 자격시험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국내 법률시장의 매출 규모가 크게 성장한 점, 기존 사후적 구제로서의 송무 영역에 머물고 있었던 변호사 직역과 시장이 예방법학에 기초한 서민적 법률서비스로 바뀌고 있는 점,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고위직 또는 고액의 법조 카르텔에 안주하고 있던 기존 법 시스템이 일반 국민을 위한 법률 서비스 차원으로 바뀌고 있는 점, 아직도 실질적인 무변촌에 가까운 시군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 변호사 시험 합격자의 취업률이 매년 90%를 상회한다는 점 등 다양한 요인과 지표들은 법조인력이 포화됐다는 주장에 모순된다.

우리나라에 법전원이 도입된 지 14년이 흘렀지만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는 것은 지나치게 낮은 변호사 시험 합격률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법전원 교육의 정상화와 법조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정원제 선발방식으로 시험 합격자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적어도 80% 이상의 합격률을 유지하는 ‘자격시험화’가 시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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